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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3월 18일 주일 저녁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성경, The Bible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호세아 8:12
이 말씀은 에브라임에 대한 하나님의 꾸짖음이십니다. 주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잘못을 꾸짖으시려고 몸을 굽히신다는 것은 그분의 선하심을 증명하는 그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일 때문에 그분이 머리를 숙이신 다는 것은 은혜로운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원하시면 밤을 옷처럼 두르실 수 있고, 별들을 손목에 팔찌로 차고, 태양을 왕관으로 머리에 쓰실 수 있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분은 저 높이 제칠 천국에 홀로 거하시며 자신의 피조물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태연자약하게 내려다보실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로마신 요베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요베는 끊임없는 침묵 속에 앉아서 가끔은 끔찍한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운명을 바꿉니다. 그러나, 땅의 하찮은 것들은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자신의 시선 아래에 던져 버립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몰두하고 자신에 빠졌지요. 요베는 혼자 살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피조물의 하나로 밤중에 산꼭대기에 서서 조용한 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들은 신의 눈이지만 나를 내려보지는 않는군요. 당신들의 빛은 전능한 신의 선물이지만 제게는 사랑의 미소가 아니군요. 위대한 창조주는 나를 잊었고, 나는 창조의 바다에 있는 하찮은 물방울 하나, 생명의 숲에 있는 고사리 이파리 하나, 존재의 산에 있는 먼지만도 못하는구나. 신은 나를 모른다. 나는 혼자고 외톨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차원이 다르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 사람을 모두 아십니다. 그분의 율법에는 참새나 벌레는 없지만 우리는 있습니다. 그분의 시선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가장 비밀스러운 행동조차도 그분은 아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무엇을 견디든, 무엇에 고통을 받고 있든 그분의 시선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의 미소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노여움 아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에게서 잘못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 인류를 내려다보시면서도 파멸의 미소를 짓지 않으신다니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 로우 신지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려다 보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에 대해서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인간의 죄를 보셨을 때 어떻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사람에게 달려들어 밟지 않으셨고, 지옥에 머리가 떨어져 죽을 때까지 목을 흔들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자신의 피조물을 설득하려고 내려오셔서 그들과 토론을 벌이십니다. 이를테면, 스스로 죄인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그분의 고충을 털어놓으시고 그분의 원하시는 바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너희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구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 저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주의 대사로써 여러분을 설득하고, 여러분 중 많은 분에게 있을 죄를 드러내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을 마음에 새겨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와 의와 다가올 심판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할까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죄는 바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그의 율법을 주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축복의 책인 성경에 관한 것입니다. 제 메시지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제가 가진 언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주제이지요. 수천의 연설가들이 한 번에 말할 수도 있는 주제입니다. 위대하고 광대하며 온 세상의 모든 웅변으로도 여전히 소진되지 않고 남아 있을,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주제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오늘 밤 저는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모두 오늘 본문에 있는데요, 첫째 성경의 저자입니다. ""내가 기록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주제입니다.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일반적인 반응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계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I. 우선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 저자가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제 성경이 있는데 이 성경 누가 쓴 것일까요? 성경을 열어보면 성경은 여러 권의 소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있는 다섯 권의 책들은 모세가 작성한 것입니다. 조금 더 넘겨보면 다윗이 쓴 것도 있고 솔로몬이 쓴 것도 있습니다. 미가, 아모스, 호세아가 쓴 것들도 있습니다.
좀 더 넘겨서 더 빛나는 신약으로 넘어가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 베드로, 야고보 등이 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덮고 나면 스스로 이 책의 저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모두 공동 저자라고 해야 할까요? 과연 이들은 이 방대한 책의 작성자들로 작가로서의 영예도 나누어 가질까요?
