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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4월 29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그리스도의 사람들 - 그분을 닮는 사람들, Christ's People - Imitators of Him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사도행전 4:13"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 안에 역사하시는 엄청난 변화와 얼마나 짧은 시간에 그 변화를 이루어 내는지를 주목하십시오! 바로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따르던 주인을 멀찍이 쫓아갔고 맹세와 저주로 그분을 모른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이름에 구원이 없음을 담대히 선포하고 있고 그의 죽으신 주님의 희생을 통한 죽은 자의 부활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담대한 이유를 곧 알게 됩니다. 그들이 두 사람의 담대함이 그들의 배움과 재능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옳은 생각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요한도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어부였을 뿐입니다. 배운 것이라고는 바다에 대한 지식과 어부로서의 기술이 전부였고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담대함은 스스로가 터득한 지식에서 나온 것일 수 없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가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서 나온 것이 아님도 알았습니다. 사회적 지위는 사람에게 어떤 위엄을 부여해서 재능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조차도 가장된 권위로 말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원문 성경에서 "이디오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공적 직함이나 사회적 지위도 없는 평범한 서민이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았을 때, 두 사람이 배우지 못한 평범한 서민이었음을 알았으며, 그 모습에 놀랐고, 이들의 능력의 원천에 대한 올바른 결론을 짓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빛과 영광의 왕에 대한 이들의 말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었을 테지만 성령의 감화로 뒷받침되었습니다. 성령의 감화가 없다면 가장 찬란한 영적 본보기조차 헛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을 담대하게 만든 것은 이들의 주인이십니다.

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칭찬이 우리 자신의 본을 통해서, 특히 대적들의 입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정말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베드로와 요한처럼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살아 있는 편지고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가 된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안다면, 이는 이 세상에게도 행복한 것이고 우리에게도 축복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 아침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제게 은혜를 주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일깨우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우리의 천상의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촉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제자인 줄을 알게 할 것입니다.

이 아침 저는 여러분에게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릴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언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번째로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네 번째로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I. 주께서 저희를 도우시기를 기도하면서, 우선,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띌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름답고 웅장하게 쓰인 그리스도의 삶을 읽어 보셨을 것이고 그렇게 성경을 잘 적은 저자들의 재능도 놀라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최고의 삶은 그의 백성들의 말과 행동에 쓰인 그분의 살아있는 전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우리가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대로 산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의 영이 그분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속에 있다면, 그리고 수많은 설교자 대신 우리 모두가 생생한 은혜의 소유자라면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되어야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될 것도 말씀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림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분과 눈에 띌 정도로 닮아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한 시간 가량 붙잡고 함께 있어도 "뭐가 조금 닮은 것 같기는 한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한 번만 보아도 "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께 배운 사람이야. 그분을 닮았어. 나사렛의 그 거룩한 분의 생각을 붙잡았고 그 생각을 그의 삶과 매일의 행동으로 확장시키고 있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논점을 확장해 보면, 우리가 여기서 사람은 이런저런 존재여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법적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율법이 그들을 묶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이 그들을 그렇게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피로 속량 받았음을 믿으며,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값으로 사신 바 된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 아래 있었을 때보다 더 그분의 명령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세 시대에 있을 수 있었던 것보다 1만 배나 더 많은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제가 아닙니다. 강요도 아닙니다. 채찍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도 아니고. 법적 속박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헌신적인 사랑과 감사로 주를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드립니다. 속에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를 구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 어떤 사람도 제가 행위로 얻는 구원을 설교하는 줄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이점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항상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는 합당한 행위가 수반됨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필요한 목적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도록 권면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제가 여러분에게 믿는 자는 눈에 띌 정도로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이 어떤 그리스도인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면모를 완벽하게 나타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지만 그 완벽함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분을 닮으려는 열망을 감소시켜서는 안 됩니다.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자신이 고대 그리스의 아펠레스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를 낙담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최선을 다해서 그의 붓을 사용하면 적어도 위대한 화가의 어느 부분은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조각가가 고대 그리스의 프락시텔레스와 경쟁할 수 없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석을 깎고 또 깎다 보면 그가 모델로 삶으려는 것에 가까이 갈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비록 자신이 완전한 탁월함의 높이에 결코 이를 수 없음을 느끼고, 이 땅에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를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주 앞에서 끝까지 그것을 붙들고 자신과 예수님과의 거리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찾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이룬 일은 잊고 울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더 닮기를 원하며 더 높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담대함에서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를 오만이라고 부르지만, 무엇이라 부르든 은혜는 똑같이 가치가 있습니다. 서기관들이 베드로와 요한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면 그들을 교만한 자들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용기가 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사도행전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들에게 결코 굽신거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권력자들과 귀족들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홀로 서서 백성의 예언자로 담대하고 자유롭게 그분의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위엄 있는 행동에 감탄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주께서 자신이 자라고 살았던 동네에 들어가실 때,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줄을 아셨지만 그분은 성경을 잡으셨습니다.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런 떨림도 없이 두루마리 성경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택하신 본문은 어디였습니까? 고향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 취향에 맞는 주제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세대에서 조롱받고 싫어하는 바로 선택의 교리입니다.

