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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1월 7일 주일 저녁

■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사우스 워크 (Southwark)에 있는 뉴 파크 스트리트 채플 (New Park Street Chapel)

■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 설교 제목 :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 THE REMEMBRANCE OF CHRIST

■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 설교 내용 :

“고린도전서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말씀을 들으면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잊을 수도 있는 듯합니다. 본문은 그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잊을 수도 있음과 그것을 기억하도록 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신뢰할 수 없고, 그 특성상 피상적이며 기억은 본래 변하는 것이라는 두려운 가정이 없다면 이러한 사랑의 권면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의 가정이 아닙니다. 아아! 이것은 우리의 경험상 가능성이 아니라 슬픈 사실임이 잘 확인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문제를 믿는 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너무 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구속자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는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한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아들을 완전히 잊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귀로 듣는 것이 충격적이라면, 아아! 이 사실은 너무 명백해서 눈으로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그를 잃어버리셨나요?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의 피를 쏟으신 그를 잃어버리셨나요? 죽기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신 그를 잃어버리셨나요?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예, 가능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슬프게도 양심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외의 그 어떠한 것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왕자에 있을 대상은 바로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기억이 머물러 있을 것이라 믿고 마음을 두지 않는 그곳에 알려지지 않은 침입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망각의 걸음으로 더럽혀진 장소, 기억이 거의 돌아보지 않는 그곳입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크리스천의 양심에게 묻습니다. 제가 언급한 사실들을 부정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잊어버린 여러분 자신을 찾지 않으 셨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피조물에게 빼앗기고 여러분의 사랑이 있어야 할 그분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시선이 한결같이 십자가를 주목해야 할 때 여러분의 주의는 세상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세상일, 끝없는 이 땅의 소음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영혼들을 빼앗아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슬프게도 우리가 그리스도 아닌 것을 기억할 수 있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리스도는 너무나 쉽게 잊는다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기억은 독초를 키우지만 샤론의 장미는 시들게 합니다.

