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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3월 18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믿음의 승리, The Victory of Faith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4"

요한의 서신서들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단어와 문장에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말할 때면 사랑의 하나님을 말하며, 형제를 언급할 때면 언제나 그들을 사랑합니다. 또한 세상 조차도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서신서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은 주제이고, 태도이며, 동기이고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평화로운 글 속에서 전투적인 단어를 만나며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아, 여기에는 다툼과 전투가 있습니다. "이긴다"는 단어 속에는 뭔가 칼과 전쟁, 다툼과 갈등, 고뇌와 싸움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과 같지 않지요. 사랑은 부드럽고 신사적이며, 입술에는 거친 말이 없고 입에 마치 벨벳을 깔아 놓은 듯합니다. 단어들은 버터보다도 부드럽고, 나오는 말들은 기름보다도 쉽게 흐릅니다. 그러나,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여기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제가 읽기에는 거의 백병전입니다. 죽기까지의 분투, 인생 전체에 걸친 전투, 승리의 확신이 있는 싸움입니다. 어떻게 항상 평화를 말하고 있는 동일한 복음에서 전쟁을 선포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단순하게 보면 세상에는 사랑에 적대적인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빛을 견딜 수 없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이 올 수 있으려면 어둠을 쫓아내야만 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름이 오려면 낡은 겨울과 싸워야만 합니다. 3월의 봄바람에 날려 버리고 4월의 소나기에 씻어 버려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좋은 것, 위대한 것이라도 이 세상의 지배권을 가지려면 전투를 치러야만 합니다. 사탄은 피로 물든 왕좌에 앉아 있는데 핵심 전력이나 전투, 전쟁 없이 누가 그 사탄을 쓰러뜨리겠습니까? 어둠이 온 나라를 덮고 있습니다. 태양 조차도 빛의 화살로 어두운 밤을 뚫어 쫓아내지 않는 한 빛의 제국을 세울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2:53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할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끝을 위한 수단으로써 진리와 의가 다스리기 위해서는 항상 싸움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저 세상은 선이 악과 싸워야만 하는 전장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숨을 참으며 혼란 속에 섞여 불타는 것을 바라보지만, 구세주의 군대는 고작 몇 명의 십자가 군병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몇 명의 군병이 홀로 싸워야 하지만,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충분히 정복할 수 있으며 그들의 깃발에 적힌 구호는 "충분하다"입니다. 도우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팔로 충분합니다. 

주의 도우심을 따라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본문은 위대한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본문은 위대한 탄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세상을 이긴 이김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며 위대한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I. 첫 번째로 본문은 위대한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승리 중의 승리이고 모든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나라들이 전장에서 만나 한쪽이 다른 쪽을 이기는 큰 전투들이 있었음을 압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이긴 승리에 대해 읽어본 분이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알렉산더가 그런 정복자였다고 말하실 텐데 저도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그의 소유였을 때 조차도 스스로는 완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향해 싸워 승리했고, 지배자들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기록했습니다. 정복자들을 정복했고 골칫거리였던 왕국들을 혼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유린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허망하게 울부짖으며 손을 뻗고 있는 젊은 왕을 보십시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세상을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의 깊은 영혼 속에서는 세상이 그를 정복했으며 그를 압도했습니다. 야망의 꿈으로 그를 덮었고 탐욕의 사슬로 그를 둘렀습니다. 결국 그가 모든 것을 가졌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치 가난한 노예처럼 울며, 신음하고 통곡하며 세상의 전차 바퀴에 끌려갔습니다. 