그분은 성경을 펴서 이렇게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25-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당신이 기뻐하시는 자를 어떻게 구원하시고 당신이 택하신 자를 어떻게 살리시는지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갈며, 그분을 끌고 나가 언덕에서 밀쳐 떨어뜨리려 했습니다. 그분의 담대함이 존경스럽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를 갈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고, 그들의 입은 복수와 악의로 가득 차 있음을  아셨지만 그분은 사자의 입을 막고 있는 천사처럼 서 계셨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신실하게 선포하셨으며,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이러했죠. 군중 속에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보시면, 그 대가를 고려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면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라고 하셨습니다. 한 율법사가 와서 "선생님이여,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도 정죄하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예수님은 돌아보시며 "화 있을찐저 율법사들아, 너희는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정직하게 진실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두려움 따위는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 무엇에도 떨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을 닮으십시오. 오늘날의 시류에 편승하는 종교를 갖지 마십시오. 그런 종교는 그저 복음적인 응접실에서만 보일 뿐입니다. 온상에서만 번성하는 종교이고 좋은 모임으로만 인식되는 그런 종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십시오. 여러분의 주인을 위해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 마십시오. 여러분 신앙이 여러분에게 결코 수치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종교를 결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은 결코 여러분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간 친구들로부터 무시를 받고, 대적들의 중상모략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계속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런 욕지거리들을 씻어내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계속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주께서 천사들과 주를 사랑하던 이들에게 영광 받으러 오실 때, 여러분을 비웃던 사람들에게 조차도 영광과 존경을 받는 가운데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읍시다. 여러분의 하나님을 위하여 아주 담대합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여러분의 담대함을 보면 "저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하게 하십시오.

그렇지만 한 가지 특성으로 한 사람의 초상화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담대함 하나 만으로는 결코 예수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몇몇 고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용기를 과도하게 낸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캐리커처였을 뿐 초상화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담대함과 예수님의 사랑을 합쳐야 합니다. 담대함을 황동으로 하고 사랑을 금으로 하여 둘을 섞읍시다. 그러면 우리는 아름다운 성문을 장식할 수 있는 훌륭한 고린도식 합금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용기가 서로 섞이게 하십시오. 담대한 사람은 놀라운 일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존 녹스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지만 만약 그가 사랑을 좀 더 가졌다면 더 많은 일들을 이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루터는 위대한 정복자였습니다. 그렇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가 때때로 온화함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태도는 온건하게, 행동은 단호히 했다면, 조금은 부드럽게 말했다면, 그가 했던 것보다 더 좋은 일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담대하되 항상 예수님의 사랑을 닮읍시다.