이 원인은 아주 분명한데 한두 가지의 사실에 기초합니다. 우리는 거듭난 존재로서 여전히 우리 안에는 부패와 죽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죄와 사망의 옛 아담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그를 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순수하게 새롭게 태어난 존재라면 우리가 사랑하는 그의 이름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완전히 거듭난 존재라면 우리는 앉아서 우리의 구원자가 하신일과 그가 받으신 고통을 묵상할 것입니다. 그는 영광스럽게도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방황하는 사랑은 결코 빗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대상을 주목하여 영원히 못 박혀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주님의 죽음과 고통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아 우리는 마음속에 벌레, 해충의 거처,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약을 푼 샘물과도 같은 욕정과 나쁜 상상들 그리고 강한 사욕들이 불순한 물줄기를 내보냅니다. 저는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할 수 만 있다면 제 몸에서 그 마음을 짜내어 아주 먼 곳으로 던져 버리길 원하고 있음을 아십니다. 저는 영혼이 있지만 부정한 새들의 동굴과도 같습니다. 용이 나타나고, 올빼미가 모이며 모든 사악한 짐승들이 사는 그런 곳입니다. 비교할 것이 없을 만큼 사악한 마음이고 앞의 모든 것보다도 기만적이며, 절망적일 만큼 사악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잊는 원인입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다른 곳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시선을 끄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잊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 주위에 있더라도 예수님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있더라도 주님과 무엇을 비교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대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십니까? 태양은 달과 비교하면 그 크기가 395배에 이릅니다. 그러나, 바다의 물결에 미치는 영향은 태양보다 달이 더 큽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달이 더 가까우니까 더 큰 인력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은 땅에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가 하늘에 계신 영광의 그리스도보다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손에 잡히는 금빛 땅, 화염과 같은 명성, 박수갈채, 번성하는 사업, 내 집, 내 가정은 하늘의 모든 영광보다도 나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환상 그 자체보다는 단순히 하늘은 멀고 땅은 가깝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날개에 이끌려 하늘로 올려지는 행복한 날이 오면 저는 내 주의 곁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의 미소가 비추는 빛을 받으며 그의 인자한 얼굴에서 나오는 말할 수 없는 광채에 감격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잊는 원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합시다. 우리가 우리 주님을 많이 소홀히 했음을 슬퍼합시다. 그리고 거룩한 음성이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을 쫓아내도록 그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고린도전서 11:24...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우리는 우선 축복받은 기억의 대상에 대하여 말할 것입니다. 둘째는 이 사람을 기억함으로 얻게 되는 유익을 말하고, 셋째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에 있는 우리의 기억에 대한 은혜로운 도움을 다루고 끝으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에 있는 온화한 명령을 말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 입술과 성도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I. 우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에 있는 영광스럽고 소중한 기억의 대상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억의 금고에 간직해야 할 수많은 보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태초부터 하나님께 받은 선택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끔찍한 구렁텅이에서 건져진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유효적 소명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든 일들이 그들을 위해 행해졌고, 모든 자비가 그들에게 베풀어진 특별한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귀중한 향료로 그들의 영혼을 채워야 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하나님의 선물 위에 영원한 기억으로 간직할 만한 분입니다. 제가 말한 것이 행위나 행동을 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저라면 금 액자에 초상화를 넣어 영혼의 거실에 걸어 둘 만한 그런 분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정복자 메시아의 모든 행위에 대한 진지한 학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의 삶에 대하여 정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억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모든 성령의 전에 비추어져야 할 것은 그의 형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본 적이 없는데 그리스도의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가 어떻게 생기셨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많은 슬픔과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자비의 여정을 걸었던 그의 두 발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사랑으로 내미셨던 두 손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대중의 귀를 사로잡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던 천상의 말씀을 하시던 그의 놀라운 억양을 우리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입술에 항상 있던 온화한 미소도, 바리새인을 향하여 저주하실 때의 화난 인상도 그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난이나 고통 속에 있는 그를 우리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도 여러분이 외모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조차도 그가 육체를 따라 그리스도를 알았으나 그 이후로는 그가 육체를 따라서는 그리스도를 더 이상 알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을 모르십니까? 영화롭게 된 주님에 대한 사도들의 판단에 외모, 인종, 혈통, 가난함과 겸손한 복장 등은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서는 그를 모르지만, 성령을 따라서는 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베드로, 바울, 요한, 야고보나 한때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그분과 나란히 걷거나 그분의 품에 머리를 두었던 사람들과 같이 지금도 예수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광 가운데 승천하셨지만, 기억은 주님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억은 거리를 없애고 시간을 뛰어넘습니다.

