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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5월 13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자만에 대한 경고, A Caution to the Presumptuous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악덕은 미덕의 모조품이다"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가장 확실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물창고에서 순금으로 된 귀한 주화를 보내실 때마다 사단은 그 모양을 모방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는 악한 것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주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본성이자 본질입니다. 사탄 또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을 만들지만 그것은 정욕입니다. 하나님은 용기를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있어 모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동료들을 대면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것입니다. 사탄은 어리석은 고집을 부추깁니다, 그것을 용기라 하며 사람들에게 허울뿐인 명성을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거룩한 두려움을 만드십니다. 사탄이 사람에게 불신을 주면 우리는 종종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착각합니다. 최고의 덕목인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는 그 완성에 이르면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의 완전한 확신만큼 좋고 바람직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좋은 금화를 보면, 그 즉시로 무저갱의 쇠를 취하여 하늘의 형상과 확신이라는 글자를 모방하여 새기고 우리를 탐욕의 악으로 짓누르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하니, 우리는 칼빈주의 기독교인으로서 아마도 조금은 놀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음을 믿을만한 엄청난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지극히 높으신 능력에 대한 강한 확신을 할 수 없더라도, 여러분이 최고의 통찰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그 차이를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진정한 확신에 가까운 것이 있습니다.
이 아침 제가 말하려는 것과 대척점에 있는 것은 거룩하지 않은 자만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장 강한 믿음을 거스르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모든 작은 믿음이 강한 믿음이 되어, 경외함으로 진리에 용감하고 멈출 줄 아는 아사헬의 빠른 발이 되어 주의 일에 전적으로 나서기를 바랍니다.
제가 강한 믿음과 전적인 확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행복한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12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상태는 없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알게 모르게 덮치는 잘못된 확신과 자만과 같은 악한 것들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주의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산꼭대기에서 얼어 죽는 잠을 자는 것과 같아서, 깨지 않으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아침 저는 우선 특성을 찾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위험성을 보여드리고 세 번째로는 권고를 드릴까 합니다. 특성은 자신이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특성을 말합니다. 위험성은 그 사람이 빠질 수 있는 것을 말하고, 권고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I. 첫 번째로 다룰 것은 자신이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하는 사람의 특성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넓은 세상을 찾아보면 그런 사람들은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오만한 배짱으로 가득 찬 사업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 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치열한 삶의 거친 바다를 건너갈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겠지만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뼈는 무쇠이고 신경은 강철이라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죽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세월을 보내고 불의한 삶을 살아갑니다.
유혹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며 자만심에 차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죄에 약하다고 생각하나! 오! 아니야.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아. 내게 술을 갖다 주어도 나는 술 취하지 않을 거야. 내게 노래를 부르게 해도 한밤중까지 떠들어 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조금만 마실 수도 있고, 멈출 줄도 알아" 이런 사람들이 바로 자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곳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아침 저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을 것입니다. 부채질은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고, 풍구질은 밑에다가 해야 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이 아침 우리는 자만함을 찾기 위해 교회를 풍구질 해볼까 합니다.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교회에는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상적인 힘과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잘 차려입은 세상의 자녀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자녀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겸손하지도 않고 상한 심령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혹시 그러하더라도 그들은 거대하게 되어 겸손의 아름다운 꽃을 발로 짓밟을 때까지 육신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자만하여 육신의 안전에 빠져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문제의 핵심과 근원을 다루는 설교를 하는 동안 주께서 그런 분들을 깨우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동안 저는 그리스도인이 자만하게 되는 빈번한 원인들을 상세하게 설명할까 합니다.
1. 첫 번째로 아주 빈번하게 반복되는 원인은 세상적 번영입니다. "예레미야 48:11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사람에게 부를 주십시오. 그 사람의 배들이 끊임없이 재물을 집으로 가져오게 하십시오. 그의 배들이 깊은 물을 건너도록 바람과 파도가 그의 종들에게 전해지게 하십시오. 그의 땅은 풍성한 소출이 있게 하십시오. 작물들에 딱 맞는 날씨를 주시고 그의 사업에 하늘이 미소 짓게 하십시오.
