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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2월 25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백성의 그리스도, The People's Christ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내가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시편 89:19"

저는 원래부터 이 구절은 다윗과 관련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 중에서 선택된 사람입니다. 그의 조상들은 존경받을만했지만, 훌륭하지는 않았습니다. 거룩한 집안이었지만 이새, 오벳, 보아스, 룻과 같은 이름이 위대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왕가도 귀족이나 영광스러운 가문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유일한 직업은 어린양을 가슴에 품고 새끼 밴 암양을 이끄는 양치기였습니다. 고귀한 영혼과 의연한 용기를 가졌지만 그저 평범한 백성중의 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유다의 왕이 되는 자격을 막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거룩한 나라의 왕좌를 세우는데 젊은 영웅을 뽑는 것이 장벽이 되지도 않았고, 민족과 조상을 자랑스러워하는 이 사람은 백성의 군주로서 이 나라가 말하는 용기, 지혜, 정의에 반하는 말을 퍼뜨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에서 다윗보다 나은 통치자가 있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백성중에서 선택받은 그 사람의 통치는 그의 피를 이어받은 왕과 왕자들의 통치를 영광 가운데 더욱 빛나게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의 낮은 신분과 교육이 다스림에 적절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크게 하고 그의 일과 엄청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는 백성들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을 위한 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과 같은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왕일뿐만 아니라 친구이자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설교에서는 다윗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드릴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 중에서 택함 받으신 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본격적인 설명을 드리기 앞서서 제 설교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 중에서 택함 받았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그의 인간적인 면을 조명한 것입니다. "신중의 신"이신 그는 백성 중에서 택함 받지 않았습니다. 그를 구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 "온 세상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동료이자 동등이며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백성중에서 택함 받은 예수님을 말할 때는 그분을 사람이신 예수님으로 말해야만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께서 진정한 사람이셨다는 것을 너무 잘 잊습니다. 모든 의도와 목적이 있으셨던 우리 주를 찬양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네, 참 사람이었지
갈보리에서 돌아가셨던 그분이네"

그는 인간과 신이 합쳐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혼동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본질과 속성에 있어 어떠한 감소도 없는 참 하나님이셨으며, 동시에 참 인간이셨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인간으로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주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영광스러운 성육신의 기적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형제로, 같은 죽음을 겪는 이웃으로, 같은 고통과 질병을 감내하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는 동료로, 짧은 기간이지만 차가운 죽음의 방에 같이 있을 동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살필 수 있음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출신입니다. 그는 백성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는 그의 선택 받음입니다. 그는 백성 중에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높여짐입니다.  그는 높여졌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기억하기 좋게 모두 영어 E로 시작하는 단어를 택했습니다. extraction, election, exaltation입니다.