아, 5분 동안 모두 함께 예수님을 기억해 보시지요. 요단강에 내려가셔서 세례를 받으시는 그를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음성이 들렸죠.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물속으로 들어가시는 그를 주목하세요. 분명 하나님을 담고 있는 물은 자신의 하나님을 담는 영광에 설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잠시 동안 그 물결 가운데 잠이 드셨습니다. 세례의 무덤을 신성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례의 무덤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그리스도 함께 장사된 것입니다. 이제 세례 받으신 후 바로 가셨던 광야에 계신 그를 기억해 보겠습니다. 저는 종종 사막에 계신 그 장면을 생각하곤 합니다. 피곤하고 지친 그리스도는 아마 어떤 오래된 나무의 울퉁 불퉁한 뿌리에 앉아 계셨을 것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그렇게 그가 가장 약한 시점에 악한 영이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늙은 순례자의 모습으로 왔을 거 같습니다. 돌을 들고 이렇게 말했죠. "마태복음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교활한 미소와 악의에 찬 눈빛을 가진 그를 저는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을 들고 말하죠 "만일", 이 "만일"은 참 신성모독적인 인데 아무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너와 내가 먹을 음식이 되게 하라. 우리는 모두 굶주렸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 될 것이다. 너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그냥 말만 하면 하늘의 빵과 같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같이 먹고 우리는 영원한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부드러운 말씀이신지요!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리스도께서는 정말로 훌륭하게 유혹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그곳에 전투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지옥의 최강자 사자와 유다 지파의 위대한 사자가 일대일로 함께 싸우는 결투였습니다. 엄청난 광경입니다! 천사들은 마치 노인들이 유명한 전사 간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앉아 있는 것처럼 이 광경을 주시하기 위해 둘러서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힘을 끌어 모아 여자의 후손을 전복시킬지도 모르는 이 거대한 레슬링에 온 힘을 집중합니다! 그러나 예수께는 대결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추락을 주었고 정복자 이상의 것으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저는 다음에 제가 사탄과 싸우게 되면 예수님께서 사막에서 벌이신 분투를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다음에 악마의 공격으로 혼란스러울 때면, 이미 그리고 영원히 승리하신 그분, 위대한 팔로 악마를 꺾어 버리신 그를 바라볼 것입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이 모든 일상의 유혹과 계속된 시련, 삶 전체를 통해 그가 걸어가셨던 싸움 속의 계신 주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그리스도의 죽음은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그리도 그의 삶도 그랬습니다. 노래로 열렸지만, "다 이루었다!"라는 부르짖음으로 닫혔습니다. 구유에서 시작했지만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아! 슬픈 삶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를 버렸을 때, 그의 적들이 길을 지나는 그를 향하여 눈살을 찌푸릴 때, 그를 비방하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시고 질투에 찬 더러운 입으로 비방당하실 때, 거짓 증인들이 그가 악마며 미쳤고 술주정뱅이에 술고래라고 말할 때, 그의 의로운 영혼이 악한 이들에게 곤란을 겪을 때의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오, 하나님의 아들이여 저는 반드시 당신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사시면서 겪었던 수년간의 수고와 고통을 생각하면 당신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그리스도를 항상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장소를 아십니까? 그것은 올리브가 가득한 그늘진 정원입니다. 바로 그 장소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그곳으로 데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성령께서 저희를 데려다가 예루살렘 산 근처에 강하게 내려놓으신다면 아마도 저는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왕께서 직접 지나시던 기드론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올리브 나무들도 볼 것입니다. 아마도 올리브 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든 세 제자를 볼 것입니다. 아!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핏방울을 봅니다! 내 영혼아 잠시 이곳에 머물러 있어라. 그 핏방울들을 여러분은 붙잡으셨습니까? 그것들을 꼭 마음에 두십시오. 그것은 상처에서난 피가 아닙니다. 상처 입지 않은 인자의 피입니다. 내 영혼아 고뇌와 땀으로 무릎 꿇으신 그를 그려보라. 하나님과 씨름하며 하나님과 함께 고민하느라 땀을 흐리신 그를 그려보라.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오 겟세마네여! 당신의 그늘은 내 영혼에 깊은 엄숙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아! 주의 핏방울! 그것은 분명 비극의 최절정입니다. 그것은 이 놀라운 희생의 위대한 마지막 행동입니다. 그것보다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것보다 더한 자비의 행위가 있을까요?  오, 제가 말씀의 능력이 있다면 저는 그곳에 있는 모든 핏방울에 혀를 내밀 것입니다. 그 핏방울들은 여러분의 언어와 냉담을 넘어서 가슴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불타오르는 기억으로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겟세마네는 안녕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러분을 여전히 "슬픔의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는 장소로 이끌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빌라도의 마당으로 데리고 가서 쇠사슬 장갑으로 치고 주먹으로 때리는 잔악한 군인들의 조롱을 견디시고 계시는 그를 보게 할 것입니다. 놀리고, 침 뱉고, 머리카락을 뽑는 등 온갖 잔악한 짓을 했습니다. 오, 여러분은 옷이 벗겨진, 악마 같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된 순교의 왕을 그리실 수 없습니까? 여러분은 면류관의 가시들이 마치 칼처럼 그의 머리를 찌르는 것을 보지 않으십니까? 그의 찢어진 어깨와 피나는 곳에서 드러난 흰 뼈를 보지 않으십니까? 오, 하나님의 아들이여! 저는 당신이 매 맞고 채찍질당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것을 제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제 기억은 빌라도 보다 더 생생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렇게 외치지 않았습니까? 에케 호모! - "이 사람을 보라".

