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 설교 일자 : 1855년 2월 18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스트랜드(Strand) 북쪽에 있는 엑서터 홀(Exeter Hal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영적 자유, Spiritual Liberty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린도후서 3:17

자유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권리입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을 수도 있고, 버려져서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그의 빼앗길 수 없는 태생적 권리입니다. 피부가 검을 수도 있고, 배우지 못하며 살 수도, 빈곤 그 자체일 정도로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것이라 할 수 있는 땅 한조각도 가져 본 적이 없고, 입을 옷조차 거의 없어서 몸을 덮을 거적을 가진 것이 고작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가난하지만 자연은 그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는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가 없다면 그는 자유로울 때까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 자유는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아담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유산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동반하지 않는 자유가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일하게 주의 영이 없는 곳에서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자유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 나라가 자유의 나라임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내가 숨 쉴 수 있는 이 땅은 노예의 신음이 없는 곳입니다. 팔려나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노예 어머니가 없는 그런 곳입니다. 이 땅은 자유의 진원지입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되었을 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바로 우리의 제도 때문이 아니라 주의 영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시고 진정한 믿음의 영이십니다. 

영국이 자유에 있어 다른 나라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고, 왕은 폭정을 행하고 의회는 그저 이름뿐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자유를 얻었나요? 누가 우리를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주었나요?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 아래 있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크롬웰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양심의 자유를 누리거나 아니면 죽음 택한 사람들로 교활함이 없는 그들로서는 왕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노예가 되기보다는 왕을 때려눕혔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 특히 엄격한 청교도들에 빚졌습니다. 이 청교도들은 비겁한 행동을 경멸했고 사람을 다스리는 원칙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면, 그 자유는 영국에서 믿음에 기반한 종교의 자유에 의해 지켜져야만 합니다. 

이 성경은 옛 영국 대헌장으로 성경의 진실과 교리는 우리를 얽어매고 있던 족쇄를 끊어버렸고 다시는 우리를 다시 묶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마음속의 성령님과 함께 진리를 말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이 풀린 곳을 제외하면, 다른 말로 복음이 전해진 곳을 제외하면 그 어떤 곳에서 자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녀 보십시오. 숨죽이며 말할 것이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어떤 압제 아래 있음을, 위협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잘못된 종교가 낳은 폭정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자유로운 개신교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될 개신교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자유가 있는 곳이 주의 영이 계신 곳입니다. 다른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서 말할 때 이상적인 정부, 플라톤의 공화국이나 오웬 주의자들의 이상향을 묘사하지만 그들은 공상적인 이론가 들일뿐이고 "주의 영이 계신 곳"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이미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종교가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종교의 영향 때문이란 점을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자유는 이런 자유가 아닙니다. 무한히 더 크고 더 좋은 것입니다. 시민적인 또는 종교적인 자유가 크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본문의 자유는 훨씬 더 초월적인 자유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영국에서 조차도 자유의 달콤한 공기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크리스천들만이 누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당당히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움츠러들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굽신거려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의지도, 원칙도, 목소리도, 용기도 없으며, 의식적인 독립심으로 똑바로 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진리가 자유하게 만든 자유인입니다. 마음에 은혜를 가지고 있는 그는 자유합니다. 다른 이들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십니다. 그는 고귀한 권한을 가진 천국 보혈 왕국의 한 왕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선택받고 구별된 자녀로 굽신거리거나, 초라하게 움츠려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원칙을 버리기보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함께 불속을 걸을 것이고, 다니엘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는 자유인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충만하고, 가장 높고, 넓은 "자유함이 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주의 영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영이 없으면 여러분은 여전히 속박받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자유의 나라에서 몸으로는 농노가 없지만, 영혼으로는 노예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영적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안에 "주의 영"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과 저는 영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영적 자유가 없었던 때, 즉 노예였던 때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귀의 노예가 되어 마귀의 의지대로 이끌려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우리가 자유 의지를 이야기했지만, 그 자유 의지는 노예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지만, 그러나 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노예적이고 꿈같은 자유였습니다. 환상 속의 자유였습니다. 우리는 욕망과 정욕의 노예였으며 죄의 노예였지만 이제는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강력한 폭군으로부터 놓였습니다. 우리는 자유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자유는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첫째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아! 제가 죄의 속박에 이야기하게 되면 저는 분명히 여러분 일부에게 흥분하면서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비참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속박과 종 됨 중에서 죄의 속박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습니다. 짚도 없이 벽돌을 만들던 애굽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말씀하시고, 잔인한 감독관의 채찍 아래 있던 흑인 노예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저는 차마 견디기 두려운 속박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훨씬 더 나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의 짐을 버거워하게 된 죄인의 속박, 마치 사냥개가 지친 사슴에 울부짖듯이 자신의 죄가 스스로에게 으르렁 거리고 있는 사람의 속박, 죄의 짐을 어깨에 지고 있는 사람의 속박입니다. 그의 영혼이 견디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고, 그가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하는 그러한 짐입니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없습니다. 그의 눈썹에는 어두운 구름이 가득하고 근엄하고 심각하게 서 있습니다. 한숨이 곧 그의 말이고, 신음이 그의 노래이며, 눈물이 그의 미소입니다. 가장 행복해 보일 때 조차도 뜨거운 슬픔의 눈물이 흐르고, 볼에 델 것 같은 자국을 남깁니다. 그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어보십시오, "나는 가련한 인간"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에게 어떤지 물어보십시오, "비참함의 화신"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보십시오, "영원한 불속에 빠질 것이고 소망이 없다"라고 할 것입니다. 생을 홀로 마감하는 그를 보십시오. 베개에 머리를 누여도 고통은 다시 시작됩니다.  밤에는 고통스러운 꿈에 시달리고 낮이면 꿈꾸었던 고통이 현실이 됩니다. 속박 아래 있는 참 불쌍한 죄인입니다. 

