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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자 : 1855년 1월 7일 주일 아침

 설교 장소 : 영국 런던 사우스 워크 (Southwark)에 있는 뉴 파크 스트리트 채플 (New Park Street Chapel)

 설교자 : THE REV. C. H. SPURGEON

 설교 제목 : 하나님의 불변성, THE IMMUTABILITY OF GOD, 

 본문 참조 사이트 : https://www.spurgeongems.org

 설교 내용 :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누군가는 "인류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지만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 가장 고상한 사색과 가장 강력한 철학은 그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 본질, 인격, 일, 행적과 존재입니다. 신성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뭔가 확연히 개선된 점이 있습니다. 이 주제는 너무도 광대해서 우리의 모든 생각은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고, 너무 깊어서 우리의 자존심은 그 무한함에 빠져버립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붙잡을 있는 다른 주제들의 경우에는 그 안에서 나름 자기 만족감을 느끼면서 "보라, 나는 현명하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다림줄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우리의 세밀한 눈으로도 그 높이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이 학문 중의 학문을 만나게 되면 "나는 단지 과거의 존재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엄숙함 외침과 함께 우리는 들나귀 새끼와 같은 허망한 사람이 지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이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보다 더 마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깨달아야만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 주는 얼마나 무한하신지요, 가치 없는 벌레와 같은 저희는 무엇인지요!”

주제가 마음을 겸손하게 하지만 또한 마음을 넓히기도 합니다. 자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 좁은 지구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람보다 큰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는 딱정벌레를 자세히 분석하고, 파리를 해부하며, 곤충과 동물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을 붙여가며 정리하는 능력을 자랑하는 자연과학자 일 수 있습니다.  그는 메가테리움과 플레시오사우르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멸종 동물을 말할 수 있는 지질학자 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과학이 무엇이든 그의 마음을 고상하게 하고 크게 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그럴 수 있지만, 결국 영혼을 확장시키는 가장 훌륭한 학문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그리고 영광스러운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위대한 주제를 독실하고도 진지하며 지속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 그렇게 지성을 확대한 것도 없었고 사람의 영혼 전체를 크게 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고 확대시키는 것으로 이 주제는 분명히 위로가 됩니다.


오! 그리스도를 주목하면 모든 상처에 대한 치유가 있으며, 아버지 하나님을 묵상함 가운데 모든 슬픔에 대한 평안이 있으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 모든 아픔에 대한 위로가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까? 당신의 필요를 채우고 싶습니까? 하나님 본성의 가장 깊은 바다에 여러분 자신을 던지십시오. 그의 광대함 속에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편안하고, 상쾌하며, 활기찬 자리로부터 앞으로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깊은 묵상만큼 영혼을 그렇게 위로할 수 있는 것, 슬픔과 아픔의 파도를 그렇게 잔잔하게 할 수 있는 것, 시련의 바람에 그렇게 평안을 말할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을 이 주제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여호와의 불변성이라는 한 가지 관점을 제시할 것입니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아침에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둘째는 이 영광스러운 "야곱의 자손들"이란 속성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사람들, 셋째는 그들이 그렇게 얻은 유익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들을 우리 자신에게 말합니다.


Ⅰ. 먼저 우리를 하나님의 불변성이란 원리 앞에 두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저는 상세한 설명을 하거나 오히려 생각의 범위를 넓히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 후에 그 진실을 증명하기 위한 몇 가지 주장을 제기할 것입니다.

