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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4월 1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활 쏘는 자에게 공격받은 요셉, Josept Attacked by The Archers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창세기 49:23-24"

백발의 야곱이 침대에 앉아 열두 아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베푸는 장면을 보는 것은 분명 멋진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생애중에 얍복 강가, 벧엘에서의 잠, 브니엘 등 여러 일을 겪은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노인으로 우리도 그 앞에 경건하게 엎드려 "그 당시에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때보다 야곱이 훌륭해 보이고, 후광이 비추었던 때는 바로 그가 죽음을 앞둔 때였습니다. 마치 지는 해처럼 그는 마지막 때에 더 크고 눈부셔 보였습니다. 마치 그의 연약함의 구름이 은혜의 영광으로 물들여지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 어떤 앙금도 없는, 가장 밑바닥까지 맑게 흐르는 좋은 포도주처럼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죽음의 시간에 이를 때까지 그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랑, 긍휼 그리고 선하심의 노래를 계속했으나, 어느 노시인이 말한 죽을 때까지 평생 노래하지 않는다는 백조처럼 노래 부르는 자였던 이 늙은 가장은 오랜 시간을 조용히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휴식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여전히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만, 그의 불타는 눈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목소리는 쉬고 떨리고 있었지만, 영감 받지 못한 세상의 그 어떤 시인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러한 시를 그의 자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불러주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들 르우벤을 바라보니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르우벤의 죄가 기억났던 것이지요. 시므온과 레위를 지나며 약간의 책망을 합니다. 다른 자손들을 지나면서는 그 부족의 미래를 바라보며 찬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말을 할 때마다 힘이 들지만, 이 선량한 노인은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천상의 불을 가진 눈과 하늘의 큰 가슴으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9: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잠시 베개에서 휴식을 취한 야곱은 다시 일어나 앉아 자손들의 이름을 짧게 부르며 노래를 계속합니다. 

그러나, 오! 야곱이 그의 가장 어린 아들 중의 하나인 요셉에 이르렀을 때, 제 상상으로는 야곱의 두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 서 있는 요셉과 함께 요셉의 어머니이자 그의 가장 사랑했던 아내인 라헬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요셉은 라헬의 간절한 기도 가운데 얻은 아들로 라헬은 20년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집도 지키지 못했으나, 결국 행복한 엄마가 되었고 그 아들을 "하나님이 더하심"이라 불렀습니다. 비록 라헬은 몇 년 전에 죽어 차가운 땅속에 묻혔지만, 오! 라헬은 요셉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요! 늙은 야곱도 또한,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야곱은 요셉이 겪은 고난 때문에 그를 사랑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에 팔려 가는 바람에 서로 헤어졌었지요. 야곱은 요셉이 시위대장 집과 지하 감옥에서 겪은 시험을 회상했고, 이집트 총리로서의 위엄도 기억했습니다. 큰 강이 바다와 만날 때 밀려오는 조수와 흘러내리는 강물이 만나 솟아오르는 것처럼, 마치 천국의 노래와 야곱의 노래가 하나 되는 것처럼 하늘의 영광과 이 땅에서의 그의 환희의 감정이 만나 그의 영혼을 쏟아내게 합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창세기 49:22-26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 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정말 훌륭한 시의 마무리입니다! 야곱은 단 하나의 축복만 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그가 요셉에게 베푼 가장 풍성한 축복이었습니다.

요셉은 죽었지만 주님은 그 요셉을 지금 품고 계십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이 구절의 의미를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계신데 이런 이해가 가장 좋습니다.

이 아침 네 가지를 나눌까 합니다. 우선 잔인한 공격입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두 번째는 방패를 든 전사입니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세 번째는 그의 숨겨진 능력입니다.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마지막 네 번째는 요셉에서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영광스러운 연결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I. 그럼, 먼저 "잔인한 공격"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요셉의 대적은 활 쏘는 자였습니다. 원문에는 "활의 달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활을 엄청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피에 목마른 전사에게는 모든 무기가 비슷할 수 있겠지만 검을 든 사람보다는 활로 공격하는 사람이 어딘가 비겁해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검을 든 사람은 바로 근처에서 발과 발을 맞대기 때문에 상대방도 방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활 쏘는 자는 멀리서 상대가 알지 못하도록 매복했다가 활을 쏩니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가르며 날아온 화살은 심장을 관통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들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발을 거의 맞대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그들의 낯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하지요. 그들은 당당히 우리 앞에 와서 우리 면전에다 대고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대답할 수 없도록 멀리서 화살을 날립니다. 비겁하고 비열한 그들은 화살에 지옥 새의 깃털을 달고 화살촉을 다듬어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슴에 겨눕니다.

