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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1월 21일 주일 저녁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사우스 워크 (Southwark)에 있는 뉴 파크 스트리트 채플 (New Park Street Chape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보혜사, The Comforter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아기 예수를 품에 안았던 시므온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위로자라고 불렀고 실제 그러셨습니다. 그가 나타나시기 전의 그의 이름은 떠오르는 태양을 예언하는 어둠을 밝히는 샛별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동일한 희망을 품으며 고대하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가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그의 모든 동반자에게 위로자가 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그리스도께 슬픔과 두려움을 말하기 위해서 언제든 달려갔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의 독특한 억양과 음성은 얼마나 부드러웠을 까요? 주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해 주시면 그들의 두려움은 멀리 사라졌을 것입니다. 아이들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여기며 모든 소원, 모든 아픔과 고통, 슬픔을 모두 그에게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마치 현명한 의사처럼 모든 상처에 약을 발라주셨습니다. 그는 다정함과 따스함으로 모든 보살핌을 베푸시고 그들의 고난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해결책을 베푸셨습니다. 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은 분명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갈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슬픔은 분명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직접 뵙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그의 품에 제 머리를 기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시대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셔야 했습니다. 위대한 예언과 목적이 성취되고 응답되어야 했으므로 예수님은 가셔야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그가 고통받으셨고, 무덤에서의 부활을 위해 잠시 동안 잠드셔야 했습니다.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무덤
비어버린 무죄의 흔적"
우리가 언젠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먼저 일어나려면 그는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포로들을 사로잡고, 지옥의 권세를 결박하여 그것들을 하늘 전차로 천국 언덕으로 끌고 가서 하늘 끝에서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7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가셔야만 했습니다. 제자들은 울고 있지만 주님은 가셔야만 했습니다. 보혜사 없이 남겨질 불쌍한 사람들을 슬퍼하십시오. 그렇지만 예수님이 얼마나 친절하게 말씀하셨는지 들어 보십시오 "나는 보혜사 없이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께 기도하면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는 그의 불쌍한 양들을 광야에 홀로 남겨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그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고아로 남겨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비록 그가 그의 마음과 손을 가득 채우는 강력한 사명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가 그의 엄청난 지성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을 감당하셔야 했지만, 비록 우리는 그의 온 영혼이 그가 견뎌야 할 고통에 대한 생각에 집중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정도로 그가 엄청난 고통을 받으셔야 했지만 그는 떠나기 전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주듯 우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셨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것을 볼까요 "내가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낼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분이다. 너희의 슬픔을 위로하고 의심을 걷고 너희의 고통 가운데 위로를 주실 것이며 나를 대신하여 내가 너희와 하던 일을 해나갈 것이다"
제가 성령을 보혜사로 설명드리기 전에 "보혜사"를 다르게 번역한 것에 대하여 한두 가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하고 있는 랭스 성서에서는 번역하지 않은 "파라클레이트"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파라클레이트, 아버지가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 가르치실 것이다" 이것이 원래의 헬라어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보혜사"의 의미 외에 감시자, 관리자나 교사, 강사의 의미도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또 다른 관리자나 교사를 보낼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자주 "지지하다, 옹호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가장 일반적인 단어의 의미는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내가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낼 것이다"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두 가지 번역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내가 또 다른 선생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계실 때 그의 성도들에게 실제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외에는 랍비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다른 이의 발 앞에 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없었던" 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의 발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그가 말씀하십니다 "자 이제 내가 가고 나면 너희는 어디에서 위대한 스승을 만나겠느냐?"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사제가 될 교황을 로마에 세우랴?" "너희의 모든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다룰 교회 협의회를 주랴?"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확실한 위로자며 선생이다. 내가 가면 너희에게 또 다른 선생을 보낼 터인데 그가 말씀을 깨닫게 하고 권위 있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될 것이며 모든 어두운 것은 밝게 할 것이고 모든 의문들을 풀 것이다. 