우리의 거룩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적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영원한 입술에서 나온 단어들, 성령께서 주신 문장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비록 모세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하프를 연주하며 감미로운 시편들을 그의 손으로 써 내려갔지만, 황금 하프를 연주하는 손을 움직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이 사랑의 찬가를 불렀고, 수많은 지혜의 말을 했지만, 그의 입술을 주관하시고 그의 말을 설득력 있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천둥과 같은 나훔의 경고들을 따라가다 보면, 구산의 장막이 환란을 당하는 것을 보는 하박국을 만나면, 땅이 불타는 장면이 있는 말라기를 읽고, 사랑을 말하는 요한의 글을 읽으면, 하나님의 대적들을 삼키는 불을 말하고 있는 단호하고 불같은 베드로의 글과 하나님의 대적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는 유다서를 만나면, 그 어떤 곳에서나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말씀은 영원하시고, 보이지 않으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성경이고 저는 이 성경을 볼 때면 이런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보게 나는 하나님의 책이니 나를 읽게. 나는 하나님의 작품일쎄.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니 나를 열어서 읽으시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책이니, 나를 읽으면 자네는 그분을 보게 될 것이고 그분은 내 책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신다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니"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책을 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증명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한 논거와 근거가 있으므로 만약 제가 하고 싶다면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 앞에 그것들을 보여 드리고자 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오늘 밤의 이야기는 그것이 아닙니다. 원한다면, 성경이 사람의 그 어떠한 저작보다 웅장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시인들 보다도, 그 모두를 합쳐도 성경에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절묘한 시와 강력한 언어를 우리에게 줄 수 없음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성경이 다루는 주제들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으며, 사람은 엄청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를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음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사람이 전해준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단 한 분의 위대한 최상의 존재의 의지에 따라 질서 정연 해지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장엄한 하나님의 섭리도 사람이 그 저자일 수는 없습니다. 글쓴이들의 잘못도 말하고 있는 성경의 정직성을 자세하게 풀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성경 스스로 증명하는 일치성,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단순성 등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것들을 더 언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크리스천 사역자이고, 여러분도 크리스천이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인데 크리스천 사역자가 믿지 않는 이들의 주장에 답하기 위해서 그 논쟁 거리를 가져올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취급받는 일입니다. 믿음 없는 불쌍한 피조물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말해줄 때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알지 못합니다. 그다음에는 다시 진리의 방패를 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공격 거리를 모읍니다. 비록 우리가 잘 준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지옥의 화두를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끼리 잘못된 것을 나누게 두고, 우리는 그들의 거짓을 전파하는 사람은 되지 맙시다.
사실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들로 채우기를 원하는 몇몇 설교자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물질과 말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이곳에는 믿음이 없이 오신 사리에 밝으신 분이나 자유사상가가 계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분들과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논객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깨닫고 느낀 것들을 말하는 설교자로 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제 믿음의 닻을 놓치고, 제 믿음의 밧줄을 끊어 버렸던 악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저를 계시의 해변에 단단히 묶어 두지 않고 배를 바람에 떠가도록 했습니다. 제 이성을 선장으로 삼고, 제 머리를 방향타 삼아 미친 항해를 시작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끝낸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만 여러분에게 잠시 그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그것은 폭풍이 치는 자유로운 생각의 바다로 서둘러 나가는 항해였습니다. 계속 나아가자 어느덧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물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이라도 하듯 현란한 광채를 보였습니다. 물 위로 날아다니는 불꽃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로운 생각이 이런 것이라면, 괜찮은데!" 제 생각은 보석과 같았고 두 손으로 별들을 뿌렸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이런 현란한 광채 대신에 사납고, 무서우며 음침한 악마를 보았습니다. 제가 나아갈수록 이를 갈며 저를 향해 으스스한 웃음을 웃기 시작했습니다. 제 뱃머리를 붙잡고 저를 끌고 갔는데, 저의 빠른 움직임에 조금은 우쭐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전에 가졌던 내 믿음의 표식도 휙 지나쳐 버리는 엄청난 속도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전진해 나가자 저는 제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세상이란 있는 것인지 나와 같은 그런 것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저는 음울한 불신의 영역 그 끝자락, 불신의 바다 가장 밑바닥으로 갔던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악마는 스스로를 가로막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넘치는 의심이 자신의 모순과 불합리함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바다의 밑바닥에 닿았을 때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과연 이 의구심은 사실이 될 수 있을까?" 바로 이 생각에서 저는 깨어났습니다. 저는 그 죽음의 꿈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영혼과 몸을 망칠 수도 있었음을 아십니다. 제가 깨어나자 믿음이 배의 키를 잡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가자, 가자" 하며 다시 저를 이끌었습니다. 