활 쏘는 자들은 불쌍한 요셉을 몹시도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잔인하게 요셉에게 활을 쏘았던 이들이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시기의 궁수들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유혹의 궁수들이 있었고 세 번째로 중상모략의 궁수들이 있었습니다.

1. 첫 번째로, 요셉은 시기의 궁수들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소년이었을 때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빼어나고 준수한 젊은이였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광대한 마음을 가졌고 고상한 지성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경건하고 충만한 기도의 사람이었던 그는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 그의 아버지는 요셉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요! 깊은 애정으로 마치 그를 왕자처럼 대했고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형제들보다 잘 대해주었습니다. 자연스러웠지만 애정을 표현하는 어리석은 방법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기도하러 갈 때마다 어린 그를 조롱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형제들과 같이 있을 때면 요셉은 형들의 일꾼이고 노예였습니다. 수많은 조롱과 놀림으로 자주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어린 요셉은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슬픔들을 견뎌야 했습니다. 

결국 좋지 않은 일은 요셉이 형제들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함께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르우벤의 만류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주의 섭리로 이스마엘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갈 때까지 요셉을 구덩이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옷을 벗기고 벗은 채로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요셉이 어디로 가는지로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요셉을 떠나보냄으로 더 이상 그에 대한 시기도 분노도 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떨어지고, 친구도 없이 형제를 잃고, 노예상들에게 끌려갈 때는 아마도 손이 묶인 채로 낙타에 묶여 끌려갔을 텐데 그가 느꼈을 고통이란, 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손이 묶이고 족쇄가 채워졌던 사람들,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고 자신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던 사람들은 궁수들이 시기의 화살을 자신에게 쏘았을 때 그것이 얼마나 심한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나라에서 팔리고,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의 가족, 그의 모든 즐거움, 아버지의 미소와 보살핌과도 작별한 것입니다.

그는 노예였고 노예상이 데려가는 곳에서 일해야만 했습니다. 노예 시장에 내놓아졌고, 벗겨진 상태로 거리에 내놓아졌습니다. 매 맞고 채찍질당했습니다. 인간에서 동물로 떨어지고 자유인에서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진짜로 궁수들은 요셉을 향해 심한 화살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요셉이라면 그 시기에서 빠져나올 것을 바라십니까? 아닙니다. 녹색 눈을 가진 시기의 괴물은 런던뿐 아니라 이곳저곳에 살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에도 몰래 들어옵니다. 아! 정말로, 형제의 시기를 받는 것은 가장 힘든 일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미워하면 우리는 그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이들이 우리를 헐뜯으면 우리는 허리띠를 단단히 매고 이렇게 말합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러나, 집안의 친구들이 우리를 비방하고, 우리를 지지해야 할 형제들이 우리의 대적으로 변하고, 그들이 그들의 어린 형제들을 짓밟으려 한다면, 여러분,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이 구절에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라고 달콤한 말씀을 주시니, 주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여러분 중에 그 누구도 시기를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더 잘 살수록 여러분은 더 많은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가장 잘 익은 열매가 새에게 가장 잘 쪼이고, 나무에서 가장 긴 꽃이 바람에 가장 쉽게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여러분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면 사람들은 여러분을 미워할 것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존중해 주시면 사람들은 여러분을 무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슬에 매일 수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천국에서 금 목걸이를 걸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타는 쇠고리를 허리에 찰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광 가운데 금으로 장식한 것을 이마에 쓰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첫 번째 궁수는 시기의 궁수였습니다.

 