I. 우리 구주의 출신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신문에서 특정 가문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떤 귀족 가문들에 의해 적절치 않은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상당수는 그런 행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국민들 중에서 뽑힌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 정부의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우리가 뽑을 때 조차도 우리 중에서는 거의 뽑힐 수 없습니다. 확실히 정보와 기회의 독점이 없는 곳이라면 일반 가문들도 뽑힐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일반 사람이나 상인들이 정부로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 설교를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반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백성중에서 뽑힌" 한분에 의해 다스림 받는다는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일반 백성의 사람입니다. 백성들의 친구이며 일반 백성들 중의 한분입니다. 그가 높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반 백성들 중의 한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귀족의 그리스도라 불리실 수 없습니다. 상류층의 그리스도도 왕의 그리스도도 아닙니다. 그는 "백성 중에서 택한 자"입니다. 이런 생각은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그들의 영혼을 그리스도와 하나로 묶고, 그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로 믿는 신앙으로 묶어 줍니다. 이제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 그분은 백성들 가운데서 탄생하셨습니다. 사실 그는 왕족의 혈통 가운데서 나셨습니다. 물론 과거의 영광은 떠나고 없지만 마리아와 요셉 모두 왕족의 혈통이었습니다. 유다의 왕좌에는 이방인이 앉아 있었고 법적 상속자들은 해머와 손도끼를 잡아야 했습니다. 주께서 태어나신 장소를 주목해 보시지요. 뿔 달린 소들을 먹이는 여물통이었습니다. 짚들이 유일한 침대였고 소들이 짚을 먹을 때면 잠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왕자로 태어나실 수도 있었지만 분명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왕자의 대접이 아니었습니다. 자줏빛 의복도 없었고, 자수가 놓인 싸개도 없었습니다. 왕의 거실을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기의 미소가 마주한 것이 왕조의 대리석 궁전도 아니었습니다. 구유 곁을 방문한 사람들을 살펴볼까요? 제일 먼저 온 것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자들을 인도하셨고, 동방박사들도 지시하셨습니다. 길을 잃으며, 목자들은 그리스도를 찾아다녔고, 동방박사들도 그를 간절히 바라며 결국 구유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의 그리스도 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동방박사들의 그리스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자들의 그리스도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는 단순히 기뻐하는 목자들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구주이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를 제외시키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배우고 예의 바른 사람도 환영하지만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도 환영합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백성 중에 계셨습니다. 유명한 도시에서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빵집"이란 의미를 가진 베들레헴이라는 촌구석이었습니다. 그의 오심은 화려한 준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나팔 소리로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받았던 교육도 우리가 주목할만합니다. 그는 모세가 어머니의 품에서부터 왕궁에서 받은 것과 같은 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들과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이들을 업신여기는 왕족으로 자라나는 대신에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어떤 특이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죠. "그는 이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예수께는 최적의 장소였고, 그가 목수의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도 없다!" 그는 아담의 저주 "창세기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를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본다면 표정에 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제외하면 다른 형제들과 그 어떠한 차이점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께서 공생애에 들어서실 때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의 사회적 계층은 어떠셨나요? 주홍색이나 자주색 의복으로 치장하셨나요? 오! 아닙니다. 그는 아주 단순한 농민의 옷을 입으셨고 그의 속옷은 "요한복음 19:23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하신 것처럼 아무런 장식이나 자수도 없는 아주 단순한 옷이었습니다. 그가 유대 전역을 다니실 때 웅장한 곳에 머무시거나, 장엄한 모습을 보이셨나요? 아닙니다. 그는 피곤하고 어려운 길을 고수하셨으며 수가의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난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신하들은 없었고 대신 어부들을 동료로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씀하실 때 부드럽고, 유려한 언어를 구사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는 종종 거친 엘리야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분명한 의도를 드러내시는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백성중의 한 사람으로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높은 사람들 앞에서 움츠리시는 일도 결코 없었습니다. 절하거나 엎드리시지 않고 대신 당당히 서서 외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화 있을진저, 회칠한 무덤 같으니" 죄인들과 함께하셨으며, 사회 계층과 재물에 있어 일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는 갈릴리에서 수고하는 농민들처럼 산헤드린의 부자들에게도 동일한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그는 일반 백성들 중의 한분이셨습니다.

그의 말씀을 살펴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에 있어서도 백성 가운데 있으셨습니다. 그의 복음은 그렇게 난해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자를 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단어들과 기술적인 문장들에 파묻히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단순해서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받으리라”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진리의 과학을 경멸하고 비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오늘날은 대장장이 조차도 설교를 할 수 있고, 쟁기를 갈던 사람들이 설교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성직자들은 "우리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런 일들을 한단 말인가?"라고 요구합니다. 아! 복음의 진리가 명백하고 단순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우리의 주님께서 배타적이시지 않다는 이유로 경멸당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복음은 재능이 있거나 학식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배운자들의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그리스도이시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28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저는 제가 진정한 과학과 교육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학으로 너무 많이 희석시키는 것이 참 슬픕니다. 좀 더 지적인 설교자가 되고, 모범적인 설교를 전하길 바라면서 그러시는 것인데, 그런 설교는 대학생이나 신학교수들에게는 적당하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유용하지 않습니다. 단순성, 따뜻함, 진지함, 심지어 견고한 복음 문제에 있어서도 많이 부족한 설교입니다. 저는 우리의 대학 교육이 교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봐 염려가 됩니다. 종종 대학 교육이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 국민에 대한 공감 능력을 떼어 버리고 소수의 지식인이나 교회의 부유층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문학계의 일원이 되는 것도 좋지만, 천국의 유능한 사역자가 되는 것은 훨씬 훌륭합니다. 몇몇의 위대한 지성처럼 상류층을 끌어 들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더 유용한 사람은 휫필드처럼 "시장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상류층과 복음은 거의 일치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든 백성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 인즉 복음은 특정 계급이나 파벌, 어떠한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언약은 어떤 특정 계층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들을 포함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일부 부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가 그랬고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를 비롯한 몇몇 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주를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은 계층의 일반 대중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2:37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그리고 그의 말씀은 그 어떠한 차별도 허락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을 죄인으로 공평하게 두셨습니다.