저는 갈보리에 닻을 내렸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옥을 빠져나와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가 아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그 위험한 항해를 했었고, 안전하게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게 다시 불신자가 되겠냐고 물으신다면, 오 저는 아닙니다. 이미 해보았으니까요.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나중에 가면 쓰디쓴 것이 되고 맙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달려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더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서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12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러므로, 저는 저를 흔들려는 지옥의 논쟁들을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밤 설득하지도 논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공언하지 않는다면 아마 여러분은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공언이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여러분의 모습이 여러분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모두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받아들이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니"
우선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성경을 바라보시면서 그 권위를 존중하십시오. 이 성경은 일반적인 책이 아닙니다. 그리스 현인들의 말도 아니고 과거 철학자들의 발언도 아닙니다. 이 말들이 오로지 사람에 의해서 쓰인 것이라면 우리는 이것들을 거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 저는 이 책이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들이라고 엄숙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이 언제 써졌는지 볼까요. 그 기원은 천국의 언덕 너머입니다. 서신서들을 볼까요. 서신서들은 제 눈에 영광의 광채를 비춥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수많은 의미와 미지의 신비들로 가득합니다. 예언서로 넘어가 볼까요. 예언서들은 우리 생각 이상의 경이로움 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 책중의 책이여 네가 진정 나의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라면 나는 너 앞에서 머리를 숙일 것이다.
광대한 권위의 책이여, 너는 하늘나라로부터의 선포다. 나는 내 이성이 너와 모순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실행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성! 너의 자리는 이 책이 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서 이 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나의 이성과 지성은 이리 와서 가만히 앉아 말씀을 들어라.
저는 이 생각을 어떻게 확장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 여러분이 성경은 실제로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더라면! 오! 여러분이 천국의 밀실로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직접 펜을 들고 이 편지들을 쓰고 계신 것을 목격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성경을 귀중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마치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직접 쓰시는 것을 목격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입니다.
이 성경은 권위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책이므로 성경은 권위를 부여받은 책입니다. 오! 여러분 중의 그 누구도 성경을 무시하고 멸시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하십시오. 성경의 권위를 잊지 마십시오.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진실성을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쓴 것이라면 온갖 논쟁거리를 남겼을 것이고 대적들은 몰려들어 악한 것들로 덮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쓴 것이라면 아주 의로운 사람이 와서 그것을 바로 찢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평가들로 하여금 와서 오류를 찾아보라고 하십시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샅샅이 뒤져보라고 하십시오.
이것은 석영이나 흙 같은 어떤 물질도 섞이지 않은 순금의 광맥입니다. 점 없는 별이고, 흠 없는 태양이며, 어둠이 없는 빛이고, 완전히 찬 달입니다. 희미함 없는 영광입니다. 오 성경이여! 그 어떤 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완전하고 순전한 책이여! 우리는 그 어떠한 작은 어리석음도 없이 모든 지혜가 성경에 모여 있음을 선포할 수 있소!
이것은 이성과 지혜가 실패하는 갈등을 끝내는 판사와도 같습니다. 어떤 오류로도 오염되지 않은 책이며 순전하고 순수하며 완전한 진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이 책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아! 원하신다면 오류를 찾으셔서 하나님께 따지십시오. 그분께 이 책이 원하는 모습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해보십시오. 저는 점잖은 척하고 겸손한척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성경을 바꾸는 것을 듣고는 얼굴을 붉힐 뻔했는데 그 사람들은 말씀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정죄를 받으리라" 공손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선생들이여! 매끈하고 화려한 사람의 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의 그 어떠한 변형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기도하는 중에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라고 하는 대신에 "너희 부르심과 구원을 굳게 하라"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옛날 옛적에 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 어떻게 성경을 쓰라고 가르친 것처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 한없는 몰염치, 자만심의 극치여! 전지전능하신 분을 가르치고 영원하신 분에게 지시하려고 하는군요! 여호야김이 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잘라버린 것과 같은 사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는데, 그것은 말씀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말씀의 특정 부분을 싫어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의 취향은 타락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작은 의견에 머물지 않으실 것이라는 점을 확신해도 됩니다. 당신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쓰셨기 때문이고, 당신들과는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그것을 누릴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들이 싫어하는 것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쓰셨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신 것이므로 우리는 성경 앞에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성경은 순수한 진리입니다. 어떠한 이물질도 없는 생명수를 뿜어내는 샘입니다. 어떠한 어둠도 섞이지 않은 빛을 발산하는 태양입니다. 축복의 성경은 모두 진리입니다.