2. 그런데, 이것보다 더한 시련이 그를 덮쳤습니다. 유혹의 궁수가 그를 향해 활을 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제가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좀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그가 요셉의 시험과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은 한 주인에게 팔렸는데, 그 주인은 곧 그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요셉은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되었고 그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음탕한 여주인은 요셉에게 빠져버렸고 요셉은 매일 끊임없는 그녀의 유혹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요셉은 여주인의 불구덩이 같은 유인책에 빠지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어느 날 여주인은 요셉을 붙잡고 자신과 동침하기를 강요했지만, 그는 진정한 영웅처럼 "창세기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군인과 같이 그는 그런 경우에는 도망치는 것이 더 좋은 용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도망쳐, 요셉, 도망치라고! 도망치는 것 말고는 이길 방법이 없어"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는 자신의 옷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오 제 생각에 어떤 영웅의 이야기도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 어떤 기회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요셉은 그런 기회가 많았습니다. 끈질긴 간청은 대부분의 사람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들지요. 매일매일 아주 부드러운 간청으로 곤란에 빠지고 매시간 유혹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인간 이상의 뭔가 천사를 초월한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조심하며 자신의 길을 깨끗하게 하려는 청년에게 하나님만이 허락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복종하고 굴복한다면 안락하고 즐거운 삶이 있을 것이다. 더 높아지고 부자가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보다 나를 더 훌륭하게 감싸줄 것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내가 신뢰를 지킨다면, 나는 감옥에 갇히고, 지하 감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내게 남겨진 것은 오로지 부끄러움과 불명예뿐일 것이다"

오! 사실 요셉의 그 마음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지만 그로 하여금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겨움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있었습니다. 진실로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힘이 있었습니다.

3. 그러자 또 다른 궁수가 그를 공격했습니다. 바로 중상모략의 궁수들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유혹에 넘어오지 않자 여주인은 요셉을 남편에게 거짓으로 고발했고, 아내의 말을 믿은 요셉의 주인은 그를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지 않은 것은 놀라운 주의 섭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주인인 보디발은 호위대의 대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한마디면 요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요셉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그의 인격은 이미 망가져 버렸고, 감옥에서 조차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다른 일반적인 죄수들 조차 요셉이 자신들보다 더 사악하고, 요셉과 비교하면 자신들은 천사라고 생각하며 그를 멀리했습니다. 오! 자신의 인격이 날아가 버린 것을 느끼고, 스스로가 비방당하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어떤 것으로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다가 바로 이것으로 깨지고 맙니다. 요셉이 중상모략 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궁수들이 몹시도 그를 괴롭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이런 궁수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은 결코 비방당하지 않을 것 같으십니까? 중상모략 당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몫입니다. 열심을 내는 만큼 많은 욕을 먹을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았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모든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궁수들과 철공들은
마음에 각 형제들의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욕하고, 소돔도 알지 못하는 죄를 그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항상 이러한 일들이 따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도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들은 우리를 우리 주님보다 더 나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했었습니까? "술꾼이고 포도주를 즐기는 놈이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 거룩한 열정, 하늘의 분노여 저희로 하여금 그들이 저희와 동일한 광기를 가지도록 만들게 하소서! 우리는 미쳐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현명하게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을 선호하는 지혜는 없죠. 사리를 분별할 줄 안다면 하나님의 진리를 경멸하거나 혐오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사악한 것이라면 우리는 더욱더 사악할 것입니다.

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하는 이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예상하셔야 합니다.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반드시 닥치는 일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왕도는 없습니다. 고난과 시험의 길입니다. 활 쏘는 자들은 여러분이 이쪽에 있는 한 여러분에게 활을 계속 쏠 것입니다.

 

II. 우리는 지금까지 활 쏘는 자들이 어떤 화살들을 날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바위 뒤에 있는 언덕을 조금 올라서 방패를 든 전사를 만나 보고, 활 쏘는 자들이 그를 심하게 괴롭힐 때 그의 용기는 어떠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림을 그려봅시다. 궁수들은 아래에 있고 요셉은 바위 절벽 위에 있습니다. 가끔씩 요셉은 궁수들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살펴보지만, 대부분은 바위 뒤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늘의 보호 속에 아래에서 무엇을 하는지 상관치 않고 바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제 들 염소 길을 따라가서 전사의 견고함을 살펴볼까 합니다.

우선 우리는 요셉 자신이 본문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에서 처럼 자신의 활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보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조용히 있었고,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원했다면 자신의 활을 잡고 궁수들이 자신에게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온 힘을 다해서 궁수들의 심장을 향해 화살을 날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사의 조용함을 주목하십시오. 

거기에서 요셉은 그의 강한 팔다리를 쭉 펴고 쉬고 있습니다. 그의 활은 견강함 속에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 계속 분노해라, 나를 향해 화살을 계속 쏘아서 빈 화살통으로 만들어라, 활시위는 닳게 하고, 활을 계속 당겨서 부러지게 해라. 나는 여기서 몸을 쭉 뻗고 안전하게 쉬고 있다. 내 활은 견강함 속에 있다. 너희에게 활을 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일이 있다. 내 화살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적을 향해 있다. 나는 가련한 참새와 같은 너희에게 화살을 낭비할 수 없다. 너희는 그저 내 귀중한 화살 아래에 있는 새일뿐이다. 너희에게 내 화살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요셉은 바위 뒤에 머물며 그들 모두를 경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활은 견강함 속에 있었습니다. 