"마태복음 23:8-10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그리고 너희는 다 형제니라" 이 말씀들은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들입니다. 그는 겸손의 표본이셨고, 스스로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의 친구시고,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오, 풍성한 지갑을 자랑하지만, 하얀 장갑을 끼고도 가난한 이들을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격식을 차린 모자와 지팡이, 성당과 화려한 장식들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마스터, 곧 주라 부르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백성중에 계셨고 백성의 그리스도이신 그 주입니까? 이 사람은 일반 백성을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보통 사람들, 일반 대중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지위와 체면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찾아갈 수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과연 그 어부들의 계승자가 될까요? 아! 그 어부들처럼 여러분의 화려함을 버릴 때 까지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야 할 수많은 사람을 두고 거실에서 뒹굴며 부자가 되려고 하는 대신에 일반 백성들 가운데로 들어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주인이 백성들의 그리스도이셨음을 기억하며 모든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정말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일반 백성들이여! 기뻐하십시오! 그리스도는 일반 백성중에 계셨습니다.

 

II. 두 번째는 그의 선택 받음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내가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된, 택함 받은 분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예정론이 튀어나올 때입니다. 아! "택함"이란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바로 이마에 손을 얹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보자, 아마도 내가 더 좋아하는 뭔가가 있을 거야!" 이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극단적 칼빈주의자군, 내가 다시 오나 보자!"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극단적 칼빈주의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말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입니다. 그는 한 사람의 크리스천이고 그를 나쁘게 부를 권리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불러도 얼굴을 붉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 "백성중에서 택한 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함 받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천국의 상속자들이 선택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택의 대상이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택하셨고, 그를 백성 가운데에서 택하셨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 구절이 선포하는 진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는 백성의 구세주, 백성의 그리스도가 되도록 백성중에서 택함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택하심에 있는 초월적 지혜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택하심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택하시지만, 늘 지혜 가운데 택하십니다. 그가 어떤 개인을 택하실 때는 항상 뭔가 비밀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이유나 동기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공로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 비밀한 이유나 동기는 피조물의 행위와는 아주 아주 먼 거리에 있습니다. 주님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유와 동기들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조금 다릅니다. 그 동기와 이유가 명확하고 여호와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1. 우선 우리는 백성 중에서 택함 받으신 분으로 인해 공의가 완전히 충족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한 천사를 택했다고 가정하고, 그 천사가 우리의 속죄에 필요한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수 있다고 상상해 봅니다. 그렇지만, 그 천사가 그 모든 것을 감내했더라도 공의는 결코 충족될 수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는데, 율법은 "에스겔 18:20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 의해 죄가 왔듯이 또한 사람에 의해 부활과 생명이 오는 것이 공의입니다. 율법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죽은 것처럼, 또 다른 아담 안에서 모두가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 중에서 택함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늘 보좌 근처에 있던 불타오르는 저 천사 가브리엘이 그의 모든 영광을 하늘에 내려두고 이 땅으로 내려와 모든 고통을 참고, 괴로움을 견디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극한의 고통 속에서 비참한 신음을 내뱉어도 결국 천사 가브리엘은 철저한 공의를 충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은 사람은 죽어야만 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실행되지 않는 것이 되고 맙니다. 

