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 설교 일자 : 1855년 4월 8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예수님의 무덤, The Tomb of Jesus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태복음 28:6"


그리스도의 생애와 연관된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깊은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구주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주목을 이끌기에 합당하십니다.


"그의 십자가, 그의 구유, 그의 면류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큰 영광."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갈보리의 십자가에 이르는 그분의 모든 지친 순례길은 제 눈에는 영광의 길입니다. 그분의 발길이 머무셨던 곳들은 세상의 구세주이자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분의 발이 머무셨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에 거룩하게 다가옵니다. 그가 갈보리에 오시자 사람들의 이목이 모아지고 우리의 모든 생각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 계신 그분에게 집중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싸움을 끝내고 영혼이 떠나실 때까지 깊은 애정으로 그분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을 내리는 그 장면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움직임이 없는 그분의 몸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리마대 요셉과 소심한 니고데모가 거룩한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 못을 빼내고 몸을 눕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우리는 그들이 깨끗한 흰 세마포로 몸을 감싸고, 급히 향품 띠로 그를 두르고 새 무덤에 그를 넣고 안식일을 위해 떠나는 모습을 봅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아침에 갔던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녀는 동이 트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의 무덤에 가려했습니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리아 했던 것처럼 해볼 것입니다.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우리는 그 무덤에 서 있을 것입니다. 무덤을 확인해 볼 것이고 빈 무덤에서 나오는 진실한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 음성은 우리를 위로하고 갈길을 알려줄 것이며 우리가 그 무덤을 떠날 때 "예수님의 무덤은 천국의 문에 다름없다"라고 말하게 할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의 귀한 구주의 죽임을 당한 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아주 엄숙한,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I.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저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자고 초대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저희는 그곳을 매력적으로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그곳으로 인도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을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웃음거리의 삶, 어리석은 삶, 환락의 삶을 사는 더러운 영혼이여 물러가라! 영적인 것을 맛보지 않고, 하늘에 속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더럽고 육적인 마음들이여 물러가라! 여러분의 동료들에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 하늘의 상속자들, 거룩하게 된 사람들, 구속받은 사람들,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러분의 발걸음을 그 거룩한 무덤 쪽으로 옮기는 데 있어 논쟁 거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여러분의 영혼을 그것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위대하신 분의 성지이며, 인자로 오신 우리 인류의 회복자이시고 죽음과 지옥을 정복하신 그분의 안식처인 그곳으로 오십시오. 사람들은 어떤 시인이 태어난 곳을 보기 위해 위대한 영웅들의 고대 무덤을 보기 위해, 명성이 있던 사람들의 무덤을 보기 위해 먼 거리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예수님 만큼 유명한 분의 무덤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에게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다면, 저는 "히 1:9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신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분의 영예로운 장소를 찾으신다면 여기로 오십시오. 거룩한 무덤에서 예배하고 싶다면 여기로 오십시오. 가장 고귀한 뼈가 잠시 있었던 성스러운 장소를 보시려면 크리스천 여러분, 예루살렘 성벽 근처에 있는 저 고요한 동산으로 저와 함께 가시지요.

더구나 그 무덤은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의 것이므로 저와 함께 가시지요. 유대인들은 마리아를 보고 "요한복음 11:31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군가 여러분과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무덤에 꽃을 심을 것이고, 해 질 녘이면 그곳으로 가서 푸른 잔디에 앉아 눈물로 풀을 적실 것입니다. 그곳에는 어머니, 아버지, 또는 아내가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오! 깊은 슬픔 가운데 우리 구주의 무덤이 있는 이 어두운 동산으로 저와 함께 가시지요.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의 무덤으로 오십시오. 그분의 "잠언 18:24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라 할 수 있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크리스천들이여 여러분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무덤으로 오십시오. "이사야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예수님은 여러분의 남편입니다. 

애정이 여러분을 이끌지 않습니까? 달콤한 사랑의 입술이 여러분을 유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랑받았던 분이 잠시나마 머무셨던 곳이 성결한 장소가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대단한 웅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것이 필요하다면 제가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가진 힘은 단순함에 있습니다. 진지한 억양으로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는 단어만 반복할 뿐입니다. 이 부활절 아침,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그분의 무덤을 방문해 보십시오.

