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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2월 4일 주일 아침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사우스 워크 (Southwark)에 있는 뉴 파크 스트리트 채플 (New Park Street Chape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연약한 성도를 위한 감미로운 위로, Sweet Comfort for Feeble Saints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한두 사람의 명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는 널리 알려질 만한 영광을 가지고 있고 하늘에 닿을 만한 영예를 가진이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름들은 대리석에 새겨지고 그 이름은 만방에 알려집니다. 명성이 공정한 판정에 의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나름의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칭찬과 찬양을 넘어서 거의 신격화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가 가진 미덕이 크고 더 칭찬받을 만 하지만 무시되거나 침묵되고 맙니다. 명성에 의해 사랑받는 사람들은 보통 철이나 동을 재료로 동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시이저의 명성은 강력한 통치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었고, 루터는 용감하고 담대하게 로마 교황에 저항했고 가톨릭 교회의 파문에도 코웃음 쳤다는 것입니다. 녹스가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받은 엄청난 고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용기를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같은 피조물 가운데서도 두려움 없이 굳게 선 열정과 패기의 사람들, 용기로 가득한 사람들, 두려움 없이 겁이란 것을 결코 모르는 사람들이란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 만큼이나 아마도 더한 미덕이 있고 존경받을 만 하지만 명성이 잊힌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루터의 동료로 종교개혁운동에서 루터만큼이나 노력했던 관용적인 인물인 멜란히톤의 명성을 들어 보셨습니까? 정제된 천상의 언어를 보여준 새뮤얼 러더퍼드나 일생 중 결코 화를 낸 적이 없다는 로버트 레이튼 대주교의 명성을 많이 들어 보셨습니까? 명성은 폭풍 구름을 이겨내는 거친 화강암 봉우리에 있지 지친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계곡의 더 초라한 바위에 있지 않습니다. 뭔가 대담하고 눈에 띄는 것, 인기를 부르는 것, 세상 앞에 두드러지는 것에 명성이 따르는 법입니다. 명성은 그늘에서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사랑의 주, 예수님은 명성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하고 강력하며 거룩하고 순결한 최고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인들의 이름 중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상하며, 온화하고 온유한 예수님"이었기 때문이고 특히 그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지만 모든 사랑이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씀은 버터보다도 부드러웠고 그의 발언은 기름이 흐르는 것보다 더 자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상하게 말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고 결국 그는 무시되고 잊혔습니다. 그는 칼을 든 정복자가 되거나 불같은 웅변술을 가진 마호메트가 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작은 목소리로 바위 같은 마음을 녹이고 깨어진 영혼을 치유하러 오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함 그 자체 이셨으며, 이점 바로 그분이 다른 사람처럼 찬사를 받지 않은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말씀은 온유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에 푹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제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긍휼과 위대한 사랑을 여러분에게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치명적인 약점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마지막으로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하신 확실한 승리입니다.

 

I. 첫째로 우리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라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시각 앞에 서 있습니다. 매우 암시적인 은유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 들입니다.