이 주제를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잠시 멈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써주신 자비로운 성품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아! 하나님은 성경 없이 우리를 방치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셨다면 우리는 마치 장님이 벽을 찾듯이 어두운 길을 더듬고 다녀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성의 별을 유일한 인도자로 삼고 헤매며 고통받도록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성의 빛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했던 철학자 흄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어느 날 저녁 한 목사님의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흄은 여러 가지 토론을 했고 자연의 빛으로 충분하다는 자신의 굳건한 확신을 설파했습니다. 떠날 시간이 되자, 목사님은 계단을 내려가는데 필요하므로 촛불을 하나 밝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흄은 "아닙니다, 자연의 빛으로 충분합니다. 저 달이 그렇게 해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구름이 달을 가려 버렸고 흄은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아! 흄씨 결국 작은 빛이 있었던 것이 좋았겠네요"
자연의 빛으로 충분하다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위로부터의 빛도 조금 가지는 것이 더 나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좀 더 확실하게 옳은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단 하나의 빛보다는 두 개의 빛을 가지는 것이 더 낫습니다. 창조의 빛은 밝은 빛입니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밤하늘에 금빛 글씨로 쓰여 있습니다. 대양의 파도 가운데서, 들판의 나무들 가운데서도 그분의 영광을 발견을 할 수도 있지만, 이 두 책 안에서 그분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분 자신이 직접 이 책을 쓰셨으므로 여기 이 책을 통해 그분이 더 명확하게 드러남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그분은 여러분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주실 것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고, 이 성경을 사랑합시다. 순금보다 더 귀하게 여깁시다.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만약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여러분 중에 지난달 이 말씀을 전혀 읽지 않으신 분들은 어떻게 될까요? "목사님, 지난달이요! 저는 올해 한 번도 읽지 않았는데......" 아! 여러분 중에는 전혀 읽은 적이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정중하게 대합니다. 깔끔하게 묶인 작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하얀 손수건으로 싸서 예배 장소로 가져갑니다.
집에 돌아오면, 다음 주일 아침까지 성경을 서랍 속에 고이 모셔 둡니다. 그리고는 다시 꺼내서 예배당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쌍한 성경이 바람을 쐬게 되는 방법입니다. 천국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여러분의 방식입니다. 어떤 분의 성경 위에는 손으로 "저주"라고 쓰기에 충분한 먼지가 쌓여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분들은 성경을 아주 오래 동안 전혀 열지 않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말이 조금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실까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 성경을 읽었느냐?" "아니오" "나는 너에게 긍휼의 편지를 썼었는데, 읽어 보았느냐?" "아니오" "저런! 내가 너에게 초청의 편지를 보냈는데, 읽어 보았느냐?" "주여 저는 인봉도 떼지 않은 상태로 꼭 닫아 보관했습니다." "몹쓸 사람이군. 그렇다면 너는 지옥으로 가야겠다. 내가 너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어도, 너는 인봉도 떼지 않았다면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오! 여러분에게는 이런 모습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시고 성경을 찾는 사람이 되십시오.