요셉의 조용함을 잘 기억하십시오. 그의 활은 "머물러" 있었습니다. 흔들리거나 계속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용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공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활 쏘는 자들이 요셉을 학대하며 괴롭혔지만 요셉의 활은 그들을 향하지 않았고 견강함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의 활을 그들을 향해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분노할 때 요셉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달을 향해 으르렁 거리는 모든 개들을 가르치려고 달이 멈춥니까? 사자를 향해 짖는 모든 똥개들을 죽이기 위해서 사자가 몸을 돌릴까요? 나이팅게일이 별빛 때문에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해서 별이 빛내기를 멈춥니까? 거들먹거리는 구름이 햇빛을 가린다고 해서 태양이 가던 길을 멈춥니까? 아니면 버드나무가 가지를 강물에 담갔다고 해서 강이 멈춥니까? 

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는 계속 움직입니다. 인간이 반대한다고 그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사람이 비난한다고 멈추지 않고, 칭찬한다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활이 머물러 있게 하십시오. 서둘러서 여러분이 옳다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아주 담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굳게 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활은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 단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활은 조용했지만, 그것은 활이 망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셉의 활은 정복자 윌리엄의 것과 같았습니다. 요셉 외에는 그 누구도 그 활을 다룰 수 없었습니다. 그의 활은 견강함 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활을 당기고 있는 한 전사를 봅니다. 강력한 팔로 활을 잡고 활시위를 당기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활은 견강함 속에 있었습니다. 부러지지도 버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활은 순결함이었고 요셉은 그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활은 믿음이었고 요셉은 그것을 버리지도, 깨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활은 용기였고 요셉은 그것에 실패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활은 순결함이었고 요셉은 그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활은 그의 품성, 그의 정직이었고 요셉은 그 어느 것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판에 대하여 아주 까다롭게 생각합니다. "분명히, 아주 분명히 그 사람들은 자신의 품성을 잃게 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스스로의 품성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그 어떤 바보가 자신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퍼뜨릴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멈추는 것보다 퍼뜨리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만약 진실을 전 세계에 퍼지게 하고 싶다면, 최소한 급행열차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퍼지게 하고 싶다면, 그것은 날아갈 것입니다. 깃털처럼 가벼워서 단순한 호흡만으로도 그것을 옮길 것입니다. "진실이 신발끈을 매고 있는 동안, 거짓말은 세계를 돌 것이다"라는 속담이 딱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워 빠르게 날겠지만, 마치 오리털이 성벽에 부딪히는 것과 같습니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어떠한 손상도 가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 여러분 두려워 마십시오. 온갖 비방은 날아가게 그냥 두시고, 온갖 질시가 여러분을 향해서 혀를 내밀고 쉭쉭 거려도 그냥 두십시오. 여러분의 활은 견강함 속에 있을 것입니다.

오! 방패를 든 전사들이여 조용히 머물러 계십시오.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신 절벽 위 둥지에 있는 독수리처럼 여러분을 쫓는 자들을 내려다보십시오. 담대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쏘아보아라, 너희 화살은 내가 있는 곳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으니, 원한다면 너희 화살을 마음껏 버려보아라." 그리고는 여러분의 날개를 치며 천국으로 오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가장 안전한 처소를 찾았으니 거기에서 마음껏 그들을 웃어 주어도 됩니다. 

 

III. 오늘 본문에서 나눌 세 번째는 숨겨진 능력입니다.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우선 그의 힘에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진짜 힘입니다. 말씀은 단순히 그의 손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손과 팔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엄청난 것을 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가상의 힘이거나 팔에는 근육이 없어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진짜 힘이었고, 실제 근육, 실제 힘줄, 실제 신경이었습니다. 손가락을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 같은 단순한 손놀림이 아니라 그의 팔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그 힘은 실제적인 능력이었습니다. 단순히 용맹을 자랑하는 것도, 허구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허황된 꿈이나 실체가 없는 비현실도 아니었고 그것은 진짜 능력이었습니다.