예. 저는 여러분이 이 경건한 순례를 하도록 더욱 강권할 것입니다. 오십시오. 천사들도 여러분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라고 천사들이 말했습니다. 시리아어 성경에서는 "와서 우리의 주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들은 저 불쌍한 여자들과 함께 했고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주님이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의 주님이시기도 합니다. 

연약한 여성들이여 당신들은 그분을 주라 불렀으며, 그분의 발을 씻겼고, 그분에게 필요한 것을 드렸습니다. 당신들은 그분의 달콤한 말들을 듣기 위해 그분의 입술에 매달렸으며, 그분의 엄청난 말씀 아래 넋이 나간 채로 앉아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그분을 선생이라 주라 했는데, 옳습니다. 그러나, 천사들도 "그분은 나의 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천사는 고개를 숙이며 부드럽게 말합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이여 그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천사가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오라, 우리가 함께 갈 것이다. 천사들과 사람들이 함께 왕이 계신 곳을 볼 것이다"라고 말할 때 거기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천사들이 그분의 무덤에 들어갔었다는 것을 아십니다. 한 천사는 그분의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그분의 발 곁에 있었지요. 저는 그 밝은 빛의 천사들이 거기에 앉아 서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천사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여기가 그분의 발이 있었던 곳이지" 그러자 다른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저기에 그분이 손이 있었고, 저기에 그분의 머리가 있었지" 그리고 천사들은 천국 언어로 하나님의 깊은 것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몸을 굽혀 바위 바닥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천사들은 그곳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곳에서 그들이 구원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복종하는 고귀한 명령을 내리시는 그들의 주인, 그들의 군주가 잠시 동안 죽음의 노예와 멸망의 포로가 되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문을 여는 문지기입니다. 크리스천들이여 오십시오. 천사들은 여러분을 죽음의 사망지로 직접 안내하는 여러분의 메신저입니다. 여기로 오십시오. 입구에서부터 주저하지 마시고, 어두움을 겁내 하지도 마십시오. 그곳은 죽음의 증기로 축축한 것도 아니고 공기에 전염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십시오. 그곳은 깨끗하고 건강한 곳입니다. 그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지하 묘지는 기쁨으로 충만한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님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곳은 뭔가 우울하고 동굴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곳이지요. 유해한 부패의 악취도 있는 곳입니다. 종종 악성 전염병은 시체가 놓여 있던 곳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도행전 2:31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오십시오. 그곳에는 향은 없지만 대신 향수가 있습니다. 여기로 들어와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실론의 향기 또는 커피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향기를 맡아보신 적이 있으시다면 그곳에서 나는 복되신 예수님의 몸이 남긴 그 향기롭고 거룩한 향취가 훨씬 뛰어남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한번 신성을 담음으로 감미롭고 귀한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결코 썩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벌레도 그분의 몸을 침범하지 않았고, 그분의 뼈 또한 그 어떤 부패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썩지 않으셨습니다. 삼일 동안 주무셨지만 그 시간은 썩을 만큼 길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들어갈 때와같이 팔다리가 상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곧 일어나셨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이여 여러분의 생각과 힘을 모아서 여기로 오십시오. 여기 아주 좋은 초대장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의 묵상의 손을 잡고 여러분을 이끌겠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의 팔로 여러분을 데려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제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왕의 무덤을 방문하도록 한 이유가 아직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곳은 아주 조용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오 저는 휴식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제가 영원히 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는다는 세상 소문이 제 귀에도 들리더군요.

"광활한 들판 가운데 있는 한 집
끝없이 이어진 그림자"

저는 이 피곤하고 고된 삶에 넌더리가 납니다. 몸은 지쳤고, 영혼은 잠시 쉬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아름다운 꽃들과 흔들리는 버드나무 외에는 아무도 없는 자갈이 깔린 개울가에 잠시 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받는 머리에 공기가 향유를 가져다주는 곳, 여름 벌의 윙윙 거림 외에는 아무런 재잘거림도 없는 곳, 가벼운 바람 소리 외에는 어떤 속삭임도 없는 곳, 종달새의 노랫소리 외에는 아무런 노랫소리도 없는 그런 고요함에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잠시나마 편안함 가운데 있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 되어 머리는 망가졌고 영혼은 지쳤습니다. 오! 크리스천 여러분 평온해지고 싶습니까? 상인들이여 여러분의 일을 놓고 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일단 진정하고 여기로 오십시오. 이곳은 예루살렘의 웅성 거림과는 멀리 떨어진 쾌적한 정원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이곳은 세상의 먼지가 묻은 여러분의 옷을 털고, 잠시 동안 평화롭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최적의 휴식 장소이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휴게실입니다. 