너무 공상적이 아니길 바라는데 혹여 그렇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생각에 상한 갈대는 죄를 깨달은 첫 단계에 들어선 죄인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상함으로 시작합니다. 구원받으려면 황무지는 개간되어야 하고  단단한 마음은 부서져야 하며 바위는 산산이 깨져야만 합니다. 옛 성인들은 지옥문을 통과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죠, 엄청난 영혼의 고통과 마음의 단련이 있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한 갈대가 주께서 한 불쌍한 죄인의 영혼에 역사를 시작하실 때의 모습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거의 완전히 부서지고 남은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타락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췸을 얻고 불이 붙었었지만 은사를 무시하고 성령을 거부함으로 죄에 빠지고 그의 빛은 거의 사람진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히는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므로 결코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름이 떨어진 램프처럼 거의 쓸모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닙니다. 불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이전에는 쓸모 있는 램프였지만 지금은 꺼져가는 심지를 가진 불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은유들을 상한 갈대는 회개하는 죄인으로 꺼져가는 심지는 타락한 크리스천으로 묘사할까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둘을 구분하기보다는 두 가지 은유로부터 우리가 몇 가지 생각을 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격려는 약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보다 약한 것이 무엇일까요? 늪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갈대를 야생 오리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꺾어버리지요. 사람의 발에 스치기만 해도 상하고 부러집니다. 강에서 강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뿌리까지 거의 찢기고 맙니다. 상한 갈대보다 약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어떤 상황에 더 의존적인 존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꺼져가는 심지를 볼까요. 꺼져가는 심지가 무엇이죠? 그 안에 불꽃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거의 꺼져가는 상태입니다. 아기의 숨결이나 아가씨의 눈물에도 꺼져 버릴 수 있는 상태입니다. 꺼져가는 심지 속에 숨어 있는 희미한 불꽃보다 더 위태로운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보셨듯이 약한 것이란 바로 이러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 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할 것이다" 약한 이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아! 제가 멀리 갈 필요가 없군요. 이 아침 이 기도의 집에도 사실상 약한 이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몇몇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도록 강하게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자 성문의 문설주를 통째로 뽑아서 산꼭대기에 올라가 던져버릴 수 있는 삼손을 여기저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진영에 들어가서 그들의 군대를 전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기드온을 여기저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겨울에 구덩이에 들어가서 사자를 죽일 수 있는 위대한 사람들을 가지셨지만 그의 백성 대부분은 소심하고 약합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에도 겁을 먹는 찌르레기와 같은 두려움에 묶인 무리입니다. 유혹이 오면 그것에 빠져 버리고 시험이 다가오면 그것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그들의 약한 배는 모든 파도에 이리저리 춤을 추고 바람이 불면 파도 위를 나는 바다새처럼 가볍게 나부끼는 약한 존재입니다. 힘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제가 여러분 몇몇 분의 손과 마음을 붙잡고 있음을 압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약함이요! 아 바로 저입니다. 아주 종종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찬양하고 싶지만 찬양할 수 없고, 기도하고 싶지만 기도할 수 없으며,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선의 해결책은 약함과 무의미함 뿐입니다. "힘을 내보자"라고 외칠 수록 이전보다 더 약함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약하십니까? 그렇습니까? 상한 갈대이고 꺼져가는 심지입니까?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바로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약한 이들이 모여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와 계신 것이 기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결코 꺾지도 끄지도 않을 것이며 붙들어 주고 감싸줄 것이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곳에는 자기 스스로 아주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종종 저는 이런 약함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 강한 마음의 소유자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들의 말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죄에 빠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타락했다고 우리에게 말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선하고 순수하며 똑바로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그분들에게 설교하거나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힘은 허상이고, 능력은 착각이며, 권능은 거짓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자랑할 수 있지만, 죽음과 함께 실제 시험이 다가오면 그것들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강한 유혹이 찾아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것과 맞설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도덕적인 여러분을 붙잡아 추락시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화려한 도덕이라는 제복은 너무 얼룩져서 손을 눈 녹은 물에 씻고 스스로를 엄청나게 깔끔하게 닦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옷이 여러분을 싫어할 정도로 오염되었습니다. 약함은 복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령께서 그를 성스럽게 만드시기 때문에 약한 사람은 성스럽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힘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본문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는 약한 것뿐만 아니라 가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원리로 비추어 보았을 때 거리를 걷다가 핀을 줍는 사람은 들어보았지만 상한 갈대를 줍기 위해 멈추는 사람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소유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풀 조각인 상한 갈대에 누가 관심이나 갖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무가치한 것으로 무시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꺼져가는 심지는 어떤가요?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유해롭고 불쾌한 것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에 가치를 부여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생각도 그러시겠지만 우리 중의 많은 이들은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분들이 자신 스스로를 성소의 저울에 올려놓거나 자신의 마음을 양심의 천칭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아마도 선한 것이 없는 무가치한 쓸모없는 존재로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너는 네가 가질만한 것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말하면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 만큼은 착하다고 믿는다"라고 대꾸합니다. 자신 스스로를 훌륭한 존재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만한 지극히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가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거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그런 비열한 피조물입니다. 너무나 무가치합니다. 여러분은 주께서 물 한 방울 속에 있는 미생물, 햇빛 속의 먼지 티끌, 여름날 저녁의 벌레를 보실 수 있음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주께서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거의 말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고 쓸모도 가치도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제가 무슨 소용이 있죠? 저는 아무것도 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복음 사역으로 어떤 사역을 하고, 교회 집사로 뭔가 일을 하고, 주일 학교 교사로 좋은 일을 하지만, 저는 어떤 일을 할까요?" 여기에서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상한 갈대가 어떤 쓸모가 있죠? 사람이 기댈만합니까? 사람이 그것으로 힘을 얻을만합니까? 제 집의 기둥으로 쓰거나 팬파이프로 묶어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꺼져가는 심지는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한밤중에 여행자가 그것으로 불을 밝힐 수도 없고 학생이 그 아래서 책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은 불에 던져 태워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말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가치가 없다고 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쓸모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국 여러분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하실지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착한 여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인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거의 외출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선한 일은 거의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아들을 양육하는 것은 높고, 고귀하며 책임 있는 역할입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달변가 아볼로와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침부터 밤까지 수고하는 것이고 매일매일 겨우 살만큼을 벌면서 드릴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주일 학교에 가면 읽어 줄 수는 있지만 더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불쌍한 분들이죠. 