그를 위해 삼성의 띠를 풀게 하고 묘성을 매어 묶게 하십시오. 그에게 성공이 멈추지 않게 하십시오. 그가 사람들 가운데 성공한 상인으로, 거대한 갑부로, 재물을 엄청나게 모은 사람으로, 항상 잘 나가는 사람으로 서게 하십시오. 부가 아니라면 항상 건강을 즐기도록 하십시오.
그로 하여금 질병을 모르며 살게 하십시오. 튼튼한 신경과 밝은 눈으로 세상을 행진하며 행복하게 살게 하십시오. 그에게 활기찬 영혼을 주어서 입에 노래가 끊이지 않게 하시고 항상 기쁨으로 눈이 빛나게 하십시오. 걱정거리에도 웃으며 "쓸데없는 걱정거리야 가버려라, 나에게서 떠나라"라고 외치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그렇게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사람의 결과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선 것이다"
다윗은 "시편 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보다 훨씬 낫지도 않을뿐더러 그 절반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주께서 우리를 번영의 요람에 넣으시고 흔드신다면, 우리가 항상 재물의 무릎에 올려져 놀게 된다면, 이 인생에 그 어떠한 흠도, 얼룩도, 거침도, 막힘도 없다면 우리는 분명 즐거움에 취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서 있다"라고 꿈꾸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설것이지만 그곳은 정점일 것입니다. 설 수는 있지만 돛대 위에서 잠든 사람처럼 매 순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적 침체에 감사드리고 재산의 상실에 대하여 그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고, 아침마다 우리를 책망하시며 저녁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너무도 안전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세상적인 번영은 불같은 시험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한 상태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잠언을 여러분에게 적용해 보십시오. "잠언 27: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2. 그리고, 죄에 대한 가벼운 생각은 자만을 낳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회심했을 때를 돌아보면 우리의 양심은 아주 민감해서 아주 작은 죄까지도 지을까 두려워합니다. 회심한 청년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 발자국 내딛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 친구들은 사역자도 답하기 어려운 도덕적 원칙과 같은 것들을 가져와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건한 두려움과 거룩한 소심함이 있는 것입니다.
아아 그렇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처음 익은 열매는 주변 세상의 거친 취급을 받아 얼마 가지 않아 없어집니다. 경건하고 민감했던 어린 식물은 저 세상의 버드나무가 되어 너무 휘어지고, 너무 쉽게 굴복합니다. 슬프게도 그리스도인 조차도 점점 더 무뎌져서 한때는 그를 놀라게 하고, 그의 피를 차갑게 만들었던 죄가 이제는 조금도 그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하나님을 망령되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너무 놀라서 어디에 숨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말이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떨림은 여전히 제 핏줄을 타고 흐르지만, 처음에 그런 악한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엄숙한 느낌이나 강렬한 고뇌는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죄에 익숙해집니다. 대포 소리에 익숙해진 귀는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입니다. 큰 배에서 엄청난 소리를 유발하는 해머질을 하는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소음 때문에 처음에는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면 갈수록 그 소리에 익숙해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죄도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롯이 소알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작은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더 큰 것이 오고, 또 다른 것이 와도 우리는 그것은 그저 조금 아픈 것뿐이야라고 여기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여기에는 우리는 서 있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자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았어, 그런 작은 일을 했을 뿐이지 길을 잃은 것은 아니야. 사실, 조금 넘어진 것은 맞지만, 핵심은 똑바로 서 있었어. 한두 마디 나쁜 말을 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일관성이 있었어"
우리는 죄를 감쌉니다. 뭔가 설명을 덧 붙이고 숨기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이 죄를 가벼운 것으로 여기면 여러분은 자만하게 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죄가 작은 것이라고요! 그것은 독 아닙니까! 누구 그 치명성을 알까요? 죄가 작은 것이라고요! 작은 여우가 덩굴을 망치지 않습니까? 죄가 작은 것이라고요! 작은 산호가 해군 함정을 난파시키는 바위를 만들지 않습니까? 작은 도끼질 높다란 떡갈나무를 쓰러뜨리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바위를 뚫지 않습니까? 죄가 작은 것이라고요! 그것은 지금은 영광의 면류관을 쓰셨지만 그분의 머리에 가시관을 쓰게 했습니다. 죄가 작은 것이라고요! 그것은 그분으로 하여금 극심한 고통과 아픔, 괴로움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온 힘으로 감당하신 모든 것"