세상을 이겼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앞으로 나오게 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군계일학과 같습니다. 시저를 능가할 것입니다. 그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할 수 있다면, 최근에 떠난 우리의 웰링턴 보다도 나을 것입니다. 세상을 이겼다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기도 하지만 아주 엄청난 승리이고 정복이어서 그런 사람은 사울처럼 다른 이들을 어깨 아래로 내려다보며 걸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그를 우러러보도록 명령할 것이고 그의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경외심을 갖고 그를 숭배하게 할 것입니다. 그의 연설은 우리가 복종하도록 만들 것이고, 당연히 존경할 사람인 것처럼 "그의 소리는 마치 천사가 날개를 퍼득이는 것 같았어!"라며 존경을 표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이런 생각을 확장해서 다양한 형태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릴까 합니다. 여러분 장담하건대 이 싸움은 처절한 전투이며 실전 경험이 없는 군인은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투입니다. 그런 군인이 이길 수 있는 쉬운 전투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날이 좋을 때만 잠시 전장으로 나갔다가 진영을 돌아보고는 말고삐를 돌려 자신의 깔끔한 천막 문 앞에서 우아하게 말을 내리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저 군복을 입고 일주일만 버티면 승리의 영광을 얻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상상을 하는, 신병과 같은 그러한 사람은 얻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근육과 강력한 마음의 힘이 필요한 싸움이고, 삶 전체에 걸친 전쟁입니다. 우리가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복자들을 넘어서려면 하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는 충분한 힘을 가졌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라고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도 들어야 합니다. 가장 강한 심장조차 겁을 먹게 하는 전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에 계심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용감한 이들도 떨게 하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두려워해야 되겠습니까? 그분은 삶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두려워해야 되겠습니까? 세상과의 이 싸움은 정규군과의 싸움이나 육체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금방 승리할 것입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이것이 마음의 싸움, 마음의 경쟁, 정신의 분투, 영혼의 싸움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극복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을 절반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는 프로테우스이기 때문입니다. 카멜레온처럼 수만 가지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모양으로 세상을 이기면 세상은 또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을 공격할 것입니다. 죽기까지 여러분은 항상 새로운 모습의 세상과 싸워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몇 가지 형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관습을 가르치길 바라며 입법자로 설 때 세상을 이깁니다. 여러분은 세상에는 오래되고 방대한 관습법이 있으며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의 대부분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하므로 그것으로 여러분은 충분하다 여깁니다. 여러분이 일하면서 누군가 부정직한 일을 행하는 것을 보아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므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인류 대부분이 가진 어떤 습관이 있다면 그것에 굴복하고 허용합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과 같이 가면 끝이 없는 구덩이에서 타는 치열한 불꽃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장작이 많을수록 더 치열한 불꽃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물고기처럼 물결을 따라 흘러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만이 물을 거슬러 헤엄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만이 관습을 경멸하며, 관습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 만약 옳다면 나는 혼자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그것을 행하는 이가 없더라도 나는 그것을 행할 것이다. 모든 야유와 조롱이 하늘에 울려 퍼져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행할 것이다.  돌들이 날아올라 나를 죽음에 이르도록 칠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행할 것이다. 나를 화형대에 묶을 지라도 나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 나는 홀로 옳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 없이 갈 것이다. 많은 이들도 모두 가서 옳은 일을 행한다면 기쁘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관습을 경멸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로지 내 주 앞에서 바로 서거나 넘어질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을 관습을 정복하고 이긴다" 