그렇지만 무릇 적게 받은 자는 적게 달라하게 되는 법입니다. 여러분은 길거리를 쓰는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것을 모르십니까? 두 천사가 이 땅에 내려온다면 하나는 왕국을 다스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길거리를 치울 것입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다음에 그들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안에서 여러분을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부르셨다면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감당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계신 여러분 중에는 여전히 스스로 교회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집니다. 돈으로도 교회를 도울 수 없고 재능으로도 시간으로도 도울 수 없어 결국 주께서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맙니다. 자신이 바울이나 베드로처럼 되어야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쓸모없는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가치 없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이들을 위한 뭔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주의하십시오. 저는 이 말씀을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을 변호하거나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사람들을 변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당나귀에게 채찍이 있듯이 게으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언젠가 매를 맞아야만 합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분들은 당나귀처럼 강한 잇사갈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두 짐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일어서질 못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저는 추위를 핑계로 밭을 갈지 않는 게으름뱅이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분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봉사할 수 없음을 정말로 느끼는 사람들이고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분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관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두 가지는 좋지 않은 것들입니다. 상한 갈대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갈대를 묶어서 만든 팬파이프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입을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면 어떤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발이 발명했고 다윗도 말했던 그 오르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오르간과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상한 갈대가 들어가면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음악을 망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새것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꺼져가는 심지나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것에서 나는 연기가 좋지 않다는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꺼져가는 심지에서 나는 냄새만큼 좋지 않은 냄새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분은 "뭘 그렇게 까지 좋지 않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 혼자 갈 수 있는 것보다 낮게 가지도 않았고 여러분이 저와 함께 갈 수 있는 것보다 낮게 가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정말로 겸손케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이 팬파이프 속의 상한 갈대, 눈과 코를 자극하는 연기를 내뿜는 꺼져가는 심지처럼 스스로의 영혼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좋지 않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저는 종종 사랑하는 존 번연이 했던 말을 생각하곤 합니다. 스스로 너무나 좋지 않은 존재임을 느끼며 주께서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두꺼비나 개구리, 뱀으로 만드셨으면 했던 것입니다. 오! 독사 굴을 생각하면 아주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온갖 혐오스러운 것과 부패한 것으로 가득한 웅덩이 상상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만큼 끔찍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끔찍한 광경 때문에 아마도 미쳐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십니까? 하나님의 시선에 여러분이 그에게 너무나 반항적이며, 그의 명령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아주 좋지 않은 존재임을 느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은 바로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여기에 계신 어떤 여성들을 상상해 봅니다. 그녀는 정도를 벗어나 회중 가운데 있으면서 자신은 이 거룩한 성전에 들어올 자격도 없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중단시키고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여 그러지 마세요! 비록 여러분이 경멸 대상이고 스스로 혐오스럽다 여길 지라도 예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라" 이 자리에는 마음에 가책을 가진 어떤 남성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비밀한 중에 저지른 죄가 있어서 저도 알 수 없고 우리 모두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죄는 거머리처럼 그에게 달라붙어 그의 모든 평안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떤 젊은이는 자신의 죄가 주 앞에 드러날 것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갈대처럼 상하고, 꺼져가는 심지처럼 망가진 것입니다. 아! 저도 여러분 드릴 말이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안심하세요! 안심하세요! 여러분 낙심하지 마세요! 예수께서는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가치가 없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뭔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 주께서 그의 손은 얹으신다면 이전에는 가치 없고 쓸모없는 존재였다 하더라도 아주 가치 있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물건의 가격이 원재료의 가치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이의 솜씨에 좌우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여기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이라는 아주 좋지 않은 재료가 있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솜씨가 더해지면 놀라운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상한 갈대가 무슨 쓸모가 있냐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리스도께서 상한 갈대를 가져다 고치셔서 천국의 팬파이프에 쓰이도록 하실 것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큰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고 천국의 파이프 오르간이 깊은 소리를 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다른 것과 섞여서 들리는 저 부드러운 소리는 뭐지?" 그러면 누군가는 "그건 바로 상한 갈대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소리들을 상상해 봅니다. 천국의 막달라 마리아의 음성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했던 불쌍한 도둑의 소리입니다. 다른 어떤 소리보다도 온화하고 부드러웠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많이 사랑하시고 많이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갈대는 여전히 쓸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천국에서 노래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결국 천국 백성과 함께 하늘 보좌 앞에 설 것이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꺼져가는 심지는 어떤 좋은 것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꺼져가는 심지 속에는 거의 없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꽃이 남아 있습니다. 불타는 대평원을 보세요! 무섭게 다가오는 화염을 보십니까? 모든 땅이 타서 재가 될 때까지, 하늘이 화염으로 붉게 물들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뜨거운 불의 위력을 보십니까? 밤하늘은 불에 상처를 입었고 별들은 대 화재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일들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어떤 여행자가 떨어뜨린 꽁초에 작은 바람이 불어 주었고, 결국 대평원이 화염에 휩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가난하고, 약하고, 무지하고 심지어 타락한 사람일지라도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러분이 더 많은 은사와 재능이 있어 하나님 앞에 더 잘 설 것이라는 저희보다 더 쓸모가 있을 줄 누가 압니까? 하나님은 작은 불꽃으로 전 세계에 불을 붙이실 수 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불쌍한 한 영혼의 불꽃으로 나라 전체를 불 밝히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묘비에서 이끼가 자라고, 담쟁이덩굴은 썩은 더미를 타고 오르며 겨우살이는 죽은 가지에서 자랍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에서 은혜와 경건, 미덕과 거룩, 선함이 나올 것입니다. 