II. 주의를 환기를 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을 초대했고 이제 우리는 무덤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깊은 주의를 기울여 무덤 안을 살펴보고 그것과 연결된 모든 것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선, 값비싼 무덤임을 주목하십시오. 평범한 무덤이 아닙니다. 지독히도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남은 비참하고 너무나 지친 뼈들을 묻기 위해 삽으로 대충 파낸 그런 무덤이 아닙니다. 왕의 무덤입니다. 언덕 한쪽을 잘라서 만든 대리석으로 된 곳입니다. 크리스천 여러분, 여기에서 예수님은 왜 그렇게 값비싼 무덤을 갖게 되셨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분의 옷은 우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을 입으셨고, 그 옷에는 그 어떤 자수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머리 둘 곳도 없었으므로 화려한 궁전도 물론 없으셨습니다. 그분의 신발에는 금도 없었고, 화려한 장식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은 값비싼 무덤에 들어가시게 되었을까요?

저희가 그 이유를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고난을 끝낼 때까지 영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위대한 일을 끝낼 때까지 온갖 욕설과 부끄러움과 침 뱉음과 매질과 수욕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발에 짓 밟히셨습니다. "이사야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러나, 그분이 그의 일을 모두 마치는 순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저 몸이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라. 자야 한다면 존귀한 무덤에서 자게 하고, 쉬어야 한다면 귀족들로 하여금 장사를 치르게 하라. 산헤드린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로 하여금 장사를 치르게 하라.  몸을 귀한 향품으로 감싸고 영광을 얻게 하라. 지금까지 욕설과 수치와 매질과 수욕은 충분히 받았으므로 이제는 존귀함을 받게 하라" 크리스천 여러분 그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의 위대한 일을 끝마치신 이후 값비싼 무덤에 들어가시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일을 마치셨으므로 이제는 아버지께서 그분을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무덤이 값 비싼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빌린 것이었습니다. 무덤 위를 보니 "아리마대 요셉 가문을 기념하는 성소"라고 새겨져 있군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곳에서 잠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의 무덤에 장사되신 것입니다. 자신의 거쳐할 집이 없으셨던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 쉬셨습니다. 탁자도 하나 없으셨지만 그분은 제자들의 대접을 받으며 사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배를 빌리셨던 그분은 이 넓은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시고 기부받은 무덤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오! 가난한 사람들이 용기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이웃을 희생시켜 가면서 매장되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난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의 무덤에 장사되셨다고 얼굴을 붉힐 필요가 있을까요? 아! 만약 제가 요셉의 무덤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는 예수님을 그 안에 장사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선한 요셉은 자신을 위해서 새 무덤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가문을 위한 무덤을 준비했지만 다윗의 자손인 그분은 그곳을 왕의 무덤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덤을 빌린 것으로 하나님께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한 이자로 돌려받으셨습니다. 단 3일 빌리셨고 그 이후에는 바로 물러 나셨습니다. 그분은 그 무덤을 망가뜨리는 대신 향으로 채우고 성스럽게 하셨으며 더욱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거기에 장사되는 것이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빌린 무덤이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제가 그리스도를 욕보이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죄가 빌린 죄였으므로 그분의 장사 또한 빌린 무덤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죄가 없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그분의 머리에 지신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고, 저의 모든 죄와 여러분이 믿는 자라면 여러분의 모든 죄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그분은 그들의 질고를 짊어지셨고 그들의 눈물을 자신의 몸에 가지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죄들이 다른 이들의 죄였으므로 그분은 다른 이의 무덤에 장사되신 것입니다. 전가된 죄였으므로 무덤도 전가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 무덤은 그분의 것이 아니라 요셉의 무덤이었습니다.