한 아이가 그분께 오자, 그분은 그 아이를 무릎에 앉히시며 "마태복음 19:14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한 과부가 하나뿐인 아들을 잃자,  그분은 관을 보고 우시며, 한 마디의 말로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중풍병자, 문둥병자, 또는 오랫동안 침상에 누워있던 사람을 보시자, 말씀으로 그들을 일으키시고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분의 끊임없는 수고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유익이 유일한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모든 이에게 면류관을 씌우기 위해서 그분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셨으며, 십자가에서 괴로움에 떨며 극한의 고통 속에 매달리심으로 그분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복종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견고한 사랑에 주목하십시오! 그분은 거대한 사랑의 기둥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그리스도도 사랑이십니다.

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도 사랑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사랑과 선행이 모든 사람들을 비추게 하십시오. "야고보서 2:16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지 마시고 "전도서 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처럼 하십시오. 하워드처럼 감옥 개량 운동에 나설 수 없다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할 수 없다면, 각자 적절한 영역에서 친절한 말을 하고 친절한 행동이라도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친절함으로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내십시오.

그리스도인을 가장 칭찬하는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친절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며, 말씀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에는 돌능금 나무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 지요, 그들은 자신의 체질 내에 엄청난 양의 식초와 쓸개를 섞어서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좋은 말은 거의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 외에는 신앙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편에게 오로지 화를 내는 것으로만 자신의 주인을 대변합니다. 주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약 뭔가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교회든, 집이든, 그 어떤 곳이든 얼굴을 돌처럼 굳게 하고 모든 이에게 들이대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고립된 빙산 같아서 아무도 그들 근처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국 녹아서 없아질 때까지 망각의 바다를 흘러 다닙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는 그들을 천국에서 만나는 것에 행복해하겠지만, 그들이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들은 항상 너무 무뚝뚝한 자세를 취하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그들과 5분을 함께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러지 마십시오. 사랑의 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십시오. 친절하게 말하고, 친절하게 행동하고, 친절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여러분을 "그는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우리가 닮을 또 다른 그분의 위대한 성품은 그분의 깊고 진실한 겸손이었습니다. 우리는 움츠리거나 굽신거리지 않지만 그리스도처럼 끊임없이 겸손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우리는 진리가 자유케 한 자유인입니다. 그 누구 아래에도 있지 않고, 모든 이와 동등하게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오, 교만한 크리스천들이여! 교만한 크리스천이란 말이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분명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야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라고 권해 드립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려 신성의 위엄을 내려놓으셨으며, 갈릴리 촌부들과 함께 장막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겸손의 깊이셨죠, 저녁 식사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예배한다고 공언하는 여러분의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사랑하는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옷을 입지 않은 사람, 자신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영국에서 지배자들은 1실링짜리 주화는 입에 담지도 않고, 1실링은 6펜스짜리 은화를 무시하고, 6펜스 은화는 페니를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교회에 들어오면서 카스트와 계급, 지위는 모두 잊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의 주님은 가난한 이들 중에 계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들과 함께 사셨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고개를 쳐들고 여러분의 이웃들을 벌레 보듯이 무시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여러분은 가장 천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걸치고 있는 것으로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불쌍하고 천한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에 여러분은 얼마나 먼지와 같을까요?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이들을 섬기시려고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분은 자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하신 분이셨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셨으며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여러분, 허리를 굽히시는 여러분의 주인처럼 되십시오. 그것을 굽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그리스도 백성중 가장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음을 영광으로 여기십시오, 그리고, "제 이름이 생명 책의 가장 희미한 부분에 쓰여있을지라도, 저는 그것을 충분합니다. 저는 그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읍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성품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여러분도 그것들을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앉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그리기 때문이죠.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모든 모습을 전해드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점을 압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거룩함을 닮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열심이셨습니까? 여러분도 그러십시오. 항상 좋은 일을 하십시오. 시간을 버리지 마십시오. 시간은 너무 귀한 것입니다. 그분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유익을 전혀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도 그러십시오. 그분이 열심히 기도하셨습니까? 여러분도 기도에 열심을 내십시오.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습니까? 여러분도 자신을 그분께 바치십시오. 그분이 인내하셨습니까? 여러분도 견디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원수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주께서 하신 엄청난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항상 울리게 하십시오. "누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보복하고 싶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그 즉시로 혀의 고삐를 붙잡아서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돌진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분노는 일시적인 광기입니다. 여러분이 용서받기를 바라는 대로 용서하십시오. 대적에게 친절을 베풀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악에게 선을 베푸는 일은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을 닮게 사신다면 여러분의 대적들은 여러분을 보고 "저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었는데"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II.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이렇게 되어야 할까요?