모든 계시의 매듭을 풀고, 그분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게 해 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누구도 성령의 가르침이 아니면 그 무엇도 제대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배움이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심판받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본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파멸을 이끌도록 하나님의 선택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고 말했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표식도 증거도 없었으며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에 행하신 어떤 역사도 없었습니다. 사탄의 학교에서 진리를 배우고 자기 마음대로 붙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자신의 영혼을 혈관에 독을 주입하는 것처럼 만들고 영원한 파멸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한 분의 권위 있는 스승의 가르침을 제외하고 안전하며 전체적으로 진실되게 배울 수 있는 성경의 교리는 없습니다. 아! 저에게 신학 체계나 제도를 말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뛰어난 주석가나 학식 뛰어난 사람들, 오만한 박사들을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위대한 스승인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세요. 우리를 지시하시며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하시는 그분을 말하십시오. 그는 선생님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자랑할 만한 사람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의 간사함과 화려한 말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참 권위를 가지신 그의 자녀들 안에 거하시는 바로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또 다른 번역은 변호자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어떻게 옹호자 또는 변호자로 불려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엄청난 분이고 상담가이며 위대한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이 변호자로 불릴 수 있을 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성령은 십자가의 대적들에 대한 지상의 변호자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펠릭스와 아그립바 앞에서 유창하게 말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들은 어떻게 법정에서 두려움 없이 그들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전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사자처럼 용감하고, 놋쇠보다 단단한 눈썹, 철보다 단단한 마음, 하나님의 언어와 같은 말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것은 변호한 그 사람 당사자가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변호하신 성령 하나님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진심 어린 사역자를 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여러분은 존 번연이 그린 초상화에 감동받으신 적이 없으신가요? 초상화의 인물은 눈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고 가장 좋은 책을 손에 들었으며 그의 입술에는 진리의 법칙들이 쓰여 있습니다. 그의 뒤로는 전 세계가 있고 머리에 황금 면류관을 쓰고 사람들의 간구를 듣고 있는 것처럼 서 있습니다. 누가 존 번연에게 축복받은 좋은 태도를 주고 언제 그 재능은 왔을까요? 대학에서 익혔을까요? 아니면 신학교에서 배웠을까요? 아! 아닙니다. 그는 그것들을 야곱의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 배웠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변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위대한 상담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성령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변호자입니다. 아!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그들을 밝히시기 전까지는 교리를 거부합니다. 진리의 변호자인 우리는 종종 간구함에 있어 아주 부족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우리의 문제를 망쳐버리지만 그 문제들이 성공적인 변호를 보장하고 죄인의 한계를 극복하는 특별한 간구자에게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여러분은 그가 실패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에게 말하는데, 이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깨닫게 하지 않으셨나요? 어떤 사역자도 여러분을 여러분의 독선에서 끄집어낼 수 없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지 않으셨나요? 그가 그리스도의 의에 전하지 않으셨나요? 그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이루어 놓은 것이 지저분한 누더기 임을 선포하지 않으셨나요? 여러분이 여전히 그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있을 때 지옥의 북을 들어 여러분의 귀에 그 소리가 들리도록 하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으로 보도록 하지 않으셨나요? 왕좌가 놓이고 책이 열리며 검이 휘둘러지고, 불타는 지옥과 악마들의 울부짖는 소리들 그리고 심판받은 이들의 영원한 신음소리를 보도록 하지 않으셨나요? 사실 여러분에게 다가올 심판을 확신하도록 하신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요? 그는 영혼 안에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간구하는 위대한 변호자입니다. 은혜의 변호자여 제 마음과 양심을 도우소서! 죄 가운데 있을 때 양심을 깨우사 용감히 말하게 하시고, 잘못이 있다면 즉시로 고백하게 하시며 그릇된 길을 선택하고 혼란 속에 주저앉아 있다면 정의를 찾고 하나님의 시선에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소서.
그런데, 변호자 성령님에 대해서 살펴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문제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제 영혼은 제 안에서 폭발할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내 감정의 뜨거운 파도는 제 핏줄을 넘칠 것만 같습니다. 말하고 싶지만 강렬한 소망은 제 혀를 묶어 버리고, 기도하고 싶지만 내 열정은 오히려 내 언어를 제한합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입니다. 누가 그 탄식을 말하고,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누가 그리스도께서 들으실 수 있도록 천국의 언어로 그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문제들을 그리스도께 간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는 간구자입니다.