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백성 중에서 택해진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천사 가브리엘이 저에게 천사가 되겠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가 저와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간청한다고 해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리를 바꾼다면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고 그는 많은 것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비록 가난하고, 약하고, 가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이 있습니다. 언젠가 가을의 정원에서 잃어버렸던 그 존엄을 부활의 정원에서 다시 찾았습니다. 사실 사람은 천사보다 큰 존재입니다. 천국에서 사람은 천사들보다 보좌에 더 가까이에 서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십사 장로가 보좌 주위에 서고 그 바깥으로 천사들이 서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장로들은 전체 교회의 대표들로 천사들보다 보좌 가까이에 설 수 있는 영광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하면 택함 받은 사람들은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보십시오 한분이 거기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측에 영광으로 빛나는 한분이 앉아 계십니다. 섭리를 베푸시며 아주 신비로운 것들을 지시하시는 그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몇 달 전 강들을 얼음 사슬로 묶고, 이제는 겨울의 족쇄에서 강들을 풀어 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인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공의로 이 땅을 심판하시러 오실 그분은 누구십니까? 저는 단 한 분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참 사람이신 그분은 심판의 저울 잡고 모든 나라와 민족을 그에게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통로이신 그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비하심을 가지신 분은 누구십니까? 언약의 모든 사랑을 모아 놓으신 분은 누구십니까? 저는 단 한 분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 여러분과 저를 높여 주셨고 우리를 가장 높은 곳에 두셨습니다. 그는 원래 우리를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지으셨지만, 지금은 아담 안에 있는 우리의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택하셔서 영광과 명예의 관을 씌우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천국에서 그의 우편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 안에서 넘치는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3. 그렇지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좀 더 좋은 견해를 가져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는 왜 백성들 중에서 택함을 받으셨을까요? 마음이 답하도록 이끌어 보시지요.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음속 생각이 가장 좋은 생각입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은 가끔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혼의 깊은 생각, 마음속 생각은 호르무즈의 진주만큼이나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시인이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단순한 머리에서 나오는 생명 없는 분출보다는 영혼을 울리려는 시도를 할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크리스천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님이 백성중의 한 명으로 택함을 받으셨던 좋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분께서 나와 친족의 혈통으로 묶어 내 형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니었나요? 오!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다. 믿는 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 위에 뛰어난 그분을
친구라 불러도 좋네;
형제의 우애를 초월하는 그의 사랑은
믿을만하고, 자유로우며 그 끝을 알 수 없네"

저는 천국에 엄청난 형제가 있습니다. 가끔가다 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 형한테 이를 거야"와 같은 말을 듣곤 하는데, 저도 저의 대적이 저를 공격할 때면 그런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천국에 있는 우리 형한테 말할 거야!" 저는 가난할 수 있지만 저는 부자 형이 있습니다. 저는 왕인 형이 있습니다. 형님이 왕 중의 왕이신데 그가 보좌에 있는 동안 제가 굶주리고, 부족하고, 쇠약하게 그냥 두시겠습니까? 오! 아닙니다. 그는 저를 향한 형제애가 있는 저의 형제입니다. 오 믿는 자들이여! 그러나 그 생각 이상입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여러분들의 형제가 아니라 그는 여러분의 남편입니다. "이사야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 시며" 아내는 남편의 강한 팔이 그녀를 위해 일하거나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남편의 넓은 가슴에 머리를 기대는 법이지요. 남편의 심장은 아내를 향한 사랑으로 항상 두근 거리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은, 부부는 함께 나누는 존재로서 곧 아내의 것입니다. 오! 성령의 감화로 제 영혼과 영원히 소중한 예수님 간에 친밀한 동맹이 맺어졌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모든 영혼으로, 제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합니다. 