세상에는 일요일에는 아주 종교적이어야만 하지만 월요일에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경건한 설교자이지만 한주의 나머지 날에는 아주 경건하지 않은 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엄숙한 얼굴로 교회에 들어와서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사는 "사도행전 8:23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도 일부는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언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할까요? 전사가 갑옷을 풀고 일반 사람들처럼 되는 때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의복을 벗어 버릴 때가 있는 것인가요? 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모든 장소에서 자신의 신앙 고백처럼 살아야 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과 나눈 대화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제집에 와서 종교를 소개하는 그런 방문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에는 교회에 가는 그런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희 집 거실에서는 아닙니다" 저는 그분에게 만약 교회에만 종교가 있고 다른 곳에는 없다면 덮개 씌우는 사람들을 위한 엄청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라고 물으시더군요. 제 대답은 "우리의 모든 예배 장소에 맞는 침대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을 함께할 종교가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그 종교 안에서 죽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하나님의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만, 살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런 것들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항상 그리스도처럼 되십시오. 공개적으로 그분을 닮아가십시오. 우리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매일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우리의 말은 그냥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가 분석됩니다. 날카롭고 빈틈없는 세상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우리에 대한 예리한 평가를 쏟아 냅니다.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 드러나도록 주의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갈라디아서 2:2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이라면 교회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리스도처럼 되십시오. 디오드레베처럼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같은 형제이며, 똑같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우리 모든 교회의 기본임을 기억하는 대신에 동료 그리스도인보다 높은 지위와 힘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여러분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행하십시오.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여러분을 보고 "저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하게 하십시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여러분의 집에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십시오. 신앙이 있는 집은 진정한 경건의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나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교회가 아니라 집이고, 목사가 아니라 내 가족입니다. 내 진짜 성격의 대부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모님, 아이들, 배우자, 친구입니다. 좋은 사람은 그의 가정을 나아지게 할 것입니다.

롤런드 힐은 예전에 어떤 사람의 아내나 아이들이나 하인이나 심지어 개와 고양이까지도 다른 것들보다 더 낫지 않으면 그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정이 믿음에 있지 않다면, 사람들이 "이 집은 다른 집보다 낫네"라고 말할 수 없다면,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용했던 하인이 여러분의 집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여기는 이상한 부류의 종교적인 가족입니다.  아침 기도도 없고요. 저는 고된 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밤에도 기도가 없었고요. 안식일에는 저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 2주일에 한번, 복음 설교를 들을 수 없을 때 외출을 허락을 받았을 것입니다. 제 주인과 안주인은 당연히 축복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복음은 오로지 그분들을 위한 것이었죠. 저는, 글쎄요. 오후에 지쳐버린 부목사의 옷자락이라도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가정에서도 나타내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이 실제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게 하십시오. 세상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알게 하십시오. 집에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여러분의 참모습입니다. 거기에 계신 여러분의 모습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밖에서의 삶은 어떻게 보면 거대한 연극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은밀한 중에 계신 예수님을 닮으십시오. 하나님 외에는 여러분을 보는 눈이 없을 때, 어둠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을 모두 막았을 때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십시오. 그분의 열렬한 경건과 헌신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은 하루 종일 열정적으로 설교하신 다음에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셨습니다.