저는 그랬었고, 여러분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우울한 절망의 구렁텅이를 지나왔습니다, 어두운 참회의 계곡을 통과했습니다, 회개의 쓴잔도 마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모든 속박 중에서도 율법의 속박과 타락의 속박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아마도 "아멘"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가련한 자여, 누가 이 속박으로부터 나를 풀어줄 것인가?" 그러나, 크리스천은 자유입니다. 이전에는 울었지만 이제 그는 미소 지을 수 있고, 이전에는 슬펐지만 이제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이제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제 가슴에 더 이상 죄가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어두운 것에 대한 공포,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는 씻겨 나갔고 제 영혼에 더 이상 죄가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저에 대해서 하나님의 찡그리시지 않으시고 대신 미소를 지으십니다. 주님의 눈에는 사랑이 흐르고 그의 음성은 감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용서받았습니다, 저는 용서받았습니다, 저는 용서받았습니다!  만세! 족쇄를 끊으시는 영광스러운 예수여! 처음 속박이 사라졌던 그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저는 제 앞에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를 생각하며 그의 죽음과 고통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주께서 저를 바라보고 계심을 생각하며 주께서 저에게 시선을 주실 때 그를 바라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내 영혼의 사랑
당신의 품으로 날아가게 하소서"

그가 '오라' 하셨을 때 그에게로 가서 그를 꼭 껴안았습니다. 다시 가라 하셨을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짐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없어졌습니다! 그곳에서 공기처럼 가벼움을 느꼈습니다. 날개 달린 요정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고난과 절망의 산 위로 날 수 있었습니다. 오! 제가 가졌던 자유와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요! 제가 받은 엄청난 용서와 죄로부터의 자유는 저를 펄쩍펄쩍 뛰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첫 번째 자유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죄의 형벌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무엇일까요? 슬프게도 죄의 형벌인 영원한 죽음, 끊임없이 고통받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지옥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내가 쓰러지면 사탄의 손아귀에 빠져 나를 괴롭히도록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이 자리에서 하는 것도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왜 그럴까요? 이런 일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고, 내 존재에 대한 가장 큰 저주가 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것과 같은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땅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 무덤에서 썩어가는 것을 기꺼이 선택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는 자신이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도 믿지요. 그리고 성경에서 자신의 파멸도 읽습니다. "마가복음 16:16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분들은 자신을 믿는 자 사이에 둘 수 없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신의 죄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서 벌하실 수밖에 없다고, 벌하시지 않으시면 그의 공의를 해칠 것이라고 믿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숨겨진 범죄와 공공연한 죄악을 벌하시지 않으시면, 하나님 되심을 그만두고 주의 보좌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 너무 반항적이라는 느낌을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며, 신음하고,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아찔한 꿈을 생각합니다. 꿈을 꾸면 불타는 호수를 봅니다. 불타는 호수는 불의 물결과 불타는 유황이 피어오릅니다. 매일을 다음 단계에는 바닥 없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크리스천 여러분은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이점을 알고 계십니까? 이 사실을 인식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 시간 여러분은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여러분의 죄가 크고 엄청났을지라도 여러분은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결코 형벌받을 수 없습니다.