공정한 세상이라고요! 세상은 장식한 법복을 입고 여러분에게 엄숙하게 말합니다. "이 사람아, 너는 틀렸다. 동료들을 보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라. 나의 법을 붙들라.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그 법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는가? 나에게 맞서 스스로 서려는 너는 대체 누구냐?" 그리고는 벌레 먹은 법전을 꺼내어 곰팡내 나는 페이지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여기 느부갓네살 시대에 전해진 행동과 파라오 시대에 만들어진 또 다른 법이 있다. 고대에 세상 표준 권위들 가운데 제정된 것이므로 이것들은 옳은 것임에 틀림없다. 너는 대중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스스로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냐?" 우리는 그렇소. 우리는 에베소 사람들이 마술 책들을 불태운 것처럼 세상의 법전을 가져다 불태운다. 우리는 세상의 증서들을 가져다가 휴지로 만든다. 우리는 벽에 붙어 있는 세상의 선언문들을 찢어 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에게 관습은 그저 거미줄일 뿐이다. 우리는 홀로 되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여기지 않는다. 홀로 된다면 옳은 것이다. 우리는 홀로 되는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지혜로 여긴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세상의 관습을 짓밟는다.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로, 분리된 종족으로, 택함 받은 세대, 특별한 민족으로 산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이 비웃으며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조롱하듯 기생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이야, 설탕에 모래를 넣었니?" "예, 선생님" "차에 나뭇잎을 넣었니?" "예, 선생님" "후추에 빨간 안료를 넣었니?" "예, 선생님" "그러면 기도하자"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더 잘 안다, 우리는 세상의 관습을 따를 수 없다. 우리는 기도한다면, 행동 또한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위선자이고, 진짜 망할 위선자이다. 우리가 교회에 가서 주를 사랑한다고 공언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그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가게, 계산대 뒤, 사무실 등 우리가 있는 모든 곳으로 가져간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가짜임을 아실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류의 관습에 맞서서 서야 합니다. 비록 이곳이 삼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세상을 이기려면 나와서 분리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세상의 관습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렇게 저항하면 우리의 대적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요? 세상은 시각을 바꿉니다. "저 사람은 이단이고 광신자야. 삐딱하고 위선 덩어리지"라며 대놓고 말합니다. 세상은 검을 집어 들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마치 악마처럼 째려봅니다. 폭풍처럼 달려들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놈은 감히 내 정부를 거부한다. 저놈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저놈을 핍박할 것이다. 저놈을 욕하라! 지옥의 깊은 곳에서 나와서 저놈에게 야유를 퍼부어라. 괴롭혀라! 이를 갈고 저놈을 물어뜯어라" 모든 잘못된 것을 동원하고 세상은 할 수 있는 핍박을 다할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길 것입니다. 세상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그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의 모든 사업을 망하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그가 진리의 옹호자로 나아가면 세상은 비웃고, 조롱하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그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곳곳에 돌을 던져 놓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무기를 들고 그를 향하여 나아올 때, 온 세상이 군대처럼 그를 쫓아 거의 파괴하려고 할 때, 주의 전사들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포기할까요? 포기할까요? 굽히고 들어갈까요? 납작 엎드릴까요? 오 아닙니다. 루터처럼 합니다. 루터는 만약 세상이 자신에게 전쟁을 걸어온다면, 자신의 피켓에 '나는 아무에게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의 "세도 눌리"를 적고 세상을 대항하는 전쟁에 나섰습니다. 

"온 땅으로 널리 무기를 들게 하라,
완벽한 평화를 누리리라"

아아! 여러분 중에 일부는 자신을 공격하는 말을 들으면 그 즉시로 자신이 가졌던 신앙을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진정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그런 말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제게 먹을 것이 떨어지게 하세요, 이 넓은 세상을 돈도 없이 헤매게 하세요, 그래요 그냥 죽게 두세요. 이 핏줄에 흐르는 피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저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지만, 그리스도를 얻고 주 안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천둥이 울부짖을 때에도 세상 소란에 미소 짓고 그의 즐거운 곡조를 흥얼거립니다. 

"예루살렘은 내 행복한 집,
나의 소중한 이름;
즐거움과 평화, 그리고 당신 안에서,
나의 수고는 언제 끝날까?"

세상의 검이 나오면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 마치 천둥 속에서 튀어나오는 번개처럼 구름을 가르고 별들을 떨게 만들지만, 거친 바위산을 오르는, 그런 웅장함에 미소 짓는 사람에게는 힘을 쓰지 못한다. 고난의 때에 나의 아버지는 그의 집에 나를 숨기시고, 그의 장막 비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고, 나를 바위에 세우실 것이므로 이제 세상은 나를 상하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시비에 개의치 않음으로써 세상을 이깁니다.