 

II.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이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인간의 약한 부분들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렸습니다. 이제 한 단계 올라서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다루겠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가장 처음으로 언급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보다 더 큰 것을 의미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는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한 상한 갈대가 있습니다. 깊은 죄의식에 빠져있는 불쌍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율법의 채찍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계속해서 채찍질이 이어집니다. "주여, 잠시만 멈춰주십시오"라고 애원해 보지만 여전히 잔인한 가죽 채찍질은 쩍, 쩍, 쩍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자신 스스로의 죄를 깨닫습니다. 오! 저는 이 아침 이 사람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 압니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만약 주께서 이 채찍질을 좀 더 길게 이어가신다면 내 마음은 깨어지고 저는 절망 가운데 파멸될 것입니다. 제 죄 때문에 저는 거의 정신이 없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제 죄의 귀신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밤중에 깨면 죽음의 암흑이 저를 보면서 말하는 것을 봅니다. "너는 내 먹이다. 너는 내 것이다" 지옥이 뒤에서 불타는 것 같습니다." 오 불쌍한 상한 갈대여! 주께서는 당신을 꺾지 않으실 것입니다. 심판은 아주 강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녹여서 예수의 발 앞에 가게 할 정도로 엄청나지만 마음을 완전히 부수어 죽일 정도로 강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절망 가운데로 몰려가지 않을 것이며 구원받을 것입니다. 불쌍한 상한 갈대여 당신은 불 가운데서 빠져나올 것이며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침 이 자리에는 과거에는 믿는 자였지만 타락자의 신세가 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분이시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의 길에 있는 행복과 주의 예배 가운데서 기쁨을 찾으며 "나는 저곳에 영원히 머무를 거야"라고 했던 분입니다.