1. 저는 일단 하나님은 여호와 시며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본성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그분이 어떤 물질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존재이며 실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 부르며 그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의 본질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마치 왕관처럼 하얀 눈이 쌓여 있던 산들은 여름이면 옛 왕관을 벗어 버리듯 눈은 녹아 계곡을 따라 강으로 흘러가고, 폭풍 구름은 그들에게 또 다른 왕관을 씌어 줍니다. 엄청난 물결을 가진 대양은 파도에 태양빛이 닿으면 수분을 잃고, 안갯속의 수분을 하늘로 빼앗아 갑니다. 태양 조차도 영원히 불타는 표면을 보충하기 위해 무한한 전능자로부터 신선한 연료를 받아 갑니다. 사람은 특히, 그 몸에 있어 항상 혁명을 겪고 있습니다. 아마도 몇 년 전에 내 몸안에 있던 단일 세포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활동에 의해 마모되고 부딪힘이나 마찰에 의해 없어지기도 합니다. 몸안에 새로운 세포들이 지속적으로 생성되어 보충되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람 몸의 본질은 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는 구조는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면 다른 물방울이 그 뒤를 따르고 결국은 강을 가득 채우는 물의 흐름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의 요소들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그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 지신 분이 아니라 순결하고, 본질적이며 천상의 영이시므로 그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원히 동일하게 남아 계십니다. 그는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세월이 그를 노쇠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는 것을 보지만 그에게는 계속 지금 현재입니다. 그는 위대한 불변의 그입니다. 

사람과 연합하게 되었을 때도 그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과거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점토로 감쌌다고 해서 그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자연현상에 의해 몸이 신이 된 것도 아니고, 신이 몸이 된 것도 아닙니다. 둘은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었지만 하나님의 본성은 여전히 동일했습니다. 그가 하늘에 장막을 펼칠 때처럼 그가 구유에 누운 아기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피를 강같이 흘릴 때도 동일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세상을 영원하신 그분의 어깨에 두시고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그의 손에 붙잡고 계신 스스로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의 성육신으로 조차도 그의 본질을 결코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함도 없고 변화의 그림자도 없는 유일하신 불변의 하나님, 빛의 아버지로 영원히 남아 계십니다.

그의 변화는 그의 속성 바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된 어떤 속성이라 해도 그것들은 지금과 동일합니다. 각각의 하나님의 속성은 태초에 있었던 것과 같이 그리고 지금과 영원히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아멘. 그는 능력이 있으셨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암흑에서 세상을 말하셨을 때 그는 위대 했습니까? 산을 쌓고, 깊은 계곡을 파던 그는 전능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는 강력하셨고 지금도 여전하십니다. 그의 위대함에 있어 동일하십니다. 그의 에너지는 여전하시며 그의 영혼의 힘은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그가 우주의 기초를 놓고 이 위대한 지구를 지으신 것이 지혜로웠나요? 영원 전부터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계획하신 것은 과연 현명했을까요? 예, 그는 현명했고 지금도 역시 지혜로우십니다. 그는 능숙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지식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바라보시는 그의 눈은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를 계속 들으신다고 해서 그의 백성들의 울음, 한숨, 흐느낌, 신음 소리를 듣는 귀가 무거워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지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많지도 적지도 않게 아십니다. 그에게는 동일한 고도의 능력과 무한한 예지력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공의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에 축복 있으라. 그는 과거에도 정의롭고 거룩하셨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의 진실함도 변치 않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것은 꼭 이루십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의 속성증 선하심, 관대하심과 자비하심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능한 폭군이 되기보다 전능한 아버지이셨습니다. 그의 강한 사랑은 태풍과 같은 우리의 죄악에도 흔들리지 않는 화강암 바위처럼 서 있습니다. 그의 이름에 축복 있으라. 그는 그의 사랑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처음 언약을 작성했을 때 그의 마음은 그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얼마나 가득했을까요? 그는 그의 약속을 지키려면 그의 아들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의 가장 사랑하는 이를 이 땅으로 보내어 피 흘려 죽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위대한 언약에 사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하십니다. 태양이 햇빛 비추기를 그치고 달이 희미한 빛을 보일 때라도 그는 영원히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를 붙잡아보세요. 저는 항상 똑같은 것을 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를 붙잡아 보세요. 그것은 어두운 과거에도 밝은 미래에도 언급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동일한 것이 남습니다. "나는 여호와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바꾸시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짓다가 끝낼 수 없게 되면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계획을 수정합니다. 좀 더 작은 규모로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끝낼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끝이 없는 그의 명령을 가지고 계실 때, 그의 오른손으로 아침 이슬방울처럼 많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가 능력이 없어서 계속 가만히 머물러 계실까요? 아니면 반대로 그가 그것을 수행할 수가 없어서 그의 계획을 바꾸거나 뒤엎으셨나요? 누군가는 "그러나, 아마도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신 적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이 당신보다 어리석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아무런 계획 없이 일하러 가십니까? 여러분은 "아니오 저는 항상 계획이 있습니다."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있듯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략가 이자 지휘자이십니다. 그는 그 일을 하시기 오래전에 그의 거대한 지식 안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단 정해지면 결코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가 "이것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 냉엄한 운명의 손이 그것을 표시하고, 그것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다"라고 하시면 땅도 지옥도 그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가 "이것은 나의 명령이다"라고 말씀하시면 천사들은 그것을 공포합니다. 마귀를 천국 문에서 빼내라! 그러나 너는 그 명령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실행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바꾸시지 않습니다. 왜 그러셔야 할까요? 그는 전능하시므로 그가 기뻐하시는 것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왜 그러셔야 할까요? 그는 지혜로우셔서 계획을 잘못 세우시지 않으십니다. 그는 왜 그러셔야 할까요?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므로 그의 계획이 성취되기 전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는 왜 변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하루 잠깐 있다 사라지는 가치 없는 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월계수 잎에서 우는 작은 벌레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계획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의 계획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그의 계획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안전합니다.