이제 갈보리의 안타까운 장면을 끝냅니다. 그의 못 박힌 손과 옆구리에 흐르는 피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리쬐는 태양과 완전한 어둠을 생각해 보십시오. 타는듯한 열기와 갈증을 기억해 보십시오. 죽음을 앞둔 그의 신음 소리와 "다 이루었다!" 하는 죽음의 외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 그리스도를 잊지 맙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기억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가지실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부주의한 손 때문에 값진 진주를 망각의 바다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렇지만, 저는 이 주제를 마치기에 앞서 한 가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중에는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잘 수행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종종 읽거나 예전에 그것을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분들은 여전히 자신 안에 그를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에는 은혜의 택하심을 입은 선한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아마도 저는 여러분에게 오래된 헛간,  산 울타리, 오두막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여러분이 런던에 산다면 다락방, 몇몇 어두운 골목이나 거리등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장소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길을 잃다 들어간 예배당 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가 저를 처음 만났던 그 자리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내 영혼에 사랑으로 속삭이셨지요. 그가 나를 사셨다고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만나셨던,
그곳, 그 장소를 마음에 두세요!”

그렇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제 영혼에 말씀하기 시작하시고 저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던 그곳에 성전을 짓고 기념물을 세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분에게 자신을 한번 이상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주께서 여러분에게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붙잡으라"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나타내셨던 여러 장소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전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기억할 수 있는 몇몇 장소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들은 분명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와서,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을 실행할 것입니다. 그의 사랑의 임재, 그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말들, 당신에 대한 온화한 미소, 그가 당신의 영혼과 소통하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밤 은혜의 능력이 주시는 기억을 따라 가능한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여 그의 모든 축복을 잊지 말지어다"


II. 축복받은 우리 기억의 대상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두 번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기억이 주는 유익을 조금 나눌까 합니다.


사랑은 절대로 "쿠이 보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부터 어떤 이익이 있는지 결코 묻지 않습니다. 그 본성에서 나오는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피조물에 대한 사랑 그 외에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그의 아이를 사랑한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듯이 크리스천은 그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주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본성상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누가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공정함 가운데 가장 공정하며, 수많은 사랑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그 누가 완전한 왕, 아름다움의 거울,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며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의 유익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것들은  쿠이 보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부터 어떤 이익이 있는지 결코 묻지 않습니다. 그 본성에서 나오는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피조물에 대한 사랑 그 외에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그의 아이를 사랑한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듯이 크리스천은 그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주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본성상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누가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공정함 가운데 가장 공정하며, 수많은 사랑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그 누가 완전한 왕, 아름다움의 거울,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며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의 유익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것들은 적지도 작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여러분 죄의 짐에 놓여 있을 때 예수를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희망을 줄 것입니다. 오늘 밤 여기에서 몇몇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불쌍한 한 피조물이 있습니다. 그를 보십시오. 지난달부터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거의 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라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거듭거듭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했었지만, 성경을 읽으면 이내 내 마음은  '모든 것보다 기만적이고 절망적으로 사악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진창에 빠지고 맙니다. 제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영혼은 죽을 것'이라고 하셨으므로 저는 분명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 죽을 것이고 심판받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여러분은 어떻게 위로해 주겠습니까? 어떤 부드러운 말로 그에게 평안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압니다! 저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엄청난 불행의 빚을 이미 지불하신 한 분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술주정뱅이든 욕쟁이든 그 무엇이었든 관계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완전한 속죄를 수행하신 한 분이 계심을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를 믿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그를 기억하십시오. 불쌍하게 죽어가고 희망 없는 피조물이 즐거움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믿고 변화한 그 남자를 보십시오 기쁨에 넘쳐 이렇게 외칩니다. "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여러분 모두 이리 와 보세요. 그가 제 영혼에 하신 일을 말씀 드릴 께요."