이 경건한 조사에 지치지 말고 이 거룩한 장소와 연결된 모든 것을 관찰하는데 집중합시다.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이 무덤은 바위 안을 파낸 것이었습니다. 왜 이 무덤이었을까요? 영원한 반석이신 그분은 바위 안에 장사되셨습니다. 바위 안에 있는 반석인 셈입니다. 그러나 왜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그의 시체를 훔쳐갈 수 있는 은밀한 방법이 전혀 없는 확실한 곳이라고 그곳을 제안합니다.

아마 그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오! 내 영혼아! 너는 영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는가? 그리스도의 무덤은 바위 안을 파낸 것이었습니다. 흙을 파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물에 쓸려가거나, 부서지거나, 부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 무덤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연적으로 보존되지 않았다면 영적으로 말입니다.

바울의 죄를 가져갔던 그 동일한 무덤은 저의 죄 또한 가져갈 것입니다. 저의 죄가 없어졌다면 그 죄는 제 어깨에서 그 무덤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덤은 바위를 파낸 것이었습니다. 그 바위 무덤에 죄가 묻혔기 때문에 천 년 전에 죄인이 구원받았었다면 저 또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리석 바위 무덤에 저의 죄악들이 영원히 묻힌 것이고 결코 다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그 무덤은 그 누구도 묻힌 적인 없는 무덤이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네스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는 동정녀의 태에 있으셨고, 그분이 돌아가실 때는 새 무덤에 놓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한 번도 누운 적이 없는 그곳에 누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는 다른 시체가 있었던 적이 없었으므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부활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사람의 개입이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어떤 늙은 선지자가 이 무덤에 들어와서 그분의 뼈를 만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엘리사가 죽은 다음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장사하러 가다가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었는데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했다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무덤에는 그 누구도 장사된 적이 없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어떤 선지자의 뼈에도 닿은 적이 없습니다. 이 무덤은 이 세상의 왕께서 삼일 낮밤을 쉬셨던 새 무덤이었습니다.

우리가 조금 배웠으므로 무덤을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몸을 굽혀서 또 다른 것을 주의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무덤을 보셨지만 혹시 모든 부분을 잘 개켜서 한 곳에 둔 수의를 보십니까? 그리고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따로 접어서 둔 것을 보십니까? 왜 수의는 잘 개켜져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도적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했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도적들은 수의도 같이 훔쳐갔을 것입니다. 도적들은 수의를 그렇게 잘 개켜서 조심스럽게 놓아둘 생각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도 급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스도께서 급하게 이곳을 나오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잠들었다가 깨셨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52:12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때가 되면 그의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올 것이라. 그러므로, 아주 정확한 시간, 예정된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유롭게 일어나셨고 수의를 벗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순결한 죄 없으신 상태로 나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속죄해 주셨을 때 아마도 그 수의는 죄의 결과물 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수의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수의는 죄의 표식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따로 개켜져 있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을 살펴보겠습니다. 남겨진 수의는 모든 크리스천이 죽을 때 입을 옷입니다.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곳에 수의는 잘 놓여 있었지만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따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 죽을 때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조문객들만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수의를 입겠지만 수건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들이 죽으면 우리가 사용하도록 그 곁에 수건이 놓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간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그것을 사용할까요? 아닙니다. 주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셨습니다. 우리는 서서 먼저 떠난 이를 보며 우리의 눈물로 그들의 뺨을 적시고, 소나기 같은 슬픔을 그들의 머리에 쏟아 내지만 그들은 어떨까요?

오 그들은 울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마라, 나는 영광을 받았다. 나를 위해 슬퍼마라, 나는 이 악한 세상을 뒤로하고 훨씬 좋은 곳으로 들어갔단다" 그들은 수건도 없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상하죠! 죽음을 견디는 사람들은 울지 않고, 그들이 죽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우니 말입니다.

아랍인들은 말하기를 아기가 때어 날 때는 다른 사람들은 웃지만 아기는 울고, 사람이 죽을 때는 다른 사람은 울지만 당사자는 웃는다고 합니다. 크리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축복인지요! 크리스천이 죽을 때, 수건은 사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따로 놓여 있었습니다.