"한 죄인이 믿는 그 순간,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순간,
그에게 곧바로 주어지는 주의 용서,
오로지 그의 보혈이 나를 구원했네"

그리고, 여러분은 죄 때문에 결코 형벌받을 수 없습니다. 믿는 자의 형벌이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통은 죄로 인해 받는 형벌이 아닙니다. 심판의 형벌이 아니라 부모님의 꾸지람입니다. 저에게 지옥은 없습니다. 지옥은 지옥대로 불타라고 하십시오. 제가 믿는 자라면 저는 그곳에 없을 것입니다. 저가 의롭게 되었다면 저는 저주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저에게 영원한 족쇄도, 속박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저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주께서 저에게 다시 형벌을 내리신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한번 형벌을 받으심으로 영원히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저에게 너는 죄인이라고 말을 한다면, 저는 양심에게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내 안에 계신다. 맞습니다. 저는 죄인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제 몸 값이 이미 치러졌다면, 하나님께서 그 빚을 두 번이나 요구하실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두셨습니다. 믿는 자가 지옥에 갈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형벌 때문에 두려워 떨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형벌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요.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고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우리는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 진주 대문 열 것이지만, 지옥의 철문은 모든 믿는 자에게 영원히 닫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이 자유는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3. 그렇지만, 앞서 다룬 두 가지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이며 그것이 싫다면 떠나셔야만 할 것입니다.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크리스천은 믿는 순간 더 이상 죄가 없습니다. 왕이 선의로 한 살인자에게 사면을 베푼다면 처벌은 받지 않지만, 여전히 그는 범죄인입니다. 수천번의 용서를 베풀 수 있고, 법이 그를 건드릴 수도 없지만 여전히 그는 범죄인입니다. 그 범죄는 그의 머릿속에 항상 남아 있을 것이고, 그가 살아 있는 한 살인자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속박과 형벌로부터 놓였을 뿐만 아니라 죄책으로부터도 해방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놀랄만한 일일 것입니다. "뭐라고요?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시각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고요?"라고 여러분이 말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를 생각한다면 죄인이겠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눈같이 흰 날개와 티 없는 천사의 의복을 입은 가브리엘 천사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져 눈보다 희게 된 죄인 보다 더 순수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의 그 죄책이 어떻게 없어지는지 이해하십니까? 저는 여기에 죄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배신자로 서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저의 구원을 위해 오셔서 제 감방을 떠나라 하십니다. "내가 네 자리에서 너를 대신 하마, 내가 죄인이 되겠다. 너의 모든 죄는 내가 감당할 것이다. 너의 죄들을 내가 가지고, 고통받으며 그것을 위해 죽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옷을 벗으며 말씀하십니다. "이 옷을 입어라. 너는 마치 그리스도인 것처럼 여겨질 것이고, 의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네 자리로 가고, 너는 내 자리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완전한 의의 옷을 제게 둘러 주십니다. 이것을 본 저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 영혼아 이상하게도 너는 내 형제의 옷을 입고 있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제 머리에 있고, 흠 없는 그의 옷이 저를 감싸고 있으며, 제 발에는 그의 황금 신발이 신겨져 있습니다. 이제 죄가 있습니까? 죄는 그리스도께로 갔고 의는 제게로 왔습니다.