성령님을 선생님과 변호자로 설명했으니 이제 우리의 번역인 "보혜사"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보혜사에 대해서 두 번째는 위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위로받은 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I. 첫 번째로 보혜사입니다.
영광스러운 보혜사의 특성에 대해서 제 마음과 여러분 마음속에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각 사람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잘 적용되는지 여러분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혜사의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선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의 보혜사로 특징 지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곤란 중에 있으며 위로를 원할 때 몇몇 행인은 제 슬픔을 듣고 들어와 앉아서 저의 기운을 돋우려 하지만 그는 저를 사랑하지 않고 저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와서 그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시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의 말은 대리석 위의 기름처럼 바위 위의 흩뿌리는 비처럼 제게 다가오지만 제 슬픔을 깨지는 않습니다. 저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제 슬픔은 꿈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자신의 목숨같이 끔찍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와서 저에게 간청한다면 그의 말들은 음악이고 꿀과 같을 것입니다. 그는 제 마음의 문을 여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제 귀는 그의 모든 말을 집중할 것입니다. 천국의 하프 소리와 같은 그의 말, 한 음절 한 음절과 그의 억양까지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언어이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지혜이며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웅변입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감싸주고 상처 입은 이의 눈을 닦아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보혜사이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십니까? 성령의 사랑을 가늠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향한 그의 영혼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가셔서 하늘의 폭이 얼마나 되는지 재보시고 산들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달아보세요. 바다의 물방울을 세어보시고 바닷가 모래의 개수를 세어보세요. 이런 것들이 가능하시다면 그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여러분을 사랑하셨으며, 그는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셨으며, 영원히 사랑하시며 앞으로도 여전히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위로하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 확실합니다. 그리스도인이여 그분이 여러분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여러분을 위로하고 보살펴 주실 수 있도록 마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세요.
그러나, 그는 신실한 보혜사입니다. 사랑은 때때로 충실하지 않기도 합니다. "아아! 뱀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워라"는 말은 충실하지 않은 친구를 나타내죠. 나의 고통을 외면하는 친구를 갖는 것은 담즙보다도 훨씬 씁니다. 내게 고통을 더하는 것은, 내가 잘 나갈 때 나를 사랑했던 이들이 내 고통의 어두운 날들 가운데 저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슬프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실한 보혜사이신 그분은 영원히 사랑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어려움에 처해 있으십니까? 얼마 전 여러분은 그가 사랑이 충만하신 보혜사이심을 알았습니다. 다른 이들이 깨진 수조에 빠졌을 때 여러분은 그의 구함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을 그의 품 안에서 보호하셨고 여러분을 팔에 안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를 신뢰하지 않으십니까?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그는 신실한 보혜사이십니다. 여러분은 "저는 제가 아프면 그분의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요"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분을 찾아와 병든 침상 옆에서 여러분에게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아! 그렇지만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어요. 엎친데 덮치고 끝을 모를 정도의 깊이로 내려가고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그의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아! 그렇지만 저는 죄를 지었어요" 당신이 죄를 지었을 수 있지만 죄는 그의 사랑에서 당신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오 기운 없는 하나님의 자녀여 당신의 오래된 죄의 상처가 당신의 아름다움을 손상시켜서 그 결점 때문에 그가 당신을 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는 당신의 죄를 미리 알고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당신의 악함이 얼마나 쌓일지를 아시면서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와서 당신이 그를 슬퍼하게 했던 것을 고백하세요. 그러면 그는 당신의 방황을 잊으시고 당신을 다시 받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의 입맞춤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며 그의 은혜의 팔이 당신을 안아 주실 것입니다. 그는 신실하십니다. 그를 신뢰하세요. 그는 당신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신뢰하세요. 그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불굴의 보혜사입니다. 저는 종종 위로받았던 사람을 위로하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끔 긴장한 사람을 만나면 "무슨 문제라도 있어?"라고 물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그 문제를 처리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그 문제는 변해 버려서 이미 다른 형태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전략을 바꾸어 다시 시작하지만 문제는 또다시 가버리고 당황스러움만 남습니다. 