III. 감정은 고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저희에게 조금 유익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저는 감정이 있는 신앙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지금 제게 명 연주자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여러분 마음의 현을 울려서 거기로부터 장엄한 음악의 영광스러운 선율을 끌어낼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이끌어온 이곳은 아주 엄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깊은 슬픔의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도록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십시오, 저기가 여러분의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곳입니다. 그분은 살인을 당하셨고, 제 영혼과 여러분이 그 살인자입니다.

"아, 나의 죄, 악랄한 나의 죄여
네가 그분을 가장 괴롭힌 사람이었구나,
나의 죄들은 못이 되었고
믿음 없음은 창이 되었다.
아! 나의 구주께서 피를 흘리셨는가?
그리고, 나의 왕께서 죽으셨는가?"

제가 그분을 죽인 것입니다. 이 오른손으로 그분의 가슴에 단검을 꽂은 것입니다. 저의 행위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 아! 저는 저를 가장 사랑하는 이를 죽인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던 그분을 죽인 것입니다. 이 눈들아 너희는 저 망가지고 찢긴 예수의 몸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느냐? 오!  크리스천들이여 여러분은 충분히 슬퍼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은 눈물을 흘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하트가 말한 것을 믿습니다. 하트의 경험으로는 그가 기쁘고 즐거울 때보다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더 많은 슬픔을 느낄 때 그리스도와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만 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벌레 같은 인생들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은 너무나 큰 대가를 지불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분이 고난당하셔야 하는 상황을 본다면 베드로가 "마태복음 16:22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했던 것처럼 좋지 않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저에게 "마태복음 16:23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이 죽지 않도록 막는 그런 사랑에 동의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8:11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지만, 제 생각에 제가 그분이 십자가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면 바로 달려가서 그분을 밀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오! 예수님. 죽으시면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시면서 제 목숨을 사시려고 하십니까?" 생명과 영광의 왕이신 그분의 몸을 극심한 고통 속에 괴롭게 하는 것은 너무도 값비싼 일인 것 같습니다. 자비를 베푸신 그 손에는 저주의 못이 박혀야 했습니다. 항상 사랑의 옷을 입으셨던 그 성전은 잔인한 창으로 뚫려야만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오 크리스천 들이여 울고 싶지 않으십니까? 슬프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대가로는 너무 크지 않습니까?

저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덕분에 죽음에서 건져졌는데, 그 순간 목숨을 구해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잃고 말았다면 구해진 그 사람은 항상 깊은 슬픔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물가에 서 있었는데,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얼음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겨우 아이를 붙잡은 그 친구는 손으로 아이를 잡고는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아이를 구했다."라고 외쳤지만 아이를 붙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은 물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의 시신은 그가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를 동안 찾지 못했습니다.

오! 그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영혼은 빠져들고 있었고 천국의 높은 문에서 그분은 제가 지옥의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시고는, 뛰어드신 것입니다.

"그는 그의 두꺼운 고통 아래로 가라앉으셨고
나를 영광으로 끌어올리셨다;
그의 손에 주어진 선물은 없고,
그저 가슴에 탄식만 남았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게 했으니까요.

크리스천 여러분, 이제 잠시 여러분의 시각을 바꾸어 기쁨과 즐거움으로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십시오. 그분은 지금 거기에 누워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무덤을 보셨을 때는 우셨겠지만, 이곳이 비어 있으므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죄가 그분을 죽였지만 그의 신성은 그를 일어나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범죄함으로 그분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그분의 의는 그분을 회복시켰습니다. 오! 그분은 죽음의 결박을 끊으셨습니다. 그분은 무덤의 수의 벗고 그분의 발로 사망을 짓밟으시며 나오셨습니다. 오 크리스천들이여 즐거워합시다.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한 가지 더 생각을 나누고 이 무덤에 대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리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저 또한 거기에 누울 것이므로 엄숙한 경외심으로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십시오.

"들으라! 무덤에서 나오는 애절한 소리를,
내 귀들이여, 그 부르짖음을 들으라;
살아있는 사람들이여, 와서 저 바닥을 보라
당신들이 곧 누울 곳이라."