"내가 누렸던 평화로운 시간들;
여전히 감미로운 그 기억들!
그러나, 그것들이 남긴 것은 아픈 공허뿐,
세상은 결코 채울 수 없다"

당신은 연기가 나고 있는 상태로 하나님이 당신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아르미니우스 주의자였다면 하나님이 그러실 거라고 말할 것이지만 성경에서는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믿는 자가 되면, 그는 당신을 끄지 않으실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연기가 나고 있지만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은 죄가 무엇이든 간에 주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 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불쌍한 에브라임이여 그는 당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그에게로 돌아오세요. 당신이 스스로 진창과 먼지 구덩이에 빠졌어도 당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물을 뒤집어썼어도 그는 당신을 멸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돌아오세요, 불쌍한 탕자여, 돌아오세요!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을 부르십니다. 불쌍한 타락자여 귀를 기울여 보세요! 언제나 팔 벌려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계신 그에게로 바로 오세요. 

그는 끄지 않으시고 꺾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첫눈에 보는 것보다 숨겨진 것이 더 많습니다. 예수께서 꺾지 않겠다고 하실 때는 그것보다 많은 것을 뜻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불쌍한 갈대를 가져다 강변에 열심히 심을 것이다. 그리고 기적 중에 기적인데, 그것을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로 만들 것이며, 물을 주고 늘 살필 것이다. 거기에는 천국의 열매가 맺힐 것이며, 내가 맹금류로부터 나무를 지킬 것이며 천국의 감미로운 가수인 천국의 새가 가지에 둥지를 틀 것이다." 예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겠다고 하실 때는 보다 많은 것을 뜻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뜻하시는 것은 그가 키우시고, 도우시고, 힘을 주시고, 지원하며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주께서 그에게 주의 사명을 수행하시며 영원히 영화롭게 만드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또한, 주께서 타락한 성도에게 끄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실 때는 그것보다 많은 것을 뜻하시는 것입니다. 큰 불꽃이 되도록 바람을 불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감히 말하건대 여러분 중에는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셨을 때 자신의 불이 거의 꺼져있는 것을 발견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하실지 압니다. 작은 불꽃에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 주실 것입니다. 만약 단 하나가 남아서 바람을 세게 불어 주어야만 한다면 손을 모아 힘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혼자서 오로지 성냥 하나밖에 없거나 불씨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면 얼마나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겠습니까? 그러므로 타락한 성도여 주께서 당신을 다루십니다. 그는 당신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부드럽게 바람을 불어 주실 것입니다. 그는 "나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인즉 "나는 아주 부드럽고, 신중하며, 조심스러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작은 불꽃이 큰 불이 되어 하늘을 향하여 타오르고 위대한 불이 되도록 마른 것을 놓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 아침 "믿음 적은 자"들에게 한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로 언급된 하나님의 어린 백성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성인들 만큼이나 안전합니다. 저는 이 생각을 잠시 확장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갈까 합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로 불리는 이 하나님의 성도들은 몇몇 이유로 위대한 성인들이나 능력자들 만큼이나 안전합니다. 우선 이 약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 위대한 성인들과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실 때는 한 번에 모두를 함께 같이 선택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얼마를 선택한다면 어떤 것은 나머지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된 것은 다른 것이 선택된 것만큼 동일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큰 아주머니도, 홀로 서지 못한 아가씨도 용감한 위인이나 신실한 목회자만큼이나 똑같은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한번, 주안에서 작은 자들은 위대한 사람들과 똑같이 구속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성도를 위해서도 강한 성도를 위해서도 똑같이 고통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작은 백성이라고 예수님의 귀중한 핏값이 적게 들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이라고 더 많은 핏값이 든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라고 베냐민보다 더 많은 값이 치러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분명 "로마서 10:12  차별이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전으로 한 세겔을 가져왔는데 가난한 사람이라고 적게 가져오거나 부자라고 더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속전으로 모두가 같은 값을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연약한 백성들이여 여러분의 영혼에 이 생각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들은 두드러지게 보일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더 많은 값을 치르신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동일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은 위대한 성인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대여섯 명의 자녀를 두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키도 아주 크고 잘생겼으며 게다가 심성도 좋습니다. 반면에 다른 아이는 가족 중에 키도 가장 작고, 지능도 떨어지고 이해력도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죠. 누가 여러분의 최고의 자녀입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최고의 자녀요? 분명 둘 다 모두 같은 내 자녀입니다.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배움이 아주 짧고, 영적인 것에 아주 어둡고, 사람들을 걸어 다니는 나무로 볼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들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처럼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완전히 의롭게 되었다는 압니다. 