마치 헤라클레스가 끊임없이 자라는 히드라의 머리를 자를 때의 느낌을 받으면서 절망 가운데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족쇄에 묶고 누구도 족쇄를 풀 수 없도록 열쇠를 버린 위로가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렇게 절망의 족쇄에 묶인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 나는 고통을 겪은 사람이야. 나의 친구여 나 좀 도와줘!" 그리고 그런 사람을 위로하려 할수록, 그들은 모든 마음에서 더 떠나버리고 맙니다. 이전에 그들이 가졌던 즐거움의 무덤 속에서 그들이 방황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위로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우리를 위로하시면 우리는 그 달콤한 위로에서 도망칩니다. 그가 우리에게 치료를 위한 달콤한 약을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고칠 수 있는 놀라운 약을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서 치워 버립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분은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가 위로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로하시겠다고 말하십니다. 그는 하신 말씀을 지키시며 우리의 모든 죄나 의구심에도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얼마나 지혜로운 위로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욥은 위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라고 한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여겼을 것이고 젊은 엘리후가 일어나 말을 할 때는 참 무례한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연장자로서 존경받지 못했나요? 그들은 그의 비통함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나요? 그들이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면 누가 위로할 수 있었나요? 그러나, 그들은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의사가 질병을 잘못 진단하여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그 결과로 환자를 죽이는 것과 같은 좋지 않은 경우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문제를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위로는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그런 지혜롭지 못한 위로자에게 위로를 받는 것보다 문제에 노출된 채 홀로 있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얼마나 지혜로우신지요! 그는 영혼을 가져다 책상 위에 놓은 다음 잠시 동안 분석합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고 어디에 불만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런 다음에 잘라낼 곳에 칼을 대고 상처가 난 곳에는 반창고를 바릅니다. 그는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아! 지혜로우신 성령이여! 저는 모든 위로자에게서 돌아섭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가장 현명한 위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보혜사 성령님이 얼마나 안전했는지에 주목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모든 사람의 위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아주 우울한 청년이 한 명 있습니다. 이 청년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는 교회에 들어가서 강력한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은 은혜로웠고 그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했습니다. 그가 집에 갔을 때 그의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은 그가 뭔가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 존이 미쳤나 봐!"라고 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뭐라고 했을까요? "존을 일주일 동안 시골에 보내서 공을 차게 하거나, 영화를 보게 하는 게 어떨까?" 그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존! 너는 거기에서 어떤 위안을 찾았니? "아니오, 그들은 저를 미치게 했고, 잠시 동안 있었는데 마치 지옥문이 열리고 나를 삼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즐거움들 속에서 어떤 안식을 찾은 거니? "아니오, 그건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아아! 이 얼마나 비참한 위로입니까? 그러나, 세상의 위로가 바로 이렇습니다. 크리스천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도 이런 처방들을 추천할 것입니다. "가서 그렇고 그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집에서 친구들을 좀 만나고, 위안이 그렇고 그런 책들을 읽어봐!" 그렇지만 이런 모습은 이 세상의 가장 안전하지 않은 충고들과 같습니다. 악마는 가끔씩 사람의 영혼에 거짓 위로자로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이 모든 어려움을 만든 것에 대하여 네가 회개할 필요가 있을까? 너는 다른 사람보다 나쁘지 않아!" 영혼으로 하여금 가정을 실제적인 성령의 확신으로 믿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거짓 위로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잠을 자도록 하는 영약에 의해 파괴되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데 "평화, 평화"라는 외침에 폐허가 되어 왔습니다. 급한 경고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에게 편안한 소리만 들린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독사는 꽃바구니에 전달되었습니다. 사람의 파멸은 종종 공정하고 달콤한 말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위로는 안전하며 여러분은 그에게서 참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말씀하게 하시면 그 말씀은 실제가 될 것입니다. 그에게서 위로의 잔을 받으시면 그 잔에는 어떤 찌꺼기나 취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는 안전한 것이기 때문에 잔 바닥까지 모두 마시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행동으로 옮기는 보혜사입니다.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위로합니다. 어떤 위로자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로 "배부르고 따뜻하게 있어"라고 하지만 성령은 예수님께 간청하고 우리에게 약속과 은혜를 주어 우리를 위로합니다. 다시 한번 기억하세요. 그는 항상 성공적인 위로자로 그가 이루실 수 없는 일을 결코 시도하지 않으십니다.