3. 그렇지만,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방식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제가 믿기에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입니다. 미소 짓는 세상은 인상 쓰는 세상보다 더 나쁩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계속 주먹을 날려도 그를 떼려 눕힐 수 없다. 이제 나는 저를 치던 철장갑을 벗고 화해의 손을 내밀 것이다. 그 손에 입맞춤하도록 할 것이다.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고, 잘 구슬려볼 것이다. 좋은 말만 해줄 것이다" 존 번연은 이 "거품 마담"이라는 마녀를 잘 묘사합니다. 마녀는 나름의 이기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말을 할 때마다 미소 흘린다. 공정한 것을 많이 말하는 방법을 통해서 이기고 유혹하려 한다. 오, 제가 믿기에 크리스천은 핍박받을 때는 우러름을 받을 때보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기의 정점에 있을 때 우리는 떨며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고를 받아야 할 때는 야유와 비웃음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경고를 받아야 하는 때는 행운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을 때입니다. 우리에게 화가 미치는 때는 바로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말할 때입니다. 의의 옷을 벗어던져 버리는 때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가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옷을 벗어 발가벗게 되는 것은 해가 뜨고 따스하며 훈훈한 공기가 돌 때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사랑에 벌거벗었는지요! 세상은 칭찬과 박수를 보내고, 사람들은 그것에 취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중독성 있는 바람입니다. 휘청대고 비틀거리며 죄를 짓고 결국 평판도 잃어버립니다. 하늘을 가르며 지나는 혜성이 우주를 헤매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 그는 헤매다 사라집니다. 그가 높임 받았던 만큼 떨어지고, 그가 위대했던 만큼 헤매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자녀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이 인상 쓸 때만큼 세상이 미소 지을 때도 안전합니다. 세상의 비난에 개의치 않은 것처럼 세상의 칭찬에도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칭찬을 받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행동은 칭찬받을 만 하지만 모든 영광은 나의 주님께 있다" 위대한 영혼은 비판받을 만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당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칭찬이 없이는 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칭찬을 받지 못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매달립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꾸준할 것이고 상하거나 망가지지 않으며 대신 높은 곳에 우뚝 선 사슴의 발처럼 곧추설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극복하는 승리입니다" 

4. 때때로 세상은 크리스천에게 간수로서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삶이 감옥이 될 때까지 고통과 슬픔을 주시고, 세상은 그 감옥의 간수입니다. 아주 나쁜 간수이지요. 형제, 자매 여러분 시험과 고난을 겪어 보셨습니까? 그때가 되면 세상은 여러분에 다가와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요? "불쌍한 죄수여, 내게는 네가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 열쇠가 있다"

"너는 거의 파산지경이다.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방법을 알려주마. 일단 양심이라는 놈을 치워 버려. 그놈은 너에게 부정직한 행위는 아닌지 물을 것이다. 그놈은 신경 쓰지 말아라. 양심이라는 놈은 잠을 재워라. 일단 돈을 얻고 그다음에 정직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여유롭게 회개하면 되지 않겠냐!" 세상은 그렇게 말하지만, 여러분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라고 하죠. 그러면 세상은 "그래!" 그러면서 이를 갈며 열을 낼 것입니다. "너 같은 착한 사람은 이런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해!" 그러나 크리스천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다. 내 아버지께서는 나를 이런 궁핍 가운데 보내셨지만, 언젠가 그의 때가 되면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죽는다 해도 나는 이곳을 나가기 위한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나를 여기에 두셨으니, 나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내 뼈가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고, 내 관이 이 돌들 아래에 있게 되고, 내 묘비가 지하 감옥의 벽 속에 들어간다 해도, 부정한 수단으로 이곳을 나가기 위해 뭔가를 하기보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세상은 "아! 너는 참 멍청하구나!" 할 것입니다. "저 인간은 돌머리야, 용기도 없고, 대담하게 출항도 못할 거야. 구태의연한 도덕의 길의 가고 싶어 하는 군"하며 조롱하며 지나갈 것입니다. 아아 크리스천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이깁니다. 