“그의 피와 의로움은 
나의 아름다움이며 나의 영광의 옷이네.”

저는 다른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것과 그의 의를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용감한 자녀는 더 원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저는 부족함 없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오 망설이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바울이나 베드로, 세례 요한이나 천국에서 가장 큰 자만큼 똑같이 구원받았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용기를 가지시고 기뻐하십시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길을 잃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큰 자가 길을 잃은 것만큼이나 빛이 바래질 것입니다. 저는 오래된 책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백성이 그리스도의 일부분이며 그와 연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는 말하기를 "아버지는 그의 방에 앉아 있고 낯선 이가 들어와 아이를 그의 무릎에 올려놓았는데 아이는 상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야 너는 상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구나' '예 그래요' '그럼 내가 상한 손가락을 잘라내고 대신에 금 손가락을 줄게!' 아이는 그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저분에도 더 이상 가지 않을 거예요. 저분은 제 손가락을 잘라낸다고 하지만 저는 제 손가락을 사랑하고 그것 대신에 금 손가락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성도는 "저는 그리스도의 일원이지만 아픈 손가락과 같습니다. 그는 저를 잘라내고 금으로 된 것으로 대신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나의 일원을 잘라낼 수 없다. 아픈 손가락이라면 나는 그것의 상처를 싸맬 것이고 힘을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일원을 잘라낸다는 말을 허용하실 수 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중에 하나를 잃는다면 그는 더 이상 완전한 그리스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의 자녀 중 가장 작은 자를 잃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그의 완전성에 결함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의 교회가 없는 불완전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자녀 중에 하나를 잃어야만 한다면 작은 자 보다는 큰 자가 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만약 작은 자를 읽는 다면 사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는 큰 자를 구원했군. 그들은 힘도 있고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작은 자들은 힘도 없고 너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어" 사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아시지요! 그렇지만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사탄의 입을 닫으실 것입니다. "사탄아! 너의 악의에도 불구하고 내 백성들은 모두 여기에 있다. 모두가 안전하다. 이제 너는 네 소굴로 내려가 영원히 쇠사슬에 묶여 불에 타라!" 결국 사탄은 영원한 불에 고통받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가 영원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이 주제를 마치겠습니다. 큰 자의 구원은 종종 작은 자의 구원에 기인합니다. 여러분은 이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저나 어떤 하나님의 자녀의 구원도 이차적인 것임을 아실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구원에 기인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어머니께서 여러분이 회심하는 데 사용된 도구였다고 가정할 때 사람들의 방식에 따라 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회심이 어머니에게 달려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회심한 것은 그녀를 여러분을 회심의 자리로 데려오는 도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저러한 사역자를 통해서 여러분이 회심했다면 여러분의 회심은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그로 기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의 구원은 종종 작은 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가엾은 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 누구도 그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녀는 예배당으로 갑니다. 그녀의 이름은 신문에도 그 어떤 곳에도 없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녀의 자녀를 키웁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녀의 눈물과 기도는 함께 드려집니다. 아이가 자랍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선교사 윌리엄 놉이고 모펫이며 윌리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어머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 그렇지만, 만약 어머니가 구원받지 못했었다면 그 소년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이 작은 자들을 응원합시다. 여러분이 비록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을지라도 주께서는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III. 이제 마지막으로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하신 확실한 승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라는 단어에는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의 존 무어 경의 죽음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의 슬픈 운명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가 승리의 함성에 눈을 반짝였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찰스 울프가 "그들이 달려옵니다, 그들이 달려옵니다"라는 외침을 듣기 직전에 "나는 행복하게 죽는다"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좋지 않은 상황에서 조차도 승리를 봅니다. 그 군인은 칭찬받을만합니다. 세상적인 승리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 성도들이 승리가 자신의 것임을 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저는 제 인생 내내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지만 제 방패에 "이겼다"라고 새길 것입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정복자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연약한 성도 각 사람은 승리할 것입니다. 목발을 짚은 사람들, 저는 사람들, 병에 걸린 사람들, 슬픔에 젖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약한 사람들 모두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눈먼 자, 저는 자, 불구자, 아이를 가진 어머니가 함께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오리니"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승리! 승리! 승리! 이것은 각 크리스천에 넉넉히 주어진 것입니다. 그의 사랑하는 구속자의 이름을 통하여 승리할 것입니다.