저는 들판으로 쫓겨나가 마치 신생아처럼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때를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던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를 의로 그에게 인도하실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의 궁전에서 화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오! 말할 수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제 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백성 가운데 계셨으며, 여러분이나 저와 아주 가까운 관계, 즉, 친척이나 형제자매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죄인들과 피로 맺어진 우리 주님
우리의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없이하실 모든 대적을 던져 버리셨네
죄악, 사탄, 땅, 죽음, 지옥, 세상"

성도 여러분 이 축복된 생각을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 여러분의 기억의 목에 걸으십시오. 금반지로 회상의 손가락에 끼시고 왕의 인장처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성공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도장을 찍으시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이제 또 다른 생각을 나눌까 합니다. 그리스도는 백성 가운데서 택함 받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들을 아실 수 있고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절반은 다른 절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 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정말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에 부자들의 상당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매일 일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빵 가격의 상승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희미한 개념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백성 가운데 있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들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백성 가운데서 택함 받으신 분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 앞서 시험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계신 동안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그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지치고 피곤하셨던 그는 우물가에 앉아서 그것들을 견디셨습니다. 그는 때때로 드실 빵도 없었으므로 가난에 대해서도 아십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양식을 구하셨습니다. 집이 없는 것도 겪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그분은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셨습니다. 크리스천 형제자매 여러분 죄악 된 장소를 제외하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앞서 계셨던 곳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서는 그분의 피로 찍힌 발자국과 발자취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넘쳐흐르는 요단강의 깊은 물에서 조차도 여러분이 강가로 다가가면 "사람의 발자국들이 있는데 대체 누구의 발자국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허리를 숙여서 자세히 보면 누구의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건 우리 예수님의 발자국이야!" 그분은 여러분 앞서 가셨습니다. 먼저 가시며 길을 평탄하게 하셨습니다.  무덤으로 들어가셨는데, 그분이 대속하신 족속들을 위하여 무덤을 왕의 침실로 만들고, 노동의 옷을 벗어두고 영원한 안식의 의복을 입을 수 있는 옷장을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모든 곳에서 언약의 천사가 우리 앞서 행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져야만 하는 짐들은 예전에 이미 임마누엘의 어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가신 길은 내가 걸어온 길 보다 훨씬 거칠고 음침했다;
내 주께서 고통받으셨으니 어찌 내가 불평하리오?"

큰 시험 가운데 계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 여행자여!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구별해 놓으셨고 생명으로 가는 왕의 길을 좁은 길로 만드셨습니다.