끝으로 그는 항상 계신 보혜사입니다. 여러분이 그를 부를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성령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 가까이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위로가 필요하다면 잊지 마세요 여러분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과 가슴에 말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성령은 고난 가운데 항상 계시는 도움이십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확장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가 없네요.
II. 두 번째는 위로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향에 대하여 큰 실수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실 사역자로 부름 받아 그 사역을 감당할 능력은 없었지만 성령께서 자신에게 계시를 주셨고 자신은 강단에서 설교해야만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제가 여러분을 의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제가 여러분에게 설교하도록 계시를 주지 않으셨으므로 계시를 받을 때까지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저는 많은 광신자들이 성령께서 자신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계시하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말도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령은 이제 그 어떤 새로운 것도 계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이전 것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계시는 종결되었습니다. 더 이상 추가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않으시고 이전 것을 주십니다. 잊히고 우리 기억의 방에 먼지가 쌓이면 그는 잊힌 것을 찾아내고 먼지를 걷어 내시지만 그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교리는 없습니다. 종종 이전 것이 되살아날 뿐입니다. 제 말은 성령의 위로는 새로운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전 것을 다시 말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성경에 숨어있는 보물을 보이시려 새 램프를 가져오십니다. 긴 시간 진리가 쌓여 왔던 강력한 가슴을 풀어헤칩니다. 수많은 자산으로 가득한 비밀의 방을 알려주십니다.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믿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영원히 사는데 필요한 것은 성경에 충분하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므두셀라보다 긴 세월을 산다면 새로운 계시는 전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사신다면 더 이상 필요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나가 내려간 만큼,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할 처럼 큰 고뇌에 빠졌을 지라도 여전히 여러분을 위로할 것들이 성경 안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속삭이지 않으십니까? "성도여 기뻐하세요, 당신을 위해 죽으신 분이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보고 그의 상처와 그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를 주목하세요. 그곳에 당신을 값 주고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안전합니다. 그는 영원한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시며 이 형벌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가 맞은 매들로 당신은 치유를 얻고 그의 상처로 당신의 영혼은 나음을 얻습니다. 주님은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그는 그가 받아들이는 모든 아들을 훈계하시고 징벌하십니다. 당신의 환난 때문에 그의 은혜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행복한 때와 같이 곤경에 처한 때에도 그분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으십시오. 당신의 모든 고통과 당신의 주님이 받으신 고통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받으신 고통의 무게와 당신이 가진 모든 고통의 무게를 잰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성령은 가끔 특별하게 천국의 휘장을 걷고 영혼으로 하여금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당신은 저에게 참 위로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친 홍수처럼 염려가 몰려오고,
슬픔의 폭풍이 몰아 칩니다;
이것을 벗어나 안전하게 나의 집에 닿게 하소서,
나의 주, 나의 하늘, 나의 모든것이여.”
여러분 중의 몇 분은 제가 말했던 천국의 모습을 따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영의 날개를 타고 해와 달과 별을 지나 번개를 뛰어넘어 진주로 만들어진 문으로 들어가서 황금 거리를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환상 속에서 길을 잃고 우리의 핵심 주제 잃고 맙니다.