"그의 손바닥에 있는 나의 이름 
영원히 지워지지 않네;
그의 사랑에 흘린 눈물,
지워지지 않는 은혜로 남네."

다시 한번,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바꾸지 않고 계십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의 달콤한 약속들을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 중 하나라도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영국 은행의 지폐가 다음 주에 현금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것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의 약속들이 결코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즉 제가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들 중 일부 단어들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성경을 버릴 것입니다! 저는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을 펴면 제가 불변의 약속들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히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그는 그의 모든 약속에 사인하고, 확인하고, 인봉 하셨습니다. 복음은 오늘 약속했다가 내일 부정하는 "예, 아니오"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예, 예"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제 기쁜 약속을 받으셨는데 오늘 아침 성경을 펴보니 그 약속이 더 이상 기쁜 약속이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약속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아닙니다. 여러분이 바뀐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소돔의 포도를 먹어 입맛을 잃고 단맛을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틀림없이 동일한 꿀, 동일한 귀중함이 있었습니다. 한 하나님의 자녀가 말합니다 "오! 저는 몇 가지 틀림없는 약속 위에 제 집을 튼튼하게 지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주님 제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약속들은 잃지 않았습니다. 기초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세운 것은 작은 "나무, 건초, 그루터기"로 만든 오두막입니다.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흔들린 것은 바위 아래가 아니라 바위 위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들었던 한 이야기입니다. 한 신사가 한 흑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주님 안에서 어떻게 그렇게 항상 행복한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종종 무기력해지거든" 흑인이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인님". "저는 저 자신을 약속 위에 납작 엎드리게 합니다. 제가 있는 곳이죠". "하지만 주인님은 약속 위에 서 있습니다. 약속과는 약간의 관계가 있지만 바람이 불면 곧 넘어지고 맙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치죠 '제가 쓰러 졌어요' ". "저는 약속에 대해 즉시로 납작 엎드려 갑니다. 그래야 쓰러지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합시다 "주님,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시는 것은 주의 일이십니다". 저는 약속 위에 납작 엎드려 가겠습니다! 나를 위해 서서 가지 않겠습니다. 약속 위에 엎드려 가는 것이 여러분이 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모든 약속은 변하지 않는 바위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발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고 그곳에서 영원히 편안한 휴식을 누리세요!