II. 두 번째는 성경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니" 성경은 엄청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엄청난 것들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성경의 한절, 한절에는 엄숙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꼭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천으로 둘러싼 미라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경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직조기에서 짠 천으로 둘둘 말아 놓은 엄청난 크기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의 참 의미를 얻을 때까지 한 겹 두 겹 계속 벗겨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의미의 일부를 찾더라도 천을 계속 벗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 놀라운 말씀의 모든 영원한 것들을 열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위대하고 엄청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좀 더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우선, 성경의 모든 것은 위대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위대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위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교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파가 비슷하고 어떤 교회에 나가는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저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편견을 가장 싫어합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찬사나 칭찬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 만큼 싫어하는 또 다른 것이 있는데 바로 자유주의입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다는 주장을 합니다.
저는 어떤 교회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로마 교회에서도 구원받습니다. 몇몇 분은 제가 이 자리에서 언급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에서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성공회 가운데 경건하고 기도하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개신교계 모든 부분에는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택함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에는 소금이 조금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들을 말씀드릴 때, 여러분은 제가 그것들이 모두 같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상상을 하셨습니까? 그것들은 모두 똑같이 참일까요? 한 종파에서는 유아 세례가 맞다고 하고, 다른 종파에서는 틀리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양쪽이 모두 옳다고 하시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우리가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고, 우리의 자유 의지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들 모두가 옳다고 믿습니까? 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결코 그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는 사랑하지 않으시며, 종종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도 하지만 사랑을 멈추고 떠나기도 하시다고 말합니다. 양쪽 모두 대체로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예"이고 다른 쪽에서는 "아니오"라면 양쪽이 모두 옳을 수가 있을 까요? 그것들을 볼 수 있으려면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야가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그것들 모두가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것들이 비본질적인 부분에서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경에 위대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순수한 종교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은 "오, 저희는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그저 저희 부모님이 가신 곳을 따라갔을 뿐입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 그것이 사실 참으로 중대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님이 하시던 대로 갔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갔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여러분의 의지로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 저의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참이라고 믿고 계신 그 생각은 제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분들을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분들과 다른 교단에 속해 있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분들을 크리스천 형제, 자매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분들이 우연히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제가 똑같이 되어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머리를 주셨고 저는 그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하십시오.
문제 될게 아니다고 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두신 것은 무엇이든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그런 것을 적어 놓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어떤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질문을 찾아보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취하십시오. 제 설교가 이 책에 기반했는지 따져 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공명정대함과 이 책만 있으면 됩니다. 제가 혹시 이 성경에 반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저는 바로 다음 주일에 그것을 철회할 것입니다. 제가 서고 넘어짐은 오로지 이 성경에 달려 있습니다. 찾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문제 될게 아니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항상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진리는 꼭 믿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과 직결된,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들을 알고 싶다면 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위대한 것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 가지로 기록하신 율법을 일종의 요약이나 정리한 것으로, 저의 오랜 한 친구가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아! 네가 세 가지의 R을 설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너를 축복해 주실 것이다." 세 가지의 R이 뭐냐고 물으니 "Ruin 파멸, redemption 구속, regeneration 거듭남"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이것들은 신학의 요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멸 Ruin의 R을 보면. 우리는 모두 넘어져 파멸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이미 길을 잃었고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하여 우리 모두는 파멸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악한 마음과 의지에 의해 우리 모두는 파멸됩니다. 그리고 은혜가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두 번째 R은 Redemption 구속입니다. 우리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의 능력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그의 공로로 속량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의 힘으로 구속을 받습니다.
다음으로 거듭남 Regeneration의 R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받았다면 우리는 분명 거듭난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구속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원하는 대로 하게 두십시오. 자신 좋아하는 만큼 충분히,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게 두십시오. 거듭나지 않고, 새 마음과 새 생명을 가지지 않는 한 그는 여전히 첫 번째 R인 파멸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R은 복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칼빈주의의 5대 강령에 더 좋은 복음의 전형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 인류의 전적 타락과 죄성;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특별한 구속; 성령의 능력에 의한 실질적 부르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기반한 성도의 견인입니다. 제 생각에 구원을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저는 아타나시우스 신경과 같은 것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하죠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바라는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보편적 신앙을 지녀야 하며, 그 신앙은 이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을 때 저는 멈춰야만 했습니다. 저는 뭘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 성경 전체, 오직 성경의 보편적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뭔가 새로운 신앙고백을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이 이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찾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니" 여러분은 이 말씀의 위대함에 어떠한 의구심이 드십니까? 여러분의 주의를 끌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잠시 돌아보십시오.