그분의 전 생애가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생생한 감화로 끊임없이 지탱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만의 은밀한 삶을 돌아보십시오. 마지막 날에 그 삶을 읽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그런 삶이 되십시오. 여러분만의 내밀한 삶은 하나님의 책의 쓰이고 언젠가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그 삶 전체가 알려지게 되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일 것입니다. 물론, 참 그리스도인의 일부조차도 그것은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겨우겨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루의 짧은 기도 한번, 한 번의 호흡은 단지 우리의 영혼을 살아있게 할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더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은밀한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이번 주 내내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것을 느낄 때면 제 교회와 성도에 속하시는 분들에게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전에 하셨던 것만큼 간절히 기도하기를 멈추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와 간구를 기억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기도하러 나오셔서 주의 종을 도와달라고 얼마나 주께 부르짖었는지요.

우리가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만날 수는 없지만, 아직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계시겠지요? 혹시 저를 잊으신 것은 아니십니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멈추셨습니까? 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간청으로 여러분께 호소를 드립니다. 제가 누구인지, 제가 무엇인지 기억해 주십시오. 어리고, 교육도 거의 받지 않았고, 배움도 능력도 재능도 거의 없는 제가 여기에서 매주 여러분에 설교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계속해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수만 번 들으시더라도 기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많은 교회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에 기도하기를 멈추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간구를 중단하시겠습니까? 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댁으로 가셔서 무릎을 꿇으시고 주님께 큰소리로 부르짖으십시오. 그래서 산 위에서 모세가 손을 들어 산 아래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워 이기도록 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승리할 때입니다, 우리가 실패할까요? 지금은 우리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하는 만조입니다. 이제 노를 저읍시다. 간절한 기도로 당기고 주의 성령께서 돛을 가득 채우시도록 부르짖읍시다. 교파와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사역자를 위해 힘쓰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왜 주의 성령을 지금이라고 부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오순절 절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시간 주 앞에 우리 모두 함께 엎드려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주님의 쇠락한 교회를 소성케 해달라고 간구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III. 그렇지만, 이제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왜 그리스도를 닮아야만 할까요?

그 대답은 아주 자연스럽고 쉽게 다가옵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직과 신용을 위한다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건강한 상태를 위해서 죄로부터 지켜지고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보호받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좋은 포도주를 마시고, 예수님과의 거룩하고 행복한 교제를 누리며, 이 세상의 염려와 어려움들을 넘어서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만큼, 여러분을 발전시키고,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만큼, 여러분을 도와 천국으로 빨리 나아가게 하며, 항상 머리는 하늘을 향하게 하고, 눈은 영광으로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예수님과 함께 걷고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될 때, 여러분은 가장 행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가장 잘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십시오.

다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십시오. 아! 불쌍한 교회여, 너는 잔혹한 적들로부터 심하게 공격받았지만, 대적들이 입힌 상처는 네 친구들이 입힌 상처에 비할바가 아니다. 아! 기독교여, 아무것도 너를 따른다고 하는 공언하는 이들만큼 너에게 많은 상처를 입힌 것은 없다. 누가 이런 상처를 입힌 것입니까? 저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면서, 실제로는 그만큼 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 인척 하며 무리 속에 들어가지만 양의 옷을 입은 늑대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비웃는 불신자보다, 조롱하는 비평가들보다 더 복음을 손상시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은 우리의 교회를 상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사랑하는 구주의 이름이 여러분에게 귀한 것입니까?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을 보고 싶으십니까? 교만한자는 겸손해지고 강한 자는 낮아지는 것을 바라십니까?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불에서 건져내기를 바라십니까? 그들이 저주의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혼의 수고를 보시고 크게 만족해하시기를 바라십니까? 과연 여러분의 마음은 믿지 않는 이웃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들이 용서받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과 일치하는 삶을 사십시오.