여러분 이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영원의 저울로 이것을 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뱀을 멀리하는 것처럼 이것을 바로 멀리할 것입니다. 악의 가장 작은 모양이라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아! 죄에 대한 느슨한 생각은 종종 자만의 영을 낳고 우리는 우리가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세 번째 이유는 종교의 가치를 낮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종교의 가치를 충분히 가치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종교적 열정은 어디에서나 비웃음거리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종교적 열정과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주 열성적이어서 자신의 몸을 불에 내어주고 모든 피를 쏟아 그 피를 생명이 되게 하고 그 생명을 영원한 순교에 처하게 할 수 있다면 그는 그의 하나님을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 아닙니다! 이 세상은 짧고 곧 물러갈 것이며 우리가 영원 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지옥과 천국 중 한 곳에 영원히 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아주 많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죽지 않는 영혼에 아주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천국에 대해 아주 큰 대가를 요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신 그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종교의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영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금은 지저분한 먼지이고 다이아몬드는 녹아 없어져 버릴 수 있는 응고된 공기의 작은 덩어리일 뿐입니다. 영혼과 비교할 대상이 없으므로 그 가치를 매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만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금을 사랑하는 구두쇠가 하인들이 주워가라고 금을 바닥에 뿌리겠습니까? 아무도 볼 수 없는 비밀한 장소에 숨기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은 금을 사랑하므로 낮이고 밤이고 그의 보물들을 셀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아이를 강변에 두고 안심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을 생각하면서 잘 수 있는 어머니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아플 때 아무것도 모르는 간호사에게 아이를 맡겨 아이가 고통받다 죽게 두는 어머니가 있을까요? 오!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던져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최고의 보살핌으로 그것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영혼의 가치를 알았다면, 종교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했다면 그들은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영혼의 영원한 상태에 대하여 가볍게 여기는 생각들은 우리를 부주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악한자에게 넘겨주지 않도록 복음을 가볍게 생각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4.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자만은 종종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자신들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우리에게 우리의 상태를 보여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날 때 까지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샘은 한 번에 완전히 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의 부패는 단시간 진행되지 않는 법이지요.
천사가 에스겔에게 말합니다. "에스겔 8:6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다른 한 방으로 가니 에스겔이 말합니다 "저는 이런 최악의 것들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하는 말입니다 "아니다,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의 평생 동안 우리 마음의 아주 가증한 것들을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여기에 계신 몇몇 분들은 그런 것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스스로 선한 마음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요? 선한 마음을 말입니까? 여러분보다 나은 마음을 가졌던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런 것은 하룻밤에 배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마음의 악한 것을 아십니다. 영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그 놀라운 시야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자만하게 만드는 것은 이것에 대한 무지입니다. 우리는 말하지요 "나는 좋은 성품을 가졌고, 고귀한 존재야. 나는 어떤 이들처럼 불같이 화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아, 나는 단단히 설 수 있어. 나는 순간적으로 확 타버리는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어. 나의 정욕은 약해졌고 나의 악한 힘은 조금 누그러졌으므로 나는 안전하게 설 수 있을 거야"
아!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자만하다는 것은 거의 모릅니다. 오 흙으로 지어진 벌레여 너는 여전히 악의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구나, 죄와 부패가 거듭난 이들의 마음에 조차도 남아 있구나. 그리고, 랄프 어스킨이 말한 것처럼 역설적이지만 그리스도인이 때때로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착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는
악마이고 성자인 존재.”
그리스도인 안에는 부패함이 있어서 비록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그의 평생에 성도로 살아가더라도 때때로 상상 속에서는 사탄처럼 보이고 영혼의 욕망과 타락 속에서는 악마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반드시 망루 위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불신의 마음이 침범하지 않도록 밤낮으로 살피셔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인이 자만하게 되는 빈번한 원인들 중에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자기 자랑입니다. 자만심을 낳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육신적 보장의 샘물입니다. 때로는 재능의 자부심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대중 앞에 설 수도 있고 많은 이를 위한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통찰력이나 판단력과 같은 것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재능이 없는 무지한 자는 넘어질 수 있지. 내 형제들은 조심해야 될 텐데, 하지만 나를 봐. 대단하지 않아!" 사실 그들은 스스로 서 있다는 자기만족 속에 있습니다. 아! 바로 이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우주 속으로 사라졌는지요!