재판장이 "죄인을 이 앞으로 데려오라" 합니다. 죄인이 나옵니다. 누가 끌려 나옵니까? 바로 성육신 하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진실로 그는 죄를 짓지고 않고, 잘못도 없으시지만 죄가 그에게 전가되어 죄인의 자리에 서 계신 것입니다. 재판장이 외칩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완벽하게 의롭게 된 이들을 데려오라" 제가 누구를 볼까요? 바로 교회이고, 모든 믿는 자입니다. 재판장이 말합니다. "이들 모두가 완벽하게 의로운가?" "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들은 그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이 한 것은 그리스도께로 놓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그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의 죄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것이 참 이상하고 놀랍지 않으십니까? 극단적인 칼빈주의라고 자의로 정의하며 비웃으시지만,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된 의를 통해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참 신자라면 저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에는 저에 대한 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잊혔고, 지워졌습니다. 저는 결코 형벌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형벌받을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의 죄를 속죄하셨고 저는 그의 의로움을 받았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4. 또한, 크리스천은 죄책과 죄의 형벌로부터 놓임을 받은 것처럼 그것들의 지배로부터도 자유로와 집니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정욕의 노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유로운 삶과 생각을 찬양하죠. 술 취해서 흥청망청 진탕 마시고, 소리치고, 음란하며 불륜을 맺는 이런 것을 세상 사람들은 자유로운 삶이라고 부릅니다. 자유로운 삶이라고요! 노예가 자신의 족쇄를 들고는 딸랑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격입니다. "이건 음악이야, 나는 자유로와!". 참 불쌍한 미치광이입니다. 베들레헴의 미치광이는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왕이라 하는 사람입니다.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가 왜 자신을 왕이라 하는지 압니다. 그는 귀신 들렸고,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자유로운 삶을 말하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진짜 자유로운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들은 노예입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밤에 잠자리에 들면 이리저리 뒤척이며 불안해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요? 잠을 깨면 "그 어제, 그 어제!" 하며 탄식하지 않으셨나요? 또 다른 죄의 날이 다가와도 지옥의 개처럼 "그 어제"는 또다시 짖어대고 여러분을 쫓아다니지 않았나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죄는 속박이며 노예입니다. 여러분은 그 속박을 없애보려고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은 해보았다고 말하시겠지만, 저는 그 노력의 끝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런 시도를 하면 할수록 여러분을 옥죄고 있는 족쇄는 더욱 단단해지고 여러분을 묶고 있는 사슬은 고정되어 버립니다. 은혜 없는 죄인이 스스로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시시포스가 지옥에 떨어져 큰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한없이 되풀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혜 없는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시도는 다나오스의 딸들이 살인죄의 대가로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물독을 채우는 희망 없는 형벌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활시위 없는 활, 날이 없는 검, 총알 없는 총을 가진 것입니다. 힘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의미 없는 개혁이 될 수 있습니다. 화산 위에 흙을 덥고, 분화구 주위에 꽃을 심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다시 움직임이 생기면 덮었던 흙은 없어지고, 뜨거운 용암이 꽃을 덮고 말 것입니다. 그의 모든 성과와 의는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은혜 없는 죄인은 노예입니다. 스스로는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그렇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이 자기 죄의 노예일까요? 하나님의 참 상속자가 노예일까요? 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불멸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부정한 상태로 살지 않습니다. 이 땅의 구걸자들은 잘못된 행동에 굽신거릴 수 있지만, 하늘 보혈의 왕자들은 의로운 행위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에 불쌍하고 비참한 이 세상 사람들은 부정직과 불의 가운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속자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주를 사랑하고, 죄의 능력으로부터 자유하며 그가 걷는 길은 의의 길이고 그의 끝은 영생입니다. 우리는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습니다.