살아있는 자의 땅에서 주님 앞에서 걸어가십시오. 선택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십시오. 모든 거룩한 대화와 경건에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비록 선교단체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이런 행동은 선교단체들의 노력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행동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나은 것을 보여주면 그들은 우리의 종교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우리가 공언한 것과는 정반대로 우리를 본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요? "이 사람들은 교회 다닌다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게 없어! 굳이 우리가 저 사람들처럼 될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의 말은 아주 맞는 말입니다. 상식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 자체를 사랑한다면 일관성을 유지하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걸어가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로 표현해 볼까 합니다. 최대한 그분처럼 되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 제가 죽어 가시는 주님을 여기에 모셔와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도록 할 수 있을까요? 이 아침 제 혀는 꽉 막혀 있지만, 저는 그분의 보혈이, 그분의 흉터가, 그분의 상처가 말씀하시도록 할 것입니다. 주께서 이 불쌍한 입을 도와주시도록 간구합니다. 오늘 아침 예수께서 이 자리에서 당신의 손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신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애들아, 나를 봐라! 이 손들은 너희를 위해 못 박힌 것이다. 여기를 봐라. 이것은 너희의 구원의 샘으로 열린 것이다. 내 발을 봐라. 못을 잔혹하게 박은 곳이지. 이 뼈들은 너희를 위해 어긋났고, 눈은 눈물로 넘쳐났지. 머리에는 가시관이 써졌고, 뺨을 얻어맞았다. 머리카락은 뽑혀 나갔고, 내 몸은 고통 자체가 되었다. 나는 나의 백성 너희 모두를 위해 떨며 십자가에 달렸어. 그렇다면, 너희는 지금 나를 사랑하지 않겠니?  나는 너희가 나처럼 되기를 바라.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니? 아니야, 없어!  너희는 내가 무엇보다 공정하고,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다. 내가 너희를 상하게 한 적이 있니? 오히려 나는 너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니? 내가 내 아버지의 보좌에 앉았으니 이제 너희를 대신하여 간구하지 아니하겠니?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켜라"  그리스도인 여러분 이 귀한 말씀이 은방울이 울리는 것처럼 여러분 귀에 영원히 울리게 하십시오. 

오 그리스도인 여러분, 이 아침 "만약"을 여러분 자신에게 적용해 보십시오. 영광의 구주여! "만약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라니요?  귀하고 피 흘리는 어린양 에게 어떻게 "만약"이 있을 수 있지요? 주에게서 흐르는 보혈을 보면서 "만약"이라니요? 그렇습니다. 저는 "만약"을 말하려 하니 눈물이 납니다. 종종 제 생각과 제 말들은 "만약"을 떠올리지만, 제 영혼만은 "만약"이 아니라고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이름은 밝은 빛이요,
감미로운 친구라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압니다. 주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아십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애정 어린 눈길로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들을 지켜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것보다 강력한 이유를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과 존경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처럼 되십시오. 그러면 세상은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IV. 아!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우셨고, 어떤 분은 사랑의 힘을 느끼셨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제가 어떻게 그분을 닮을 수 있을까요?" 하는 궁금증이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을 떠나시기 전에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변화될  수 있는지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먼저 여러분이 그분을 여러분의 모범으로 삼고 그분들 따를 수 있으려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구주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본을 많이 말씀드렸으므로 이제는 우리의 주님이 훌륭하셨고, 거룩하시며, 충분히 존경할만한 분이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본이 훌륭한 만큼, 또한 그분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의 본을 닮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아침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을 위해 피 흘리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찬양에 저와 함께 하실 수 있으신가요?

"오 놀라운 십자가여
구주께서 사랑하셨고 죽으신 곳;
고귀한 그분의 삶은 내 영혼을 이끄시네
그분의 상처와 피 흘리는 곳에서."