자만심에 가득 차 동료들 앞에 선지자처럼 서서 "나만 홀로 남았고, 하나님의 선지자는 나뿐이다"라고 외쳤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렇지만 그 유일한 선지자는 넘어졌습니다. 그의 등불의 꺼졌고 그의 빛은 어둠 속에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위엄을 자랑하며 "내가 이 위대한 바벨론을 세웠다"라고 했는지요, 그러나 그들이 선 줄로 생각하는 순간 그것들은 한 번에 무너졌습니다. 자랑할 만한 재능을 가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은혜의 자만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만 은혜의 자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큰 믿음이 있으므로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음의 작은 불쌍한 사람들은 넘어질 수 있지만 나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말도 하지요 "나는 뜨거운 사랑이 있어서 설 수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위험이 없다. 그렇지만, 저기 있는 차갑고 느린 형제는 감히 말하건대 넘어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천국에 대한 불타는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이 소망은 저의 영혼을 죄와 욕심에서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저는 안전합니다" 은혜를 자랑하는 사람은 실상 그런 은혜가 거의 없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은혜가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시냇물은 그 원천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냇물의 바닥은 곧 마를 것이고 자갈 바닥을 드러낼 것입니다. 등잔의 기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오늘은 불을 환하게 비출지라도 내일이면 연기와 냄새만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재능과 능력이나 은혜를 자랑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런데, 여전히 좋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특권 때문에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성경에 있는 대로 정통 방식으로 세례도 받았고, 여러 의식도 치렀어. 이런저런 사역에도 참여하고 있지.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잘 먹고 있고 풍성해! 만약 내가 거짓 복음을 듣는 굶주린 피조물 중에 하나라면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아! 우리 목사님은 거의 완전함의 표본이지. 우리는 꾸준히 잘 공급받고 있고 분명 우리는 잘 설 거야"
이런 특권 의식 가운데 만족감을 누리는 사람들은 "나의 산은 단단히 섰고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치며 다른 이들을 무시합니다. 조심하십시오, 교만을 조심하십시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자만이 스며들고 있지 않은지 살피고 조심하십시오. 호박 뿌리에 벌레가 들어가면 곧 시들고 죽게 마련입니다. 재능이나, 은혜, 특권으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여기에 계신 몇몇 분에게 특히 공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외과의사가 메스를 대듯 날카로운 접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자만한 사람들의 위험성을 경고할 텐데 이러한 접근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II. 두 번째로 위험성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겠지만 크고 작은 넘어짐에 쉽게 노출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생명을 잃을 정도로 넘어지지는 않을 지라도 팔다리는 부러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모든 길에서 백성들을 지키라고 주의 천사들을 보내셨지만 잘못된 길을 갈 때조차 그를 지키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많은 슬픔으로 스스로를 몰아갈 것입니다.
1. 이제 저는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넘어질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시험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얼마간 부주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주 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격렬한 전투가 자신 근처로 다가와도 그런 사람들은 칼을 칼집에 꽂아 둔 상태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팔은 날렵하고 강하지. 언제든지 빼서 칠 수 있어!"
그래서 그는 아마도 들판에 누워 있거나 텐트에서 빈둥빈둥 잠을 잘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지요 "적들이 오는 것을 들으면 나는 수천을 벨 수 있는 기술과 힘이 있지. 너희 보초병들은 약한 자들이나 지켜라. 겁쟁이들과 공포에 떠는 자들에게 가서 그들이나 깨워라. 나는 위대한 사람이다. 내손에 이 오래된 톨레도 검만 쥐어주면 적들의 몸과 영혼까지 벨 것이다. 적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정복자보다 더한 존재가 될 것이다"
부주의한 상태로 전투에 임합니다. 투구를 벗으면 골리앗이 그랬던 것처럼 돌이 날아와서 이마를 뚫을 것이고, 방패를 치우면 화살이 그의 몸에 박힐 것입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면 적이 그를 칠 것이고 그는 저항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방심하는 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적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결국 단검이 그의 영혼을 찌를 것입니다.