저는 요셉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그들과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타격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크리스천들은 뼈와 근육이 있고 강하게 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타격보다 훨씬 더 무섭습니다. 교회의 대적들로 하여금 그들이 생명의 상속자를 공격하려 한다면 아주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도록 해야 합니다. 거인들보다도 강한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백성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싸우려고 일어선다면 창도 갑옷도 그들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내하는 세대로 억울해하거나 분내지 않고 고통을 견디며, 조롱하는 이들을 욕하지 않으면서 그 조롱을 참아냅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적들이 응분의 징벌을 받을 때에 그들은 승리를 얻습니다. 그래서, 그 "적은 무리"가 천국을 가진 사람들이며, 그 "만물의 찌끼"였던 이들이 바로 참 능력과 위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 은혜를 입은 요셉은 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만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팔에 힘이 있는 참 힘과 능력입니다. 오 하나님의 대적들이여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열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전능하신 아버지에게서 온 강력하고 신성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희의 능력은 해가 비추면 곧 녹아서 물이 되는 낮은 산 위에 쌓인 눈처럼 쉽게 녹고, 쳐지고, 죽지만 우리의 생기 있는 능력은 알프스 정상의 눈처럼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을 것이다. 이것이 참 능력이다.

그다음에 살펴볼 것은 요셉에게 주신 능력은 신성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팔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복음을 강력하게 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요셉은 유혹에 맞설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신성한 힘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매일, 죄인은 위로부터 받은 것 외에는 아무 능력도 없음을 점점 더 확신합니다. 만약 제가 천국 문 앞에 제 두발로 서서 문고리에 이 손을 얹는다 할지라도, 그 순간 저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천국을 향하여 그렇게 멀리 왔더라도, 저는 그 문을 열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저의 구원을 위해 제가 뭔가 들어야 할 돌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저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참 능력은 신성한 것입니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처럼, 영적인 능력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옵니다.

다시 한번 오늘 본문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이 능력을 축복스럽게도 아주 친숙한 방법으로 주십니다.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본문은 사실 하나님의 손이 요셉의 손 위에, 하나님의 팔이 요셉의 팔 위에 올려져 있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소년들이 활쏘기를 배워야 했었지요, 그 당시의 아버지라면 아이의 손을 같이 잡고 활을 당겨 주며 "아들, 활은 이렇게 당기는 거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요셉의 손위의 얹으시고, 그의 넓으신 팔을 그의 택하신 자녀의 팔 위에 얹으심으로 요셉이 힘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가르치십니다. 그의 팔을 그들에게 얹으십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입을 아이의 입에, 자신의 손을 아이의 손에, 자신의 발을 아이의 발 위에 얹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을 그의 자녀의 입에, 자신의 손을 그의 사역자의 손 위에, 그의 발을 그의 백성들의 발 위에 얹으셔서 우리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정말 놀라운 낮아지심 아닙니까! 영광의 별들이여, 이런 낮아지심의 사랑을 본 적이 있습니까? 요셉이 힘을 얻도록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보좌에서 허리를 굽혀 자신의 손을 자녀의 손에 얹고, 자신의 팔을 뻗어 요셉의 팔에 얹으신 것입니다.