“그것을 죄인들에게 말하라, 말하라,
나는 , 나는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주께서는 두꺼운 구름과 같은 우리의 죄들을 지워 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데서 오는 유익 중 한 가지입니다. 죄의 짐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에게 아직 주의 긍휼 하심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이제 저는 또 다른 인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때문에 핍박받고 학대당했지만 더 이상 그것들을 견딜 수 없습니다.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놀림받고 비웃음에 멸시뿐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죠, 사람은 사람일 뿐입니다. 제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이 났습니다. 제게 인내하라는 충고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 되고 만 특별한 상황에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습니다. 적들은 저를 비방하고 있는데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이 불쌍한 사람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그에게 인내를 어떻게 줄 수 있을까요? 그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그가 자신에 대하여 말해야 하는 것들은 모두 들었습니다. 큰 시험 아래 있는 그를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요? 우리가 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면 친구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 주기를 바라십니까? 그에게 다른 사람들도 당신만큼 견뎠다고 말하시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잔혹한 위로자들 이군요." 그렇지만,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형제여, 형제가 핍박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하세요.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내 형제여! 그를 생각하세요. 그는 죽으실 때 살인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죠.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여러분 모두가 감당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처럼 그것과 다시 대면하십시오. 여러분의 인내를 잃지 마십시오. 매일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그를 여러분의 눈앞에 모시고 여러분의 모토로 삼으십시오. 이제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세요. "핍박아 반갑다! 부끄러움도 환영하고! 예수를 위한 수치는 내 영광이 될 것이고, 경멸은 나의 가장 높은 영광이 될 거야"


‘이제, 사랑을 위하여 나는 그의 이름을 간직합니다,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해를 헤아립니다,
나는 내 모든 부끄러움을 경멸하고,
내 영광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또 다른 유익은 핍박 가운데서 인내를 우리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끝까지 견딜 수 있도록 허리를 묶어 주는 허리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여러 가지 유익들을 다룬다면 여러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가 받을 한두 가지의 축복만 간단하게 살펴볼까 합니다. 그리스도를 기억함은 우리에게 시험을 이기는 힘을 줍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심각한 시험의 과정을 거칠 때 얼마간의 시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엄청나게 깊은 물을 다녔던 배는 없지만 종종 폭풍우와 싸워야만 합니다. 보잘것없는 배는 미친 파도 위에서 위아래로 요동칩니다. 이 파도에서 저 파도로 던져지고 심지어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바람마저 비웃습니다. 늙은 바다는 손가락으로 배를 잡고 이리 저리로 흔들어 댑니다. 선원들은 두려움에 떨며 얼마나 부르짖었는지요! 여러분은 이 바다를 잠잠하게 하는 방법을 아십니까? 여러분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강력한 한 단어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게 하세요. 약해진 마음이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이 지속되게 하세요. 그러면 예수께서 지배하시므로 배는 바람을 타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은 그의 자녀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바람을 잡아 묶으실 것이기 때문에 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험을 이기는 힘을 주고 폭풍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이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병상에 있는 여러분에게 어떤 위로를 줄까요? 여러분이 기다리는 것을 인내하도록, 버터야 하는 고통이라면 견디어 내도록 돕습니다. 여러분은 통상 건강할 때보다 아플 때 더 많은 소망을 갖게 되는데 그렇게 그는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고, 여러분은 고통 가운데서 축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신맛을 느끼는 대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모든 시험과 어려울 가운데서 달콤한 꿀을 찾을 것입니다. "욥기 35:10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그러나 단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유익에만 집중한다면 여러분은 무엇보다 어디에서 유익을 받을지 알고 있습니까? 내가 그를 기억하기를 정말 잘했다며 기뻐할 그 장소를 아시나요? 제가 여러분을 그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조용히 들어보세요! 여러분은 위층의 외로운 방으로 가고 있습니다. 커튼은 내려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울며 서 있습니다. 침대 주위로 아이들이 있고 친구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누워있는 사람 보이시죠?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눈도 손도 여러분 것인지 한번 보세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곧 거기에 갈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십니까? 죽음을 맞아 눈은 감기 우고 손은 뻣뻣해져 움직임이 없으며 입술은 건조하고 말랐습니다. 그 입술 사이로 물방울을 넣습니다. 그것들은 공기 중에서 굳어 죽어가는 입술에서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여러분의 말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하지 못할 때의 그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침대에 똑바로 누워있는 그를 보십시오. 그의 두 눈이 움직이는 것을 보십니까? 그의 친구들이 둘러 서 있고, 그가 보는 것을 물어봅니다. 그는 감정을 억 누릅니다. 그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의 눈앞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시작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보이는 것 같은데 내가 보는 것은 뭐지? 이제 끝이야? 아 한숨! 영혼은 떠나갔고 몸만 남았습니다. 그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는 타오르는 심판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왕좌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주목했고, 그를 치는 데 사용할 칼을 공중에 휘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곧 그곳에 갈 것입니다. 이 그림은 바로 여러분의 그림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몇 년 안에, 아니 며칠 안에 있을 곳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해 줄까요? 오, 여러분은 곤경 가운데서 미소 지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그려 보겠습니다. 그들은 그의 뒤에 베개를 놓습니다. 그는 침대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잘 있어! 나를 위해 울지 마! 좋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거야.”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당부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시고, 저를 행복의 땅으로 이끌어 갈 준비를 해주세요"  이제 그는 집을 정리했습니다. 끝났습니다. 죽음에 임박하여 지팡이 의지하여 집을 정리했던 늙은 야곱과 같은 그를 주목하세요. 그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보십시오! 그가 두 손으로 박수를 치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둥글게 모입니다. 그는 "이겼다!"라고 속삭입니다. 조금 더 힘을 모아 "이겼다!"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마지막 숨을 내쉬며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서 이겼다!"라고 말하고는 죽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 중 하나입니다. 축복받은 평온함 가운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III. 우리는 이제 세 번째로 기억을 위한 달콤한 음식을 다룰까 합니다.