만약 그러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닮는 올바른 길에 서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핏줄에서 나온 보혈로 가득한 연못에 몸을 담그기 전에는 그분을 모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뜨겁고 죄 된 열정만으로는 기초 없이 집을 짓는 것이고 허상을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분의 의로 옷 입기까지는 여러분의 삶이 그분을 닮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요. 저희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는데,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분께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러 문제가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을 공부하시라고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이 불쌍한 성경책은 몇몇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도 쓸모없는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잡지나 정기 간행물들 그리고 단행본과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님을 잘 아십니까?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성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더 많이 생각할수록, 그것과 더 많이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돌아서서 제가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립니다. 그리스도를 주목하며 그리스도처럼 되려고 합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복음 전도자들에게서 그분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그분의 성품을 검토하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렇게 해보고, 노력도 했지만 거의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매일 여러분의 부족한 원고를 교정하십시오. 밤에, 24시간 동안의 모든 행동들을 돌아보시고, 아주 세심하게 검토해 보십시오. 저는 제가 쓴 글에 대한 교정지를 받으면 고칠 것들을 여백에 꼭 표시해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50번 넘게 읽었어도 고칠 것들을 표시하지 않으면 인쇄소에서는 오류가 있는 채로 인쇄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발견했다면 반드시 그것을 표시해야 합니다.

밤에 여러분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고, 여백에 표시를 해놓으면 다음날 그것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지속적으로 여러분의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감으로써 그것들을 더 잘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우리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는 옛 철학자들의 격언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봅시다. 잊어버리지 말고, 매일 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 어디에서 잘못한 것인지 살펴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권고는 성령을 더욱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구하기 전에 하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일 뿐입니다. 차가운 쇠를 가져다가 어떠한 모양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그 얼마나 무익한 시도입니까? 그 차가운 쇠를 모루에 얹어놓고 대장장이 망치로 있는 힘껏 쳐 보십시오. 치고 또 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도구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만큼 비틀고, 돌리고 해 보십시오. 결국 여러분은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쇠를 불속에 넣어서 부드럽게 달궈 보십시오. 그다음에 모루에 얹어서 망치를 치면, 칠 때마다 모양이 바뀌며 여러분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성상 원래 차갑고, 굳은 마음을 저 뜨거운 용광로에 넣으십시오. 거기서 완전히 녹게 하십시오, 그러면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밀랍처럼 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오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만약 여러분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처럼 되신다면 하늘에서도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다면, 여러분은 영광 가운데 들어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 문에는 한 천사가 앉아서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의 모습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왕관을 쓴 한 사람이 천국 문으로 옵니다. 천사는 "그래, 왕관을 썼구나, 좋다. 그렇지만 왕관을 썼다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예복을 입은 다른 사람이 옵니다. 천사는 "그래, 예복과 학문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는 확인증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날씬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다른 이가 다가섭니다. 천사는 "그래, 세상에서는 예쁜 것을 좋아하겠지만, 여기에서는 미모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인류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오지만, 천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거지, 그렇다고 네가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이가 나타납니다. 가난하고 학식도 없는 그러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천사는 그를 보자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리스도네, 예수 그리스도의 복사판이 저기에 있구나. 들어와라. 어서 들어와라. 너는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네가 그리스도처럼 되었으니 천국에서 그분처럼 앉게 될 것이다"

오! 그리스도처럼 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리스도처럼 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가라지는 가라지와, 알곡은 알곡과, 같은 것끼리 모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담처럼 죄를 짓고 죽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일어나지 않는 한, 여러분은 영원한 영적 죽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알곡은 알곡과 가라지는 가라지와.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면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같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같지 않다면, 여러분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제 부족한 설교가 여러분이 바닥에 부채질해서 쭉정이들을 날려 보내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고 그분의 은혜를 찬양하는데 이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그분께 올려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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