한 가지를 더 나누겠습니다. 이 능력은 언약의 능력이었습니다.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여러분이 성경 어디를 읽든지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부분을 만날 것인데, 이것을 통해 야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존중하고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아! 저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몇몇 알미니안들은 견딜 수 없겠지만 저는 특히 구원의 언약을 좋아합니다. 저희 조상과 맺은 언약도 아니고 저와 하나님 사이에 맺은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치르기로 언약을 맺으셨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백성을 얻게 될 거라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치르셨고 그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선택하신 모든 긍휼의 그릇을 예수께 넘겨 주심으로써 주께서 감당하실 부분을 이루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능력, 모든 은혜, 모든 축복, 모든 긍휼, 모든 위로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언약을 통해 얻습니다. 언약이 없었다면, 우리가 그 영원한 헌장을 찢을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왕이 바룩의 두루마리를 찢어 버린 것처럼 지옥의 수괴가 언약을 찢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사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약을 통해 약속된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긍휼, 언약의 은혜, 언약의 약속, 언약의 축복, 언약의 도우심, 언약의 모든 것, 이것들은 크리스천이 천국의 들어가려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크리스천들이여 이제 활 쏘는 자가 여러분을 학대하며 여러분에게 활을 쏘며 여러분을 상하게 하였지만 여러분의 활은 도리어 견강하며 여러분의 팔은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지신 여러분, 이거 아십니까? 이것을 통해 여러분이 여러분의 주인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IV. 네 번째는 요셉에서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영광스러운 연결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같은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이자, 목자인 그분도 비슷한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활 쏘는 자들이 그분에게 활을 쏘며 학대하고 상하게 하였지만 그분의 활은 도리어 견강하며 그분의 팔은 야곱의 하나님을 힘입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축복이 "창세기 49:26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오래 붙잡아 두지 않고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목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고 다음은 반석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모습을 나타내시자마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지금까지는 우리가 목자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가졌던 지위에서 쫓겨날 것이고 우리의 존엄성과 권위를 잃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계속 그리스도를 공격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의 변덕스러운 무리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디를 가시든지 인기 있는 설교자 이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미워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 중 상당수는 그리스도를 좋아하고 존경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군중들은 항상 그에게로 몰려들었으며 그분을 둘러싸고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제 생각에 만약 여러분이 갈보리 언덕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저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니오, 그는 두루 다니면 좋은 일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하시는 거죠?"라고 물으면 "랍비 시므온이 소란을 피우라고 몇 세겔을 주었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당시 군중들은 제사장들의 돈과 영향력 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분을 미워했던 것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거래를 없애셨고, 성전에서 물건을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셨으며, 그들의 위엄을 떨어뜨리며 그들의 허세를 무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견딜 수가 없었지만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그분은 점점 더 높게 오르셨습니다. 그분은 그의 양들을 모으셨고, 어린양을 품을 안으셨으며, 이제 한 무리로 모아 천국으로 인도할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롤런드 힐은 그의 저서 "마을의 대화들"이라는 책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지식적 설교자인 티플래쉬에 대한 것인데 그가 했던 말 중의 하나입니다. "오 주여, 당신은 너무나 멋있고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내려오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그 이웃에 있던 브런트라는 정직한 설교자가 오후에 설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높으신 양반들의 말에 대답으로 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오 주여 , 당신은 당신의 모든 순전함과 사랑스러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신, 활 쏘는 자들은 당신을 쏘며 학대했습니다. 그들은 주이신 당신을 데려가 당신의 떨리는 팔다리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당신이 거기에서 매달려 죽고 있을 때, 그들은 당신을 야유했고, 조롱했으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당신이 물을 달라고 하자 그들은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죽으실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무덤에 계셨고, 그 무덤은 미움과 증오로 봉인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멸시를 받았고, 성육신하신 주님은 미움과 증오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여러분의 주인이 그것을 통과하셨다면 여러분도 반드시 그것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반석이라 결론짓고 있습니다. 제가 들은 한 이갸기가 있는데, 유대인 랍비들 가운데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시편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 본문과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라고 합니다. 모든 돌들은 채석장에서 잘라서 다듬어져 가져왔고 각각에는 놓일 위치가 표시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돌들 중에 아주 기이한 돌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묘사할 수 없는 모양으로 건물 어디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이 벽에도 맞추어 보고, 저 벽에도 맞추어 보았지만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돌은 짜증과 화만 돋우고 버려지게 됩니다. 긴 세월 동안 성전이 건축되는 동안 이 돌은 이끼가 끼고 주변에는 풀이 자랐습니다. 모든 이들이 지나며 그 돌을 비웃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웠고 다른 모든 돌들은 잘 맞았지만 그 돌만큼은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 채석장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해가 갈수록 불쌍한 그 돌은 이리저리 굴러 다녔고 여전히 경멸받았으며 건축자들은 그 돌을 계속 거부했습니다. 드디어 성전이 완성되어 열리는 날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웅장한 광경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건축자들은 "머릿돌은 어디에 있지? 꼭대기는 어디로 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건축자들이 거부했던 저 돌이 머릿돌로 맞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 전까지 그들은 무엇이 머릿돌인지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돌을 가져다가 건물 꼭대기를 올렸고, 돌이 꼭대기에 이르자, 건축자들은 그 돌이 그곳에 딱 맞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자 호산나 하는 외침은 하늘을 울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이셨습니다. 건축자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그분은 평민이었고 가난했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들과 낮은 자리로 다니시며 죄인들을 알았지만 세상 물정에 밝은 이들은 그분을 경멸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들의 영광스러운 완성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가장 높은 돌에서 다스리시며,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분은 높임을 받을 것이며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해처럼 빛날 것이며 모든 나라는 그로 인하여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대에 걸쳐 그를 복 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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