오! 저는 여러분에게 몇몇 전투를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이 가난한 생계를 지키기 위해 손이 닳도록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녀들의 피와 뼈와 살을 입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그분들은 우리를 위해 일, 일, 일만 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수천번의 유혹을 받아 왔습니다. 악마는 그녀들을 유혹해 왔지만 그분들은 용감하게 싸우셨습니다. 가난한 중에도 청렴결백했던 그분들은 여전히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해처럼 밝고, 달처럼 공평하며, 깃발을 든 군대처럼 엄청납니다" 악마의 유혹과 유인에 넘어가지 않은 영웅입니다. 다른 전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남성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않는 것을 붙잡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얻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감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시기 때문이죠. 세상은 "부자가 돼라, 부자가 돼라"하지만 성령 께서는 "아니다! 정직하고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 가슴속에서 심각한 다툼과 남자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아닙니다! 별들을 황금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부의 세계는 내 원칙을 착각하게 만들고, 내 영혼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는 정복자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II. 그러나 오늘 본문은 위대한 탄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친절한 친구 하나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제가 비록 칼빈주의이고 침례교도 일지라도 이곳 엑서터 홀에서 설교할 동안에는 청중 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종파가 있음을 기억해야만 했는데, 만약 제가 여러분 모두를 기쁘게 하는 설교만을 해야만 한다면, 오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제가 진리라고 믿는 것을 설교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믿는 한 가지 진실을 빼는 것이 저를 영원한 영국의 왕으로 만든다 해도 저는 그것을 빼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분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곳에 오지만, 진실이 그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은 떠날 수 있습니다. 저는 정직한 영국인 청중이 진실을 말하는 것에 전념하지 않는 사람이나 말 더듬는 설교자를 떠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이제 이 위대한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아마도 조금은 심한 말을 할 텐데 이 이야기는 제이씨가 맨 처음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탄생이 유아세례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 기억에는 덕망 있는 원로께서 "천주교는 거짓이고, 퓨지주의도 거짓이고, 침례로 인한 중생도 거짓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너무나 눈에 띄는 거짓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그런 것을 집어넣고 있는 설교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들은 표면적으로도 너무나 터무니가 없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상식 아래로 처박아 버리는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을 떨어뜨린 아이들은 모두 거듭난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저기 링에서 돈내기 복싱을 하는 저 사람도 거듭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기 때 이마에 성스러운 물방울을 맞았기 때문이죠. 욕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술 취한 상태로 거리를 헤매고 있지요. 그도 거듭난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거듭남이군요! 제 생각에 아마도 이들은 다른 시간에는 거듭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거듭남은 악마에게나 어울리는 것이고,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그 사람을 아주 심각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단한 퓨지주의 교회의 소설에 따르면 저주스럽고, 욕설에 강도짓, 도둑질하는 사람들과 교수형 당한 몹쓸 사람들이 모두 거듭났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말이 돼요? 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새로운 탄생을 주실 때는 이것들 보다는 더 좋은 뭔가를 마음에 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위대한 탄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이 새로운 탄생은 모든 영적인 것 가운데서도 신비로운 지점에 있습니다. 새로운 탄생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전한다면 여러분은 주위 사람들과 항상 별 문제가 없이 잘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이 성경의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맛에는 잘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않을 것입니다. 아 이제 제가 "요한복음 3:5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기 시작하니 여러분이 돌아 섭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가해지는 거듭남의 영향력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은 열광주의다"라고 할 것입니다. 아! 그러나 그것은 말씀 안에 있는 열정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으로 저는 심판받을 것입니다. 만약 성경이 우리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 다면 저는 제 주장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구원이 걸려 있는 그 사실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거듭난다는 것은 인간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변화를 겪는 것입니다. 우리가 첫 번째 탄생을 설명할 수 없듯이 두 번째 탄생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요한복음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다만 거듭난다는 것은 아주 신비로운 것이지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변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르도록 잠자거나 졸릴 때 거듭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갈바니즘 또는 전기 자극은 신비스러울 수 있지만 느낌, 즉 감각을 만들어 냅니다. 거듭남, 새로운 탄생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탄생의 때에 영혼은 깊은 고통 가운데 있게 되어 종종 눈물의 바다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쓰라린 맛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달콤한 소망에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 만이 참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변화이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이것은 마치 제 심장을 꺼내어 검은 피를 짜내고 씻고 깨끗이 해서 다시 제 영혼에 넣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새로운 마음, 정직한 영"으로 신비롭지만 실제이고 진정한 변화입니다! 

조금 더 말씀드리면 이 변화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에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끊고 맨 정신으로 돌아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비국교도에서 국교도로 돌아서거나 국교도에서 비국교도로 돌아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 보다 훨씬 광대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동작하고 바로 그 영혼으로 들어가 그 사람 전체를 움직이는 새로운 원리입니다. 이름만의 변화가 아니라 본성이 새롭게 되어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도우시는 성령 없이 성경 자체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며 어떠한 사역자의 웅변으로도 가져올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영구적인 변화임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르미니아 주의자들은 사람이 거듭난 다음에 죄에 빠지면, 다시 스스로 회복하여 다시 크리스천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죄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서 수백 번 죄에 빠지고 은혜를 잃고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제 생각에 그것은 여러분이 읽었던 말씀과는 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읽은 성경에서는 진짜 크리스천이 타락하게 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씀에서는 주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사람마다 그것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고 하셨으며, 또한 다른 말씀에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단순히 개종을 한 것이라면 저는 여전히 술주정뱅이 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짜 초자연적인 변화와 함께 진정으로 거듭난 것이라면 저는 결코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죄에 빠질 수도 있지만 결국 넘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저는 견뎌낼 것이며 지속적으로 안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죽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여, 잘하였도다!
축복된 일을 놓고 이제 쉬어라;
싸움을 싸우고 승리를 얻었으니;
참 안식을 누려라."