한 가지 생각을 더 나누고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를 바라지만 잘못 갈까 봐, 아주 큰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저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압니다. "글쎄요, 저는 그리스도께로 가기를 바라지만, 잘못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덴험의 찬송가에 붙은 작은 각주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 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올 수 없다. 고로 나는 깨닫는다. 적어도 사람들이 온 것이라면 그들은 잘못 올 수 없다." 저도 깨닫게 됩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온 것이라면 그들은 제대로 온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께로 나아오려는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 여러분은 주께로 오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오, 저는 너무도 큰 죄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용서치 않으실 겁니다" 오! 여러분은 저의 축복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시는군요. 그분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사랑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할 만큼 아주 악했지만 그분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만 배나 다정하신 분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는 너무나 사랑이 많고, 은혜롭고, 다정하셔서 그의 절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다정하신 분입니다. 그의 사랑은 여러분의 두려움보다 훨씬 크고, 그가 이루신 일들은 여러분 죄보다 훨씬 우세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여전히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제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두렵고, 적절한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백성 가운데서 택함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왕이 내일 아침 저를 부른다면 저는 분명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떻게 걸어 들어가야 할지, 궁중 에티켓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등등 참 걱정할게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기 제 친구들 중의 한 명이 저를 부른다면 저는 그냥 바로 가서 그를 볼 것입니다. 그도 백성 중의 한 명이고 저는 그를 좋아하니까요.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갈 수 있나요? 뭘 말해야 되죠? 어떤 단어들을 사용해야 될까요?"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보다 높은 분에게 가는 것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은 백성 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여러분의 있는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해진 옷도 상관없고, 조금 지저분해도 됩니다. 스스로 사악하다 생각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있는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양심에 찔림이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예수께로 오십시오! 그분은 백성과 함께 그 가운데 계시는 분입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해 주셨다면 어떻게 와야 할지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오시면 됩니다. 탄식도 한숨도 눈물도 모두 가지고 오십시오. 어쨌든 백성 가운데 계신 그분께로 오십시오.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사례를 설명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은 물이 부족해지거나, 물을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으면 낙타와 함께 낙타를 모는 사람을 어느 정도 먼저 앞서 가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다른 낙타가 따라가도록 하고, 또 이어서 다른 낙타를 보내는 것입니다. 첫 번째 낙타를 모는 사람이 물을 찾으면 먼저 물을 마시기 전에 "오라!"라고 외치고, 그 소리를 들은 다음 낙타의 기수도 "오라!"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의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외침을 이어가서 사막을 걷는 무리 전체에게 "오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 받음에 대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III.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높여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 89:19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제가 이 높여짐에 대해서 언급하면 여러분은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의 높여짐이라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모든 것은 곧 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는 자라면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도록 지음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의 높여진 인격 안에서 무엇이 있든 간에 저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1. 우선 그리스도의 높여짐은 그리스도의 몸과 신성이 하나 되는 높여짐이었습니다. 우리 중에서는 그 누구도 받을 수 없는 영광입니다. 우리는 결단코 우리 몸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성육신이 있었지만 단 한 번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고,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2. 다시 한번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을 통해서 높여지셨습니다. 오! 저는 우리 구주의 무덤에 조용히 들어가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큰방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큰 대리석 석관이 놓여 있고 그 위로 묵직한 뚜껑이 덮여 있었을 것입니다. 무덤 밖으로는 큰 돌로 입구가 닫혀있고 경비병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3일을 지냈습니다. 오! 저는 석관의 뚜껑을 열고 그를 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창백하게 누워계신 그분. 그분을 장사 지낸 여인들이 조심스레 닦았지만 여전히 핏자국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죽음은 환희에 차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그를 죽였다. 나를 멸망시킬 그 여자의 후손은 이제 나의 포로다!" 아! "내가 승리를 거머쥐었다!"라며 앙상한 눈꺼풀로 바라보는 죽음의 시선. 죽음의 비웃음은 정말 끔찍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를 이겼다!"라 말씀하십니다. 관 뚜껑이 열리고 그분이 나오십니다. 바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죽음을 붙잡아 그 쇠 다리를 내던져 가루로 만들며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3:14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그분이 바깥으로 나오자 경비병들은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영광 가운데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빛으로 빛나셨고 찬란한 신성 가운데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로 높이 우셨습니다.

3. 그분의 높여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는 시내를 벗어나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셨습니다. 때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제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의 승천을 주목해 보십시오!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시며 마치 호수나 강의 물안개처럼 천천히 올라가셨습니다. 그 어떤 힘이나 능력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하늘 높이 올라가셨습니다. 그의 승천은 불말이 데려간 엘리야나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그 옛날 에녹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올라가시는 모습을 천사들은 천국 성벽에서 내려다보며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보라, 승리의 용사가 오신다!" 좀 더 가까이 오시니 다시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승리의 용사가 오신다!" 그렇게 하늘로 올리우심은 끝이 납니다. 그가 천국 문에 다다르자 따르는 천사들이 외칩니다. "시편 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문지기는 겨우 질문을 내뱉습니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그 순간 모든 방언의 화음으로 울려 퍼지는 찬양이 진주로 된 천국 문을 울립니다. "시편 24:8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 시로다" 찬양과 함께 천국 문이 열리고, 하늘의 장벽들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십시오. 천사들은 그들의 왕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그들은 멀리서 그의 전차를 가져와
그분을 그의 왕좌로 모신다;
승리의 날갯짓을 하며 외친다,
구세주의 사역이 완료되었다."