"아, 나는 끝없는 두 바다 사이,
좁은 길목에 서 있네;
찰나의 짧은 순간이라도,
저 천국에 머물게 하소서,
그렇지 않다면 지옥에 떨구소서"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좁은 해변 길목에 서 있었던 때를 회상해 봅니다. 파도가 양쪽 해변을 계속해서 깎아 내고 있었지만 저는 생각에 쌓여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결국 해안에 닿기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말았습니다. 파도는 저와 해안 사이를 씻어 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매일 그 좁은 해변 길목에 서 있고, 파도가 그곳으로 몰려올 것입니다. 파도가 여러분의 발에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보십시오. 매 순간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은, 천으로 감싼 북처럼, 무덤으로의 장례 행진곡을 울리고 있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매 순간 무덤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제가 회심했다면 제가 죽었을 때 저를 받아줄 기쁨과 사랑의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날개가 펴지고 강한 날갯짓으로 저는 빛과 별 너머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러 영원히 그곳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죄의 세상을 떠나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겠네"
오! 제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가슴은 부풀어 오르며, 머리는 혼미해질 정도입니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네 이름 높도다"
아! 구름 너머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푸르른 풀밭과 기쁨의 강이 흐르는 감미로운 들판입니다. 엄청나지 않으십니까? 그렇지만, 성경은 멸망당하는 자들은, 거듭나지 않은 불쌍한 영혼들은, 영원한 멸망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없이 죽는다면 거기에는 희망이 없다고 하십니다. 한가닥의 희망조차도 없는 곳으로 그곳에서는 "너는 네가 마땅히 할 일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라고 쓰인 불타는 편지를 읽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는 말과 함께 주의 면전에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들이 엄청나지 않으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기대할만하고, 지옥은 끔찍합니다. 시간은 짧고, 영원은 무한합니다. 영혼은 소중하고 고통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천국은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들으셔야 하는 것들입니다.
III. 마지막 주제는 성경이 이 세상에서 받고 있는 홀대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상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상한 것으로 취급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선,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 본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경은 아주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곳에 참석한 성인 한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이런!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 이군요. 어떤 책에 있는 이야기이죠?"
한 번은 한 여성분이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영혼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그분은 얼마나 깊게 깨달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지를 말씀하셨지만, 반면에 그분이 속한 그룹에서는 다른 규칙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성경을 열어서 로마서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런 말씀이 있었어요? 저는 전혀 몰랐네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분은 성경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런 말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여러분은 성경보다 은행 계좌에 대하여 더 잘 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쓰신 것보다 자신의 일기장을 더 잘 아십니다. 여러분은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실 텐데 읽고 나면 무엇을 얻으십니까? 한 줌의 거품일 뿐입니다. 사람이 그냥 끄적거린 것들은 게걸스럽게 삼켜버리지만, 도무지 성경은 읽지 않습니다. 단단하고, 오래가며, 실속 있고, 만족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고 무시의 찬장에 처박혀 있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여러분은 성경을 참으로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이점에 대해 뭐라고 좀 해야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항상 여러분에 대하여 너무 좋은 의견보다는 좋지 않은 의견을 갖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분은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맞다고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집에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성경도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할까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성경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언제입니까? 혹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안경이 3년 동안 성경 위에 있는 것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열어 보지 않는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성경은 읽으면 성경이 엄청나게 무미건조하다고 말합니다. 저기 있는 청년은 성경을 지루한 것이라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어머니는 저에게 마을에 가면 성경을 하루에 한 장씩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도, 그제도 성경을 읽지 않았거든요. 저희는 너무나 바빴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여러분은 성경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아니요, 그곳에는 흥미로운 게 없어요"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눈먼 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눈에 덮인 비늘을 만지시면 비늘은 떨어지고, 성령께서 눈에 안약을 바르시면 성경이 비로소 귀중 해지는 것입니다.