"왕들이여 , 이 흙은 당신들의 침대요,
당신의 모든 권력도 어쩔 수 없소;
키는 이도, 현명한 이도, 머리가 좋은 이도,
모두 우리처럼 눕는다오"

사실 우리 모두는 얼마 있지 않아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자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철이 아니라 먼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제 뼈가 놋쇠인 것도 아니고 힘줄이 철로 된 것도 아닙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제 몸은 원래의 성분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사라지는 순간을 그려 보신적인 있으십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자신이 죽음과 얼마나 가까운 지를 거의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의 나이를 기억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얼마나 남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지요. 팔십이란 나이를 생각하면 죽음까지 몇 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씩 저는 저의 떠날 시간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는 제가 비명에 죽을지 아닐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바라건대 갑자기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갑작스러운 영광이니까요. 보몬트 박사와 같은 그런 축복된 죽음이었으면 합니다. 강단에서 저의 책임과 함께 몸을 내려놓고, 일과 삶을 한 번에 끝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선택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픔과, 슬픔, 괴로움 가운데 몇 주 동안 연명하며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 순간이 오면, 말을 꺼내기에는 너무도 엄숙한 그 순간, 영혼이 몸을 떠나는 그 순간, 우리는 의사가 그럴 수 없음에도 몇 주나 몇 년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오오 입술이여 그 엄숙함을 깨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죽음이 오면 강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화살은 이미 떠났습니다. 한 고약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침실을 계속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오 신이시여, 저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침대에 누우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을 것이므로 죽을 때까지 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그분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항상 "오 신이시여, 저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외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 그 순간이 바로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이마가 얼마나 땀범벅인지 한번 보십시오, 혀는 바싹 말랐고, 입술은 또 어떻습니까? 그 남자는 눈을 감고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크리스천이 이었다면 그분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들어봐! 천사들이 속삭여
영혼이여, 그곳을 떠나 여기로 오시오.
나를 확 끌어당기는 이건 뭐지?
내 감각들을 가져가고, 내 눈을 닫고
내 영혼을 잠기게 하고,  내 호흡을 가져가는 이건 뭐지?
내 영혼아 말해다오 이것이 죽음인가?"

우리는 그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긴 숨을 한번 쉬면 영혼은 떠날 것입니다. 우리는 속량 받은 영혼이 하나님의 보좌 근처에 있는 저택을 얻는 것 앞에서 "그는 떠났다"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오십시오, 이 고요한 굴은 곧 여러분의 처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오십시오, 여러분도 이곳에 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인인 여러분도 이곳으로 오시라고 잠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도 저희처럼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죄는 여러분을 죽음의 문턱에서 지켜줄 수 없습니다. 죄인들이여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무덤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죽을 때 그리스도의 무덤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단 한 시간을 위해 왕국을 주겠다며 외쳤다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틱호에 승선했던 한 남자의 절망적인 외침을 읽어 보셨습니까? 물에 빠져가던 그 남자는 배를 향해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돌아와라! 와서 나를 태워주면 내가 3만 파운드를 주겠다." 참 불쌍하죠! 3만 개의 세상을 가졌다 해도, 그렇게 해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욥기 2:4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여러분 중에 몇몇 분들 이 아침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이곳에 오셔서 웃고 계신 분들도 죽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살려 달라고 기도하며, 매달리고, 다음 안식일을 보게 해 달라며 악다구니를 할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 그동안 버린 안식일들이 유령처럼 여러분 앞을 거닐 것입니다. 오! 그 안식일들이 여러분의 눈앞에서 성난 머리를 흔들어 댈 것입니다. 여러분이 떠나보낸,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떠나보낸 그 귀중한 시간들 때문에 울고 슬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 후회의 고통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랍니다.

 