학교에서는 "기억을 위한 도움들"이라 불리는 어떤 책을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경우 그 책은 저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그 도구들은 여행자의 팔 아래 있는 지팡이 묶음과 같았습니다. 사실, 걸으면서 하나씩 사용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것 까지 운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자께서는 우리의 선생님들보다 현명하시며,  그를 기억하는 것은 사실이고 기억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그의 사랑의 상징들은 명백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달콤하게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성스러운 성만찬의 신비에 주목하십시오.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입니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여러 감각에 대한 자극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눈, 손, 입이 즐거운 일을 찾습니다. 빵은 입안으로 들어가며 가장 강력한 기억 중 하나인 맛을 느끼는 감각에 작용합니다. 포도주는 조금씩 마시는데  우리는 이 행위를 통해서 영혼을 가로막고 있는 감각들을 묵상의 마음으로 끌어올려 줌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의식이 주는 영향의 대부분은 그 단순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떡을 나누고 포도주를 따르는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의식입니까.  포도주를 담는 성배라 불리는 것도, 떡을 담는 성반이라 불리는 것도, 성찬식의 빵인 성체라 불리는 것도 없습니다. 여기에 기억에 부담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간단한 떡과 포도주만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떡을 먹었고 포도주 마신 것을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기억도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상징들이 내포하고 있는 엄청난 의미들을 다시 한번 주목하십시오. 떡을 나누는 것은 여러분의 구주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떡은 음식인 그의 몸입니다. 포도를 짜서 만든 포도주는 하나님의 공의 발에 밟힌 여러분의 구주입니다. 그의 피는 여러분의 달콤한 포도주이고 여러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는 예수의 피입니다. 여러분을 강하게 하고 활력 있게 하는 포도주는 위대한 어린양의 피입니다. 오! 오늘 밤 저 떡과 포도주가 여러분이 갈보리에서 죽으신 사랑하는 그분을 기억하는데 달콤하고 축복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새끼 암양처럼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의 주인이 주시는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셔야 합니다. 여러분에 떡과 포도주를 주는 그 손을 기억하세요.

