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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 내에서 인간 관계로 받는 상처와 고통이 교회 밖 세상에서의 인간 관계로 받는 상처와 고통보다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필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가 겉으로 보기에는 경건해 보일 지는 모르겠으나 의외로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무색할 정도의 "갈등과 다툼"의 근원에는 나름의 소신(所信)과 기대(期待)가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문제는 소신과 기대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 밥을 먹듯이 성경을 대하며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성장하고 있지 않은 소신은 그저 "똥고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상태가 아닌 소신은 그저 "자기 주장"일 뿐입니다. 기대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기대가 하나님의 뜻에 방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그릇된 생각에 방향성이 있다면 기대는 배신과 분노로 쉽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있는 소신과 기대로 뭉친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면? 갈등과 다툼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성경에서도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라고 표현하고, 이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할 정도로 심한 갈등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의 갈등의 원인은 할례와 구원을 연계한 유대인들의 "소신"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도들이 나서서 이방인들에게 새로운 짐을 지우지 말고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이 과정을 돌아보면서 교회 공동체에서의 갈등 회복에 꼭 필요한 사항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 문제 제기와 토론

바울과 바나바의 소신과 유대인의 소신이 부딛히며 갈등과 치열한 토론은 있었지만 파괴적이며 감정적인 대응을 발견할 수는 없었고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의견을 청취하자는 "합의"를 이끌어 냅니다.

토론과 문제 제기를 충분히 보장하여 소신이 부딛히는 갈등은 있었지만 새롭게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짐을 씌우지 않고 복음안에서 본질적인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긍적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 잃지 않은 하나됨

갈등의 당사자인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유대인 일부가 함께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면서 베니게, 사마리아 등지에서 이방인의 회심에 대해 나누고 기쁨을 같이하는 모습은 갈등 조차도 그저 하나의 소소한 문제일 뿐이지 하나됨을 홰손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를 향한 마음으로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는 갈등은 그저 소소한 하나의 문제일 뿐입니다. 공동체에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기쁨이 있는가? 교회 핵심 사역자들이 영혼 구원의 일선 현장에 직접 나서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교회 공동체는 끊임없이 비본질적인 것으로 늘 갈등 속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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