IV. 지시가 전달되었습니다.

크리스천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봄"으로서 한 두 가지 교리를 배우십시오. 여러분은 "그의 누우셨던 곳"에 오셔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여러분이 그분의 빈 무덤에 계셨다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그분의 신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 때에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맨 처음 일어나신 분, 즉 그들의 인도자는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은 부여된 능력에 의해 일어나지만 그분은 스스로 일어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무덤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 그분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바로 그분의 놀라운 부활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더 좋은 증거는 없습니다. 오 크리스천 여러분, 여러분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을 붙들고 계신 그분의 어깨는 정말 신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것은 여러분이 가진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함께하시면, 여기에서 배울 두 번째 교리는 여러분을 매료시킬 것입니다. 오 진실한 신자들이여 이 빈 무덤을 주목하십시오. 이 무덤은 여러분의 무죄와 완전한 해방의 표식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빚을 갚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결코 그 무덤에서 일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이 영원한 심판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지 않으셨다면 이 순간까지도 그분은 거기에 누워계셨을 것입니다. 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입니까?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
부활하신 구주의 외침을 들으라."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광명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렸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루지 않으셨다면 천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사는 그분을 거기에 그냥 두었을 것이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오, 아니오, 당신은 아직 죄인이요. 당신은 어깨에 당신이 선택한 모든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있으므로 아주 작은 것까지 모든 값을 치를 때까지 당신을 가게 하지 않을 것이오."

그분이 자유롭게 가시는 모습 속에서 저는 저의 속량 받음을 봅니다.


"내 예수의 피로 얻은 나의 완전한 속량"

의롭게 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책에서 저는 죄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의 영원한 책을 열어본다면 저는 분명 지불되어 없어진 저의 모든 빚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 지난날 지었던 죄들의 용서가 있습니다,
그 죄들이 얼마나 검은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 놀란 나의 영혼이여,
앞으로 지을 죄에 대한 용서도 여기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피로 용서받았습니다
죄의 엄청난 저주와 책임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가 결론을 내리며 배울 교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부활의 교리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구주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들도 부활해야 합니다. 분명 저는 죽을 것입니다. 이 몸은 벌레들의 축제장이 될 것입니다. 작은 식인종들이 다 먹어 치우고 아마도 땅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겠지요.

제 몸을 이루고 있는 성분들은 식물에게로 들어가고 그것은 다시 동물에게로 옮겨져 아주 먼 세계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천사의 나팔이 울려 퍼지면 마치 환상 속 계곡에 누워있던 마른 뼈들처럼 각각 흩어져 있던 제 몸의 각 성분들도 그 짝을 찾아 모일 것입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뼈는 그 짝을 찾아 맞추어 들어가고 그 위를 살이 덮을 것입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불어오고 숨은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죽게 두셔도 됩니다, 짐승들이 저를 삼켜도 되고, 불이 저를 가스와 수증기로 만들어도 됩니다. 제 모든 성분들은 모두 다시 복원될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똑같은 실제 몸이 무덤에서 시작하여 영화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처럼, 이전과 똑같은 몸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동일한 몸이 부활하셨던 것처럼 저도 그럴 것입니다.

오 나의 영혼아, 너는 지금 죽는 것이 두려우냐? 너는 너의 동반자인 몸과 잠시 헤어지겠지만 곧, 천국에서 나시 만날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혼과 몸이 다시 하나가 될 것이다. 무덤은 무엇일까요? 무덤은 크리스천이 몸의 옷을 넣어 씻고 깨끗하게 하는 욕조입니다. 죽음은 무엇일까요? 죽음은 우리가 불멸의 옷을 입는 대기실입니다. 마치 에스더가 향품에 몸을 담그듯이 우리 몸이 하나님의 품에 합당하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문입니다. 저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강물을 건너기를 두려워 마라,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겨라
죽음의 사랑과 능력을 가지신 그분께 맡겨라
여전히 요동 치고, 소리가 울리지만;
여름 저녁의 부드러움처럼,
넓어진 파도는 안전하다;
그분의 보호하심이 없는 이는
거기에서 난파할 것이다!"
 

오셔서 거룩한 묵상으로 주께서 누우셨던 그곳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오후에는 자주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가셔서 그것을 묵상하며 울고 웃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소심한 분들도 계실 텐데, 그곳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그 소심함이 그리스도를 묻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코 그분의 장례를 치르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것이므로 그분을 묻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했을 것이므로 그분을 땅에 그대로 두고 결코 그분을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움이 그분을 묻었습니다. 밤의 제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몰래 가서 그분을 묻었습니다. 그러므로, 소심한 여러분도 가실 수 있습니다. 망설임, 불쌍한 두려움, 그리고 낙담과 공포가 있으신 분들은 자주 그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은 여러분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거기에 장막을 치고 머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괴로움과 슬픔에 빠질 때면 마음에 이렇게 말하십시오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

 

 

728x90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