2. 다시 말하지만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곳으로 뛰어듭니다. 예전에 저는 세속적인 유흥 장소로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였던 사람입니다. 그를 불렀죠. "엘리야, 거기서 뭐해" 그랬더니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라고 답했습니다. "엘리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저기로 가고 있는 거야?"라고 다시 물었지요. 그랬더니 얼굴을 조금 붉히며 답했습니다. "맞아, 하지만 나는 문제없어" 제 말은 이랬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저기에 간다면, 나는 분명 죄를 지을 거야. 사람들이야 뭐라고 하든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나는 항상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할 거야. 나에 대해서 말하기 좋아는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을 남기지. 그렇지만, 저기는 위험한 장소이고 나는 문제없이 갈 수는 없을 거야"
그는 "아! 그래! 그렇지만, 나는 할 수 있어. 전에 저기에 갔을 때 나는 거기에서 좋은 감상에 빠지기도 했어. 지적 능력이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었지. 네 생각은 좁은 것 같군. 너는 이 좋은 것들을 얻지 못할 거야. 확신하건대 이것들은 진수성찬이야. 내가 너라면 거기에 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아니야, 나에게는 위험한 곳이야. 내가 들은 바로는 거기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우리가 믿는 신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수없이 회자되는 곳이야. 거기에 가는 사람 치고 훌륭한 사람은 없어, 분명 유유상종이라 불릴 거야"
그는 "아 그래, 젊은이는 아마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나는 강하고, 갈 수 있어"라고 답하며 세속적인 유흥장소로 가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소돔의 사과였고 신학 교수였습니다. 저는 바로 그 사실에서 핵심에 썩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험으로 알게 되었지요, 그 사람은 그저 호색한이었다는 것을. 그는 가면을 쓴 위선자였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었습니다.
자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졌고, 죄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러분에게 자신이 아주 좋은 사람이고 말할 때는 그것을 항상 거꾸로 받아들여서 그가 할 수 있는 한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은 넘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강하고 탈출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속에서 유혹 속으로 뛰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또 다른 이유는 이 강한 사람들은 은혜의 수단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어떤 분들은 예배의 장소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대외적으로 신앙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들에게 자신이 신앙이 있다고 말하며 어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하면 놀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잘 성장했다고 생각하며 그런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름의 내적 경험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집에는 감미로운 설교집이 있어서 가끔씩 읽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은 부족함이 없고 풍성하므로 하나님의 집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7년 전에 충분한 식량을 받았고 앞으로 10년간도 견딜 만큼 넉넉하다고 자만합니다. 옛 양식으로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자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빵과 포도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거룩한 성찬식에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도 거룩한 궁금증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모습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 있다고 생각하며 결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약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무시하고 결국 넘어집니다. 그들은 신을 신발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발은 돌에 찔릴 것입니다. 갑옷도 입지 않을 것이므로 대적들은 그들을 상하게 하고 때로는 거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영적인 도구들을 무시하는 이 깊은 수렁에서 많은 오만한 신학 교수들이 질식되었습니다.
4.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자기 확신 속에 있는 자만한 사람은 엄청난 위험을 무릅씁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항상 교만한 자를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로우신 성령께서는 낮은 곳에 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오신 곳은 요단강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기름진 땅인 바산으로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읽은 적이 없습니다. 백마를 탄 사람은 은매화 사이로 말을 몰지 백향목 사이로 다니지 않습니다. 은매화는 산 아래 자락에서 크고 백향목은 정상부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을 사랑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살아가는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교만이 스며들어 "이제 나에게 위험은 없다"라고 외치는 순간 성령은 떠나십니다. 하늘로 올라가시고 그와는 더 이상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입니다. 교만한 영혼은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교만한 이들이여, 성령을 근심케 하는구나! 성령은 교만이 자리하고 있는 마음 떠나십니다. 그는 악한 영 루시퍼를 싫어하십니다. 그분은 악과 같이 쉬지도 함께 머물지도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지는 것을 부인하는 자를 떠나십니다. 교만한 이들이여 이것은 엄청난 위험입니다.
III. 세 번째로 드릴 말씀은 권고입니다.
지금까지 본문을 설명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실제로 옮길까 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이야기하여 자만하는 사람의 위험성을 상상케 하고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하늘나라에 가기를 간구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지는 사람들 중에서가 아니라 온 평생을 떨며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 중에서 더 빨리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성경의 권고는 "조심하라"입니다.