그러나 여기서 그리스도를 잘 기억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은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저는 주의 만찬 전에 반드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투굿 여사처럼 주일날의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일주일 전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가능하다면 토요일에 한 시간 정도 그리스도와 그의 열정을 묵상하며 주의 만찬을 경건하게 준비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특별히 안식일 오후라면 우리는 앉아서 집중적으로 그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조롱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장면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아주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오늘 밤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 없이 떡을 먹고 그의 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며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은 아주 나쁜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대체 무엇을 먹고 마시는 것일까요?" 스스로를 지옥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두시고,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을 하지 마세요! 지구 상의 모든 신성한 것들 중에서 가장 엄숙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각자의 팔에서 피를 뽑아 다 같이 마시고 함께 뭉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인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끔찍한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참 엄숙하다 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정맥에서 나오는 피를 마시고, 그의 사랑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개천에 목을 축이는 것입니다. 엄숙하지 않습니까? 누가 그것을 하찮게 여기십니까? 교회에 가서 은화 한 닢에 가져갈 그런 것입니까? 자선단체를 위해 와서 함께하는 것입니까? 그런 것과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끔찍한 신성 모독입니다!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식을 조롱하는 저주받은 사람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요청드립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만큼 그것을 아예 하지 마십시오! 오 주여, 남자와 여자들로 거듭나게 하시며, 제사장의 심판대에 들어가지 않게 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진노를 다시 보내지 마소서. 


IV. 이제 메시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여기 부드러운 명령이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명령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까? "나를"에 신뢰를 두고 있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네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오늘 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저기 문에서 여러분을 보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 몇몇이 집에 돌아가시면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네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했었지!"  그가 여전히 구경꾼처럼 앉아 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앉으며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했었지!"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니?" "예,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여, 제가 사랑하는 것을 당신은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기로 내려가서 저 빵을 먹고, 저 포도주를 마셔라" "그렇지만, 주님 저는 그런 것을 싫어합니다. 저 교회에 함께 하려면 세례도 받아야 하고, 세례 받다 감기 걸리는 것도 걱정되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부담이 됩니다. 제 생각에 교회에서는 몇 가지 질문들을 할 것 같은데 저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묻습니다. "대체 뭐가? 이것이 네가 나를 사랑하는 전부인가? 이것이 너의 하나님에 대한 애정의 전부란 말인가? 오, 너의 구주인 나에게 이렇게 냉담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이 정도만 너를 사랑했다면 너는 지옥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정도가 내 사랑의 전부라면 나는 너를 위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사랑에는 큰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 이것이 나에 대한 네 감사의 전부인가?"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거 뭐가 정말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는데도 멀리 떨어져 있다면 부끄럽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이라면 이 식탁에 편하게 오시도록 초청합니다. 교회와 하나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 여러분이 가지실 특권을 여러분 스스로 부정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죄악 된 게으름 가운데 이 의식을 대하고 있다면 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가복음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오, 십자가의 군병들이여 겁쟁이가 되지 맙시다!

여러분이 실수하지 않도록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이 주의 만찬 의식에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릴 때 잠시라도 그 만찬 의식 속에 어떤 구원에 관련된 것이 있다고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는 세례 의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만찬 의식도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떡 조각을 먹는다고 구원을 받고, 포도주를 마신다고 구원을 받는다고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상식적으로 토의 대상으로 삼기에도 너무나 터무니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받은 고통과 고난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것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전적으로 삶을 맡겨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죄인이여, 그대는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아십니까? 만약에 제가 다음 세상에서 그대를 만난다면 그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저녁,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천국 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럼 잘 들어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의 이름과 공의를 신뢰하며 그의 십자가에서 피할 곳을 찾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세요 그러면 율법의 보응과 지옥의 위협을 넘어서 그대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을 신뢰한다면 여러분이 사는 만큼 확실히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 이제 저희는 주의 만찬 앞에 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주의 영에 의지하여 주의 찬송을 부르게 하소서.


“당신과 당신의 모든 고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당신의 모든 사랑도?—그렇습니다,
맥박이나 숨이 남아 있는 한,
저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실패하는 입술이 어두워지고 
생각과 기억이 물러가고 
당신의 왕국에서 당신이 오게 되면,
예수여 저를 기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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