5. 다시 한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모든 경건한 사랑의 행동 가운데 자유함이 있습니다. 바로 율법에 대한 맹종적인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경찰이 겁나기 때문에 정직합니다. 대중의 눈이 무서워 술 취하는 것을 자제합니다. 겉보기에 종교적인 것은 이웃 때문입니다. 포도주스와 같은 미덕들이 많습니다. 벌집의 꿀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포도 주스를 얻으려면 꽉 짜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말하건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의 일은 노예의 일이고,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의 자녀로 자유를 누리기 전의 저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은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기도를 하는 것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뭔가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 하심에 감사를 드린 것은 감사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얻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의로운 행동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실 것이고, 천국에서 어떤 상을 받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물을 긷고 나무를 하던 기브온 족속과 같은 불쌍한 노예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내 의지가 있었고, 갈 교회가 없었다면 저에게 종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탄의 길을 쫓아갔을 것입니다. 노예요 자유롭게 죄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크리스천 여러분, 여러분의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오늘 여러분을 교회로 오게 만들었습니까? 

"사랑은 네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주저함 없는 순종을 행하게 한다"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기도할 때 무릎을 꿇게 하나요? 그것은 여러분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소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지갑을 기꺼이 열도록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너무나 풍성히 받은 것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 그리스도께 돌려드리는 것 자체가 자신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정직하고, 의로우며, 방탕하지 않게 살도록 부담을 지우는 것일까요? 감옥에 갈까 봐 그럴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감옥을 열 수 있고, 정죄를 파괴할 수 있으며, 모든 사슬을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처럼 거룩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럼, 크리스천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그러기를 바랍니다. 만약 제가 제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살 것입니다. 늘 거룩하게 살 겁니다. 만약 크리스천이 자기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는 항상 그가 마땅히 살 바대로 살 것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죄는 노예이며, 의는 기쁨입니다. 오! 만약 제가 적은 대로만 살 수 있다면, 저는 마땅히 제가 살아야 할 것들을 적겠습니다. 만약 제가 뜻한 대로만 살 수 있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명령하신 대로 살겠습니다.

크리스천의 가장 큰 행복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예적인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을 여러분이 원하는 곳에 데려다 놓아 보세요. 그는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어떤 유혹의 상황에 두어 보십시오 그에게 악한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가 죄짓는 것은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거룩은 그의 기쁨이고, 죄는 그에게 노예적인 것입니다. 아! 반드시 와야만 하기 때문에 교회에 오신 불쌍한 속박 가운데 있는 사람들, 아! 족쇄가 무서워 정직하고, 감옥이 무서워 방탕하지 않는 불쌍한 노예적 도덕주의 자들, 아! 여러분은 불쌍한 노예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우리를 율법 폐지론자로 부르십시오. 우리는 문제가 있는 이름이지만 그 가운데서 조차도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그 해방으로 이전보다 더 순종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이전보다 더 그의 주인을 섬깁니다. 그 옛날 어스킨이 말했지요. 

"할 수 있거든 그의 사랑을 외면하라
아니다, 아니다; 그의 무한한 친절은 사람들을 이끌어 온다.
영원한 사랑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기꺼이 순종하기로 결단한다;
아주 깊은 구속의 사랑으로,
죄 없던 아담의 때 보다 더"

 

6. 끝으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오 죽음은 얼마나 많은 달콤한 것들을 쓰디쓴 것으로 만들었던가요! 오 죽음은 얼마나 많은 재미있는 일들을 깨버렸었던가요! 오 죽음은 얼마나 많은 음식 잔치들을 망쳐 버렸었던가요! 오 죽음은 얼마나 많은 세상적 즐거움들을 고통으로 바꾸어 버렸었던가요! 여러분 이 아침 지난 몇 년간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무엇이 보이십니까? 음침한 죽음이 거대한 벌 낫을 들고 서있습니다. 죽음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 그건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종려나무 가지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도 죽음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바로 지옥입니다. 오 죽음은 죄가 창궐했을 많은 집들에서 출몰해 왔었고, 오 죽음은 정욕이 넘치는 많은 마음과 그 죄로 인해 떨기 시작한 많은 마음을 서늘하게 해왔습니다.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지요. 세상의 절반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은 대포를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어떤 바보 같은 사람들은 피 묻은 손으로 창조주의 재판정으로 나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 하나님 제가 두려워하지 않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다음 여름에 다시 콜레라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콜레라가 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만일 콜레라가 다시 온다고 해도 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고생하며 떨어질 때까지 밤낮으로 병자들을 방문할 것입니다. 만약 저를 데려가신다면 갑작스러운 죽음은 갑작스러운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계신 가장 연약한 성도들도 장래의 사라짐으로 떨지는 않습니다. 가끔 두려울 수도 있지만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기쁨 속에서 지내실 것입니다. 조용히 앉아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 무엇입니까?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입니다. 삶은 무엇입니다? 삶은 우리를 영광과 갈라놓는 좁은 장막이고 죽음은 그것을 걷어주는 것입니다.