그분이 거리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모든 나라와 권력들이 그분 앞에 엎드립니다. 그분의 발에 모든 왕관들이 놓여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내 아들아, 잘하였도다!" 천국에 "잘하였도다! 잘하였도다!"라는 말이 울쳐 퍼지는 가운데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높은 보좌로 오르십니다. "내가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4. 그리스도의 높여짐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알아볼 것은 그분이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심판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를 생략하고 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잘 이해한다고 공언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두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보좌로 오실 것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죄인들이여! 여러분은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가라지와 알곡이 항상 함께 클 수 없으며, 양과 염소를 한 초지에서 항상 함께 먹일 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을 심판하실 그분을 아십니까? 그분이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한때 멸시당하고 거부당했던 한 분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주께서는 오실 것이지만,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낮은 곳으로 오셨고,
대적들 앞에서 늘 겸손하셨으며,
늘 안타까움과 피곤 가운데 있으셨지만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아! 그분의 머리 주위로는 무지개가 걸려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그의 통치의 징표로 오른손으로 태양을 붙잡으시고, 단단한 빛의 구름으로 보좌의 받침대를 삼으시며, 달과 별들을 받침대의 먼지처럼 그의 발아래 두실 것입니다.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모든 행위가 적힌 방대한 책이 열릴 것입니다. 아! 그 멸시받던 나사렛 사람은 어떻게 그의 모든 대적 앞에 당당하게 앉아 계실 수 있었을까요? 조롱과 멸시, 비웃음 대신에 죽어가는 목소리로 "저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 띄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소리만 있습니다. 저는 멸시의 시선으로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여러분이 안타깝습니다. 오! 먹이 앞의 사자보다 맹렬한 것은 분노한 사랑입니다.

아, 주를 멸시하던 자이여! 슬픔과 고뇌의 그분의 평탄하던 이마가 찡그려지는 그날이 있음 경고합니다. 측은히 여기시며 촉촉하던 그분의 눈은 대적들에서 불과 같이 번쩍일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분의 손은 당신들에게 던질 번개를 잡으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셨던 그분의 입에서는 크고, 천둥보다 강한 목소리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로 선포하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여러분은 그 나사렛 사람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 사소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의로 이 땅을 심판하실 그분을 대적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적함으로 여러분은 영원한 진노의 바다에서 고통의 파도를 견뎌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께서 그 파멸에서 여러분들을 건져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렇지만, 이 경고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모두 결혼식날 숨바꼭질하다가 죽은 신부의 이야기를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신부는 결혼식 당일 재미로, 장난 삼아 숨기로 작정합니다. 계단을 올라가 오래된 나무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한 시간 정도 있으면 친구들이 찾아 나서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자에는 용수철 자물쇠가 있어서 신부를 영원히 잠가 버렸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기까지 그 누구도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육중한 나무상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결혼반지와 함께 있는 해골과 뼈가 발견된 것입니다. 그녀는 장난과 재미로 그 안에 들어갔지만, 영원히 잠기고 만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영원히 잠그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한순간의 즐거움일 뿐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 신부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 비밀스러운 자물쇠가 숨어 있습니다. 저 매음굴과 같이 변하는 것, 의의 길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오, 죄인들이여! 그게 다입니다. 그런데, 그거 뭔지 아세요? 영원히 잠가버리는 그게 뭔지 아세요? 이것을 피하고 싶다면 제 이야기를 잠깐 들어 보세요. 바로 "백성 중에서 택함 받으신 그분"입니다. 

스스로를 고상하고 높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땅도 밟아서는 안 되는 참으로 섬세한 분들이죠. 본인이 좀 더 차려입었다고 다른 죄인들을 경멸의 눈으로 멸시합니다. 거만한 벌레가 다른 벌레들을 경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온전히 구원을 받는 다면, 백성 가운데 계시는 바로 그분이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일반 대중의 그리스도, 백성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고상하고 높다고 생각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허리를 굽히고 절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자존심과 화려함은 뒤로 젖혀 두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백성의 구주께서 여러분의 구주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감은 간데없고 스스로를 낮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떨고 계신 분들에게는 위로의 확신을 다시 드리고 싶습니다. 죄에서 떠나고 저주를 피하고 싶으십니까? 이 아침 주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한 옛 성인의 말이 기억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는 "아! 정말 놀랍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아니요,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왜요?"라고 물었더니 "그분과 똑같아요! 그분과 똑같아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믿을 수 있냐고 말하지만, "그렇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나와 같은 죄인을 그리스도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실 수 없겠지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분과 똑같습니다!" 그분은 사울을 구원하셨고, 저를 구원하셨으며,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분께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분은 내어 쫓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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