사랑하는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거듭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한번 거듭나는 것을 상상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은혜에서 떨어질 만큼의 죄는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고 실제로 거듭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III. 끝으로 위대한 은혜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정말로 세상을 이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말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으로 세상을 이기지 않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이성은 참 좋은 것이고,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이성이 촛불이라면 믿음은 태양과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촛불을 끄지 않을 것이지만, 태양을 더 좋아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이성을 사용하고 꾸준히 훈련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 이성은 목검에 불가합니다. 곧, 망가지고 부러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은 예루살렘의 참 강철검으로 영과 육을 쪼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이든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항상 믿음의 사람들 아닙니까? 자연스러운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누가 전투에서 승리합니까? 왜 그 사람은 자신이 승리할 것을 알고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할까요?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항상 뭔가 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지요. 누가 알프스 정상에 오릅니까? "내가 그것을 해내든지, 죽든지 할 것이다"라는 각오를 가진 사람입니다. 만약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뭔가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하십시오. 지금까지 표준의 수준을 높이고 폭풍과 같은 갈등과 싸움 속에도 견고하게 그것들을 유지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믿음의 사람들 아닙니까? 누가 위대한 일들을 했습니까? 공포와 떨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황동 흉배와 투구를 가지고 결코 흔들리지도, 떨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들의 힘이 오는 언덕으로 시선을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마틴 파쿠하 터퍼의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 놀라운 일이 없었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솟아났다. 그 어디에도 고귀하고, 영화롭고, 위대한 것이 없지만, 모든 성취의 근원은 믿음이었다. 어여쁘거나 유명한 것도 없지만 믿음은 늘 찬사를 받았다. 레오니다스는 마치 신성한 여호수아처럼 인간적인 믿음으로 싸웠다. 크세포논은 자신의 능력과 마티아스의 아들들을 신뢰했다" 믿음은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믿음의 능력보다 뛰어난 것은 없으며 그 신성한 솜씨에 굴복하지 않을 피조물도 없습니다. 믿음 없음은 사람을 비열하게 만들고, 호두 껍질 속으로 들어가 살게 할 정도로 사람을 쪼그라뜨립니다. 그러나, 그에게 믿음이 주어지면 그는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레비아단이 되고 전장에 용감하게 울부짖는 군마가 됩니다. 나라들을 허물어 버리는 거인이고, 그를 만나는 왕들마다 그의 칼에 사라져 버립니다. 왕들의 홀을 다발로 묶고 모든 왕관들을 소장품으로 모읍니다. 여러분, 믿음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그 맡겨진 신성한 능력으로 여러분을 거의 하나님처럼 전능하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데 있어 믿음이 그들을 어떻게 돕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마치 동종요법처럼 동작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은 그냥 독특한 생각일 뿐이다"라고 하실 수 있는데,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칙은 "독은 독으로 제거한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독을 독으로 제거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믿음은 어떻게 짓밟을 수 있을 까요? 바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주를 향한 경외함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자 이제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를 너를 죽일 것이다. 내 우상 앞에서 절하지 않으면, 저 불타 오르는 불구덩이에 너를 던져 버릴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만, 나는 내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망시키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한다. 사실 네가 무서울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이 있다. 나는 하나님께 실망을 드리는 것이 두렵고, 나의 주님께 죄를 짓지 않을까 떨린다" 결국 하나의 두려움은 다른 두려움을 상쇄시킵니다. 믿음은 어떻게 세상의 희망을 떨구어 버릴까요? 세상은 말합니다. "네가 내 제자가 된다면, 저기에 있는 이것저것 다 너에게 주겠다. 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부자가 될 것이고 위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말합니다. "내 소망은 하늘에 있다.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고, 영원하며, 썩지 않고, 영원히 아름다운 소망, 황금빛 소망, 생명의 면류관이다" 그리고 영광의 소망은 모든 세상을 소망을 이깁니다. 그러면 세상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너는 왜 네 동료들의 본을 따르지 않는 거냐?" 믿음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이 우리 앞에 어떤 본을 내놓으면, 믿음은 다른 것을 내놓습니다. 세상이 말합니다. "오! 저런 본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얼마나 현명하고, 위대하며 좋으냐?" 믿음은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를 것이다. 