1. 첫 번째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넘어졌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아프고 부상당한 그리스도인들이 누워 있는 병원의 병동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여러분을 떨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죄에 사로잡혀 너무 망가져 버린, 한 순간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비참함의 연속이었던 사람을 보여 드릴 것입니다.
예전에는 힘 있게 주를 섬겼지만 지금은 자신의 죄 때문에 절망 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천재적인 사람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악마의 제사장이 아닌 것은 맞지만 거의 그 정도였습니다. 또한 예전에는 경건하고 신실하게 교회를 섬겼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사람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형제들을 크게 속이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커다란 불명예를 안겼기 때문에 형제들은 이전처럼 그를 반겨주지도 않고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봅니다.
오! 여러분은 넘어지는 이들의 겪는 슬픈 고통을 아십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넘어졌는지 아십니까? 완전히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들은 남은 모든 삶을 비참함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조심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와 함께 자만의 산기슭으로 가보실까요. 한때는 자기 확신의 영역에서 마음껏 날아올랐던 이들이 불구가 되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은 뼈가 부러진 채로 누워 있습니다. 그들의 평안은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그들은 그 안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 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저 무력한 물체처럼 보입니다. 그가 살아있는 게 맞지만 그저 살아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저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불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지 모르십니다. 한 사람이 천국을 향해 걸어갑니다. 늘 한결같습니다. 주께서 그와 동행하시며 그는 그의 여정 내내 행복함을 누립니다. 다른 이는 "나는 강해, 나는 넘어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꽃을 꺾기 위해 길가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사탄이 그가 가는 길에 놓아둔 뭔가를 보게 되죠. 이 덫에 걸리고 저 덫에도 걸립니다. 강가에 도착하면 죽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시는 생수의 강 대신에 자신이 건너야 하는 강물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가 강에 들어가자 이내 불타는 강은 그를 태우기 시작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자 어서 와라"하며 그를 들어 올립니다. 그러나, 주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끌고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이 강에 있을 때는 여전히 그의 주위로 불이 몰려들고 있음을 봅니다. 그는 천국 강가에 서서 울부짖습니다. "나는 불로 구원받았다. 주의 긍휼의 기념물과 같다"
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은 불로 구원받고 싶으십니까?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땅에서는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승리로다 승리로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께 영광을"하는 마지막 간증을 하고 눈을 감은 다음 천국에서 눈 뜨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시려면 자만하지 마십시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2.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조심하십시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넘어짐은 그리스도의 일에 큰 손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넘어짐 만큼 기독교를 해치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세상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할까요. "저 사람은 교회 집사인데 바가지 씌우는 방법을 알아. 저 사람은 신학 교수인데 다른 사람들처럼 속일 수 있어. 저 사람은 목사인데 죄 가운데 살아"
오! 능력 있는 자가 넘어지면 세상은 얼마나 기뻐할까요! "향나무여 기뻐하라 백향목이 쓸어졌도다" 그들은 우리의 죄를 비웃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잘못을 즐거워합니다. 그들이 우리 주위를 날아다니며 우리가 약한 점을 볼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이 사람들 좀 보아라, 나은 게 없다"
한 사람의 위선자가 있다는 것으로 사람들은 나머지 모두를 무시해 버립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너무도 많은 위선자들을 보아 왔기 때문에 살아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 없다면 위선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진짜 지폐가 없다면 그 누구도 위조지폐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동전이 없다면 그 누구도 가짜 동전을 건넬 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몇몇의 위선자가 있다는 사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동에 있어 항상 순금 반지를 갖게 하십시오. 대적들로 하여금 우리에 대한 빌미를 제공하거나 예수의 이름을 비방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대화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우리 교계에 속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교리가 우리를 죄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고 종종 말들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성경에서 찾고 사랑하는 고귀한 교리들이 방탕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거룩했던 사람들이 그 교리들을 믿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누가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대담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가 방탕한 종교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어거스틴, 칼빈, 휫필드로 이어지는 위대한 은혜의 시스템을 주장했던 분들의 특성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니면 자신의 일에 열심인 청교도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요? 어떤 사람이 아르미니안이었다면 그 사람은 그 당시에는 아주 악한 이단이라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이단으로 간주되고 그들이 정통파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혈통을 사도들에게까지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교파로 치자면 침례교의 설교를 통해서 흐르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핏줄입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광의 진리를 붙잡았던 위대한 선인들을 따르는 거룩한 계승을 통하여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까지 갈 수 있는 황금길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들에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 더 거룩하고 좋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많은 비방과 비웃음을 살지라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값없이 은혜로만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과 가깝게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 거저 얻는 은혜 가운데 있는 믿는 자들이여, 조심하십시오. 