이 승리에 대하여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르신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알기에 여러분은 종종 상한 갈대와 같습니다. 다가오는 일들은 여러분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죽음은 여러분에게 노년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무거운 짐을 진 메뚜기처럼 느껴지고 약함과 쇠락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오 그렇지만, 여러분은 특별한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을 것이다" "너를 강하게 할 것이다" "너의 마음과 몸이 실패하면 내가 네 마음과 몸의 힘이 될 것이다. 영원히"

"나이가 들어도 나의 모든 백성은 증명할 것이다
나의 주권과 영원한, 변함없는 사랑을;
백발이 그들의 성전을 장식할 때,
어린양처럼 그들은 여전히 내 품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 시간이 깁스에 휘청거리며, 기대고, 연약하며 약하고 병들고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시간은 여러분의 최고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완성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약하면 하나님은 시련과 고통을 줄이실 것이고, 여러분의 힘은 약해지더라도 여러분은 천국에서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우리 중에 몇몇은 천국 집에 아주 가까운 여러분과 자리를 바꿀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의 길에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정의 끝에 가까이 있으므로 여러분의 모든 병약함과 색 바랜 머리카락은 여러분에게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 세상의 거친 폭풍 속에서 싸우고 있는 중년 남성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종종 상한 갈대입니다. 종교는 여러분의 세상적 부름에 너무 방해가 되고 있고 매일의 삶은 일, 일, 일이라는 소음에 너무도 덮여 있어서 여러분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이 주를 섬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지만 일도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열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수고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분들이여 주께서는 여러분이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때라도 여러분을 끄지 않으실 것이며, 여러분이 상한 갈대와 같은 때라도 여러분을 꺾지 않으실 것입니다. 대신에 그는 여러분을 여러분의 고난에서 구해 주실 것이며 여러분은 인생을 바다를 헤엄쳐서 천국의 행복한 해변에 닿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그로 말미암아 "승리"를 노래할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종종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공정한 희망을 깨실 때 상한 갈대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우리는 정신이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우리 안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어리석게 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의 회초리뿐입니다. 청년의 길은 어렵고 위험한 길이지만 주께서는 우리를 부수거나 파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주의해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발을 사슴의 발처럼 만드셔서 우리가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도록 걸어가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젊은 나이에 주를 섬기고 여러분의 온 마음을 그에게 드리십시오. 그러면 그는 여러분을 결코 버리시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을 키우시고 소중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우리 어린 친구들을 빼놓아서는 안 되겠죠? 어린이 여러분도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섯 살이 아니어도 구세주를 아는 어린이가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어린이의 경건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노인분들도 몰랐던 신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 주일학교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구세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어린이들이여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너무 앞선다고 말해도 두려워 마세요. 그리고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세요. 

사랑이 많으시며 온유하신 예수는
늘 주의 자녀를 살피시네;
당신의 순박함을 불쌍히 여기고,
그에게 올 수 있도록 견디어 내십시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실 것이므로 그는 여러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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