III. 이제 세 번째는 누가 위로받은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설교 끝에 "결단하세요! 결단!"이라고 외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한 그룹은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고 다른 그룹은 위로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한 그룹은 성령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고 다른 그룹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무엇이 쭉정이고 무엇이 알곡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밤 부디 주께서 몇몇 쭉정이를 그의 알곡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한 가지의 축복이라도 받았다면 다른 모든 축복들도 또한 받으실 것입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경매사로 여기에서 복음을 대량으로 판다면 저는 그 모두를 팔야야 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기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의가 값없이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의롭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나에게 주세요. 의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만약 제가 모든 죄를 포기하고, 마음을 완전히 바꾸며 술 취함과 욕설을 그만두는 것으로 성화를 받았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지만 그런 거룩함은 원치 않습니다. 결국에는 구원받기 원하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영광에 들어가고 싶지만 한두 가지 맹세를 꼭 해야만 하네요" 아닙니다, 그러나 죄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한 가지라도 축복을 받으셨다면 모든 축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복음을 나누지 않으십니다. 저 사람에게는 의로움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성화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용서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거룩함을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모두가 함께 갑니다. 그가 부르신 사람들은 그가 그들을 의롭다 칭하십니다. 그가 의롭다 하신 이들은 성화에 이르게 하시고 성화에 이른 이들은 영화롭게 하십니다. 아! 만약 제가 복음의 위안만을 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파리가 꿀을 찾아 날아오듯이 복음에 달려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프면 사역자를 부릅니다. 여러분의 사역자가 와서 위안이 되는 말을 해주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역자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몇 마디 위안의 말을 던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술이 필요한 곳에 기름을 바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그 자신에 죄를 깨달았으면 합니다. 저는 속량의 은혜를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영혼에 들어가 그가 길을 잃었음을 깨닫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만 믿으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전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를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대신 그들에게 달라진 것은 회칠한 위선자가 된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임종을 맞이 했다가 회복된 2천 명이 그들이 다시 죽을 때 믿는 자였는지를 추적한 한 도시 선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2천 명이 회복된 후에 몇 명이나 크리스천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두 명이 아닙니다. 2천 명입니다. 그 선교사는 그들 중에 단 한 사람 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고, 그의 친구들은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위로받을 권리가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침입자일 뿐임이 무섭지 않으십니까? 오 주여! 위로받을 권리가 없다면 위로를 막아 주소서! 여러분은 어떤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죄를 깨달았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예수님의 발아래 겸손해졌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피난처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를 홀로 바라보도록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위로의 권리가 없습니다. 일부만 취하지 마십시오. 성령은 보혜사 이전에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께 무언가를 받을 수 있기 이전에 성령의 다른 사역을 가져야만 합니다.
자 이제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다쟁이의 말을 한번 더 들으셨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것이었죠? 바로 보혜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자리를 뜨시기 전에 여러분에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보혜사에 대해서 무엇을 아십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예배당의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이 엄숙한 질문이 여러분의 영혼 관통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보혜사에 대해서 무엇을 아십니까? "오! 불쌍한 영혼이여 만약 당신이 보혜사를 모르신다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심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보혜사를 모르신다면, 다음 세상의 심판자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지옥의 영원한 불에서 저주를 받으라"라고 외치는 심판자입니다. 휫필드는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예레미야 22: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찌니라"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산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복음을 경시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보혜사를 경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만난 이후로 몇몇은 이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안식처에서 다시 만나기 전에 여기에 있는 누군가는 하늘의 영광중에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심판으로 떨어질 것인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의 영혼이 답하게 하십시오. 오늘 밤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있을까요? 천국일까요? 지옥일까요? 아! 여러분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양심에 충실하십시오. 하나님 앞이라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있을까 봐 두렵고 떨립니다" 잠시만 들어보세요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낙심한 죄인, 지옥과 같은 죄인, 악마의 조난자, 타락한 사람, 방탕한 사람, 매춘부, 강도, 도둑, 바람둥이, 간음자, 술꾼, 욕쟁일, 안식일 파괴자도 들으세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여러분만이 아니고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여기서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는 장벽이 아니며 여러분의 죄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사탄처럼 검고 악마만큼이나 더럽더라도 그 누구나 오늘 밤 믿는 다면 모든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모든 범죄는 지워질 것이며 모든 부정은 잊힐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안전하고도 확실하게 천국에 서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영광스러운 복음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갖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설교자를 통해서 진리가 밝히 보여졌으나
우리는 하늘 왕좌에 계신
위대한 스승을 바랍니다.
적용은 오로지 주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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