착하신 할머니 한분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50년간 아침식사 전에 내일 아침 요단강에 제 발을 담급니다. 제가 지금 죽는 것을 두려워할까요?" 죽음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왜 수백 번을 죽는 것일까요? 우리는 매일 죽습니다. 매일 아침과 밤에 잘 때 우리는 믿음으로 매일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을 대면하면 죽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죽음아! 너와 나는 참 오래된 사이구나, 매일 밤 침대에서 만났고, 매일 너와 대화를 나누었으며, 책상에 해골을 올려두고 가끔씩 너를 생각했었다. 죽음아! 결국 네가 왔지만 너는 환영받는 손님이란다. 너는 빛의 천사이고 내가 가졌던 가장 최고의 친구다." 죽음이 올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는데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여기서 저는 한 웨일스 여인의 일화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침대에 누워 생을 마감하고 있는 착한 여인을 목사님이 방문했습니다. 목사님이 여인에게 묻습니다. "자매님, 가라앉고 있습니까?" 여인은 대답 대신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목사님을 바라봅니다. 목사님이 다시 "자매님, 가라앉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여인은 그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목사님을 바라봅니다. 결국 여인은 몸을 조금 일으키더니 이렇게 말을 말합니다 "가라앉다니요! 가라앉다니요! 목사님은 죄인이 바위에서 가라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만약 모래 위에 서 있는 다면 가라앉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저를 영원한 반석 위에 두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거기에는 가라앉음이 없거든요!"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지요! 오 천사들이여! 오 만군의 여호와의 일꾼들이여 당신들의 날개를 펴고 우리를 이 땅에서 끌어올리소서. 오 날개의 천사여 우리를 이 죄악 된 것들로부터 닿지 않도록 지키소서, 당신들이 올 때까지 나는 노래할 것입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 나는 두렴 없네
이 진흙의 옷을 기꺼이 벗고,
주안에서 죽는 것은 언약의 축복이라네;
예수의 영광으로 죽음은 길을 열었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 자유의 부정적인 면들을 할 수 있는 한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 가능한 단순하게 말씀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그런 의문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에는 몇 가지 영광스러운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의미에서 율법에서 해방되고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할 자유도 있습니다. 오래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제 형제자매들을 위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건네줄까 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고" 그 자유는 우리에게 어떤 권리와 특권을 부여합니다. 

우선 우리는 천국 헌장에 자유롭습니다. 천국 헌장, 대헌장인 성경에 대하여 여러분은 자유합니다. 여기 선택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여러분은 이것에 자유합니다. 다른 구절도 있습니다. "이사야 54: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여러분은 이것에 자유합니다. 다른 구절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러분은 이것에도 자유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마음이 끌리는 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택하셨다면 여러분은 그것에 자유롭습니다. 다른 장에는 의인의 정죄 없음과 그들의 의롭게 됨을 말하는데 그것에 대하여도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자유롭습니다. 여기 무한한 은혜의 보고로 채워진 다함없는 보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 은행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에서 어떠한 허락이나 방해 없이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여러분이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믿음을 가져오십시오. 그러면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것이 아닌 약속이나 말씀은 없습니다.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깊은 고난 가운데서라도 그것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고통의 파도 한가운데서라도 그것으로 기뻐하십시오. 슬픔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것으로 여러분의 도움으로 삼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티켓입니다. 결코 그것이 닫히거나 먼지가 쌓이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유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자유를 사용하세요. 