그가 가장 현명하고, 가장 위대하며, 그는 최선이다" 본은 본으로 이깁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그래, 너는 이 모든 것에 정복되지 않을 것이므로, 와라,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고, 너는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믿음은 대답합니다. "이 세상의 친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사랑은 사랑으로,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소망은 소망으로, 공포는 공포로 대합니다. 이렇듯 믿음은 동종요법처럼 세상을 이깁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설교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 아침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드리고 더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확신하는 것은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바로 말씀드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연설가는 아니지만 제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것들을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을 마치기 전에, 오! 제가 여러분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이 자리에는 거듭난 분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어떤 분들은 귀담아듣지 않고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전부 말도 되지 않아. 우리는 매주 찬송가와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에 가고 우리는 아주 독실한 사람들이야!" 아, 불쌍한 영혼들이여. 만약 심판정에서 저를 만난다면 제가 말했던 것,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다른 어떤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거듭난다는 것이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은 그런 변화라고 믿을 수 없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맹세하지 않지만 나는 아주 많이 새로워졌다" 여러분, 저는 그것은 작은 변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항아리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을 덧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과 바른 영을 갖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여러분의 영혼을 살릴 생명에 이르는 의만이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교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 성공회의 신앙 조항을 펴서 읽어보십시오. 가끔 저희 교회와 연합하려고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우리의 교리가 그들의 기도서에 있는 것을 보여주면 그들은 그것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왜 여러분의 믿음의 글들을 읽지 않으십니까? 왜 여러분의 기도서에 있는 것들을 모르십니까? 요즘 사람들은 거의 성경을 읽지 않고, 대개 신앙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신앙이 있을 뿐 그것이 진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위한 것은 종교적인 외투가 아니고 생명력이 충만한 경건이 필요합니다. 종교적인 주일이 아니라 믿음의 월요일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척하는 교회가 아니라 경건한 내 집이 되어야 합니다. 무릎 꿇어 성스러운 곳이 아니라 하루 종일 서 있어도 경건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 근본적인 변화, 생명력 있고 전체가 바뀌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세상을 이겼습니까? 그것 이상으로 살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거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 각자가 그 길에서 돌이켜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는 다면 여러분은 멸망의 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 여러분은 뭐라고 하실까요? 예수님을 사랑하실만하십니까? 영원한 것, 하늘의 것들은 가치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십니까? 여러분을 고통 가운데 있게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죄인이 되는 것이 그렇게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영혼의 영원한 자산을 망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 여러분,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영원한 멸망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악마들이 울부짖는 지옥에서 춤추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영광이 있는데, 즐기다가 끔찍하게 깨는 그러한 꿈을 꾸어야 할까요? 

오! 제 입술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 여러분이 스스로의 영혼을 불쌍히 여길 때까지 가슴으로 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경계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의 목숨이 파수꾼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지요. 주께서는 "에스겔 33:11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악의에 차있고, 악에게 기울어져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이 아침 성령께서는 저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저는 여러분을 데려갈 수도 끌고 갈 수도 없습니다. 제 말은 힘이 없고, 제 생각은 약할 뿐입니다! 옛 아담은 이 작은 자가 인도하기에도 끌고 가기에도 너무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시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면 심는 자나 거두는 자나 모두 함께 즐거워할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거듭나시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세상과 죄를 이기는 믿음이 있는가 -
그를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받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는가?

제가 이 귀한 은혜를 갖는다면,
모든 찬양을 당신께 드립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손을 바랍니다;
주여 저를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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