우리의 대적들은 이 교리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넘어지면 그들은 "저것 봐, 너희들의 교리는 다들 그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라고 답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예외의 경우들은 교리가 참인 것을 증명하고 결국 우리의 복음은 우리를 거룩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경건하고 이타적인 사람, 가장 고상하고 존경받는 사람, 가장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은 행위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 수치를 당하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오 사랑하는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넘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상속자들이여 우리는 이 힘든 순례길을 따라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설교하도록 부르심 받은 저는 여러분에게 사랑으로 말씀드립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걸려 넘어지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함정과 덫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역할은 길에 있는 돌을 모으고 거치는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스스로 조심하고 주의하지 않는다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전보다 더욱더 기도하십시오. 경건한 예배에 더 많은 시간을 드리십시오. 더욱더 간절하게 꾸준히 성경을 읽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주님과 더욱 가까이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맞는 최고의 본보기를 붙드십시오. 여러분의 대화는 하늘의 향기가 되도록 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은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향기롭게 하십시오. 그래서 저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으며 그분으로 부터 배우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행복한 날이 오면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그분이 "더 높이 올라오라"라고 말씀하시는 날에 "사랑하는 자여 오라, 네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너의 달려갈 길을 마쳤으니 이제 후로는 너를 위하여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놓았다"라고 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여러분의 행복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주의하고 조심하십시오. 거룩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믿음과 확신으로 가시면 넘어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다음절을 읽어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렇지만, 이 자리에는 다시는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께서 저를 도우셔서 저의 성도들에게 구원의 길을 말씀드리지 않고는 보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음을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지금 앉아 있는 상태로 돌아가신다면 여러분은 축복 가운데 영화롭게 된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여기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이 계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분들의 마음이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도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방인이라고 증명했을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심장이 빨리 뜁니까? 여러분의 죄에 대해 비통한 마음이십니까? 여러분의 죄악을 회개하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돌리시겠습니까? 그러시다면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이 바로 구원의 방법입니다. 저는 주님의 명령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는 믿고 그다음에 세례를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오! 여러분, 여러분의 행위로는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일을 하며 살라고 권면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씨앗도 없는데 꽃을 거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집의 기초도 놓지 않았는데 지붕을 얹으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스스로를 벌레만도 못한 죄인으로 예수님 앞에 납작 엎드리고 영원한 사랑의 팔에 안긴다면 그분은 그 누구나 받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의로운 문으로 들어가 용서를 받을 것이며 영원한 멸망의 위험에서 벗어나 천국에 있는 것처럼 영혼은 평안함을 누릴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분명 여러분은 어떤 논쟁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논쟁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면 저는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께로 오실 때까지 울며 서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한 영혼을 예수께로 끌어올 만큼 강하다고 생각했다면, 저의 도덕적 설득이 여러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며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시기를 간청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른 뼈들에게 예언을 전하는 것으로 제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저는 말솜씨도 재능도 자랑할 것이 없으며 여러분이 여기에 왜 왔는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옳은 것을 말하고 제가 느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만나면 저를 바라보십시오. 제가 아무리 좋지 않은 말을 했어도 제가 여러분에 이 말을 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여 왜 죽으려고 합니까! 지옥이 그렇게 좋습니까? 그렇게 간절히 영원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까? 그래서 천국의 영광과 영원한 행복을 내팽개치는 것입니까? 여러분 영원히 살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짐승처럼 죽을 것입니까? 살겠다고요!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축복의 상태에서는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오, 주께서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그분께로 돌이키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라! 죄인들이여 오라! 주께서 여러분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드린 말씀으로 한 영혼이라도 예수의 무리에 더해진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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