다음으로 은혜 보좌에 대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영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항상 의회에 탄원을 제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듯이 믿는 자는 누구나 항상 하나님의 보좌에 탄원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내일 아침 하나님과 말하고 싶다면,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저의 주님과 대화하고 싶다면 저는 그에게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보좌로 나아갈 권한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불쌍한 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가서 주께서 저의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구할 것입니다. 저는 한 밤중의 어두운 시간에도,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언제나 그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운명이 저를 땅끝까지 인도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주의 보좌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권리를 사용하세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 권리를 사용하세요. 그 특권에 맞게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남자들은 자신이 번 것보다 많이 소비하여 자신의 수입을 넘어서서 살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이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말의 뜻은 자신의 영적 수입에 맞게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여러분은 무한한 수입이 있습니다. 약속의 수입, 은혜의 수입입니다. 어떤 크리스천도 그 수입에 맞게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제가 돈이 더 많다면, 저는 더 큰 집과 말과 마차, 그리고 수많은 것을 가질 것입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크리스천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저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더 큰 집과 더 위대한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행복을 바라보시고, 눈에서 눈물을 떨쳐 내시기를 바랍니다 -

"종교는 결코 짜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우리의 기쁨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은행에 저축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엄청납니다. 가난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일어나서 기뻐하세요! 즐거워하세요! 크리스천은 자신의 수입만큼은 살아야 합니다. 그것보다 아래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여러분은 시온성으로 들어갈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 런던에는 많은 자유인들이 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건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런던의 자유인은 아니지만, 더 좋은 도시의 자유인입니다.

"주의 은혜 내가 받아
시온 백성 되는 때
세상 사람 비방해도
주를 찬송하리라"

여러분은 시온성에 대한 권리가 있지만 그것을 행사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중 몇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기독교인이시지만 여전히 교회에 참여하지 않는 분들이죠. 여러분은 믿는 사람이라면 침례를 받아야 한다 것이 옳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오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마도 익사하는 것이 무서우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월 하나님의 식탁이 차려지고, 주의 모든 백성들에게 열려 있지만 여러분은 결코 오시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의 잔치인데 말입니다. 만약 제가 부시장이었다면 시의 축제에 불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천 되었다면 저는 크리스천의 잔치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결코 얻지 못한
구속의 은총과 죽으심으로 주신 사랑"

여러분 중에 일부는 하나님의 식탁으로 결코 오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식을 무시합니다. 주께서는 "고린도전서 11:24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도시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성문을 통과해서 들어갈 권리가 있지만 그냥 바깥에 서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세요. 제가 손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교회 바깥에 남아 계시지 마세요. 여러분은 교회로 들어오실 권리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하늘 예루살렘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최고의 선물이지요. 우리는 천국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죽을 때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주문을 압니다. 문을 활짝 열게 하는 암호를 압니다. 그가 대속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하얀 돌을 가지고 있어서 그로 하여금 장벽을 지나가게 해 줄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믿지 않으시는 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어둠의 땅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천국 문 앞에 섭니다. 엄청나게 크고 높은 문입니다. 문 위에는 "의인들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문지기를 찾고 있는데, 문위에 키가 큰 대천사가 나타납니다. "천사여 저를 들어가게 해 주세요" 말했더니, "너의 의복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의복을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넝마가 조금 있을 뿐 결혼 예복은 없습니다. 다시 "저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악당들이 저를 따라와서 저를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라고 간청해 보지만, 천사는 조용하게 손가락을 올리며 말합니다. "저기를 읽어 보아라. 의인들만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고 쓰여 있지 않은가?" 그러자, 무릎이 서로 부딪치고 손이 흔들릴 정도로 떨기 시작합니다. 황동 뼈와 철 입술이 녹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문 앞에 서서 온 몸을 떨고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한 음성이 나와서 놀라 엎드려 울부짖게 합니다. "마태복음 25:41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여러분, 혹시 여러분이 저런 모습이 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모습이 될까요? 천국 시민의 자유를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유를 주는 성령을 찾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저는 그냥 내버려 두면 여러분이 그것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압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의 일부는 절대 갖지 않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도록 허락하여 주시고, 구원받는 수는 크게 하여 주소서! 


"돌아서면 내 영혼은 쉼을 얻겠네
대제사장의 대속으로 
자유를 얻었네.
그의 보혈의 능력을 신뢰하라,
주께 버림 받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728x90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