한 사역자가 할머니 한 분을 뵈러 갔다고 합니다. 그분은 성경 말씀 중에서 귀중한 약속들 몇 개를 드리자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열자 한쪽 여백에 "P"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지요?라고 여쭈어보니 "선생님, Precious, 귀중하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 보니 그곳에는 "T와 P"가 적혀있었습니다. 이것의 의미도 여쭈어보니 할머니께서는 "Tried and Proved로 제가 시도해보고 확인했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주의 말씀을 시도해보고 확인했다면, 주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에 귀중한 것이라면 여러분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멸시하는 사람들은 성경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성경이 무미건조하십니까? 그런 사람의 결국은 지옥에서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일용할 양식보다 말씀을 더 간절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가장 큰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최악의 경우는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을 멸시할 뿐만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이곳에도 그러한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 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 가서 젊은 목사가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 봅시다" 그분 들에게 들려줄 말씀은 이것입니다. "사도행전 13: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시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그리고, 이 말씀도 들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 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 하여" 그렇지만, 이 저녁 주께서는 만약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여기서 구원을 찾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멸시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찾고, 읽고, 성경에 더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비웃고 있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비웃음은 진실을 바꿀 수 없고, 그대들이 던지는 농담으로 당신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을 돌릴 수도 없소이다. 힘든 인생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싸우고 지옥으로 가는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할 것이오. 신속한 형벌이 당신들을 사로잡아 강력하게 보응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조롱과 무시는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진리는 당신들의 궤변보다 훨씬 위대할 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어떠한 유창한 말로도 이 계시의 책에 있는 신성한 진실의 한 단어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 왜 당신들은 당신들의 가장 친한 벗과 싸우고, 당신들의 유일한 피난처를 학대하십니까? 그러나, 성경을 조롱하는 자들에게도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구세주의 피에 있는 소망,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에 있는 소망, 성령의 권능에 있는 소망입니다.
한마디면 끝납니다. 철학자인 제 친구는 제가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그 친구는 신학보다 더 유용하고 흥미로운 엄청난 과학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의견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과학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딱정벌레를 해부하고 나비를 배열하는 과학입니까? 여러분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 돌들을 배열하고 지층을 설명하는 과학입니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학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모든 과학은 성경의 과학보다 더 낫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의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과학이 가장 훌륭한 과학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배움과 지혜의 책이 아니므로 성경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천문학을 아십니까? 성경에 천문학이 있습니다. 성경은 의의 태양과 베들레헴의 별을 말하고 있습니다. 식물학을 아십니까? 그것 또한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은방울꽃이나 샤론의 장미와 같은 유명한 식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리학과 광물학을 아십니까? 그것 또한 성경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영원한 반석에 대한 것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 새겨진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될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십니까? 바로 이것이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여러분의 과학이 무엇이든 간에 와서 이 책에 허리를 숙이십시오. 여러분의 과학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셔서 이 공정한 지식과 지혜의 샘물을 마시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혜롭든 어리석든, 어린아이이든 어른이든, 백발의 노인이든 처녀 총각이든 제발, 꼭 성경을 존중하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안에 여러분에게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서 우리가 들은 것을 실천합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여성도에게 목사님의 설교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기억나는 것이 없어요. 무게나 용량을 속이는 것에 대한 것이었어요.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집에 가서 짐짝들을 태워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집에 가서 짐짝들을 태워 버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여러분이 집에 가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신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충분히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실 때, 주께서 무한하신 긍휼과 성령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영혼에 의의 빛을 부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유익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성경을 읽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열린 상담 서고!
기쁨과 슬픔이 나누어지는 곳
스스로의 잘못이나 그릇된 적용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어"
"이것은 영원의 목차.
이 목차를 붙들고 움직인다면
영원한 행복을 놓칠 수 없고
이 책으로 말한다면 실수하지도 않을 거야"
"이것은 하나님의 책. 나는 어찌해야 할까
책들의 하나님이라고!
담대하게 그런 말에 분노하라
그런 말이 더 나오지 않도록 생각을 가라앉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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