그러나 이제 주제를 흔들어 놓는 내용을 다루겠습니다. 여러분 중 몇 분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경고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분으로 여기고 계실 것입니다. 모든 약속이 견고하고 모든 언약의 맹세가 성취된다면, 죄인인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의 세상 소망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육신의 장례식을 보세요. 하나님의 모든 약속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경고도 성취될 것입니다. 율법을 말해보지요. 여러분에게 한 율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막 16:16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결코 변할 수 없는 율법이요 법령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한 좋은 일을 하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도덕적으로 행하십시오, 여러분은 정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옳은 길을 걸으실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경고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도덕적으로 행하라는 것에 대하여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바꾸어서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정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그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믿거나 아니면 정죄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경고는 하나님 자신만큼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천 년간의 지옥의 고통이 사라 졌을 때 하늘 높이 불타는 글자로 쓰인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는 글씨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여 저는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전히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백만 년이 지나며 여러분이 아픔과 고통에 지쳐 있을 때 눈을 들어 바라보면 여전히 "정죄를 받으리라"가 변하지 않은 상태로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모든 것이 사라진 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하는 때가 되어도 "정죄를 받으리라"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생각 아닙니까! 제가 감히 어떻게 그건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말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도 이 고통의 장소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은 경고를 들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거친 것이 아니지만 율법은 거칠다면 여러분은 거친 것을 들어야만 합니다.

시내산은 거칩니다. 주를 믿지 않는 자에게 경고하지 않는 파수꾼에게는 화가 있을 지어다! 하나님은 그의 경고를 바꾸시지 않습니다. 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죄인들이여 조심하십시오.

우리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생각을 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그의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도 변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뿐만 아니라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변치 않으십니다.


“만약 그 일이 일어났더라면 
그 그리스도의 양은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아, 변덕스럽고 연약한 내 영혼은 
하루에도 수천번 넘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성도 한 사람이 심판받았다면 모두가 심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들 중 하나라도 버려진다면 전부가 버려질 수 있습니다. 결국 참된 복음의 약속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거짓말이고 그 안에는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결국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믿을 수 있다면 저는 즉시로 불신자가 될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셨다면 그는 영원히 저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에게 빛을 비추셨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대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부르신 이들을 의롭게 하실 것입니다. 의롭다 하신 이들을 성화시키실 것이고 성화받은 이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2. 지금까지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단순히 확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는 변하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그렇게 많이 따지고 드는 설교자는 아니지만 제가 언급하려는 주장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와 살아계심이 저에게는 불변성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같이 생각해보시지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이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고 유지하고 관리하십니다. 그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만 합니까? 여러분이 변할 수 있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생각이라는 것이 상식에 비해 모순적이어서 여러분이 잠시 동안 변하시는 하나님은 생각한다면 단어들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고 여러분은 "그는 사람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몰몬교도들이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변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변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둥근 사각형이나 다른 불합리한 것을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반대로 저는 하나님을 말할 때 불변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포함시켜야만 한다는 부담을 갖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저는 제가 앞서 제시한 주장 하나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주장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완전성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완벽한 존재라고 믿습니다. 만약 그가 완벽한 존재라면 그는 변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오늘 완전하다고 가정해 보죠. 제가 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내일 변화 후에도 제가 완전할까요? 제가 변했다면 그것은 좋은 상태에서 더 좋아졌거나 상태가 나빠진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더 좋아졌다면 그것은 오늘은 완전할 수 없다는 의미이고 나빠졌다면 변화 이후는 완전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완전하다면 불완전함 없이는 변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 완전하고 내일도 완전하다면 저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완전하시다면 그는 동일하셔야만 합니다. 변질은 오늘이나 이후의 불완전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존재이십니다. 무슨 의미냐고요? 그가 무한하신 존재라는 것의 의미를 여러분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두 개의 무한함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가 무한하다면, 무한함은 전부를 의미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여지는 없습니다.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으며 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요 두 개의 무한대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오늘 하나님이 무한하시고 변하셨다가 내일도 무한하시다면 두 개의 무한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무한하시지만 변하신다고 가정해보죠. 그는 유한해지고 하나님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유한하거나, 오늘은 무한한데 내일은 유한하거나 오늘은 유한한데 내일은 무한한, 가정들이 모두 불합리합니다. 그의 존재가 무한하다는 사실은 그가 변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즉시로 깨버립니다. 무한함은 "불변성"이라는 단어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친구 여러분 과거를 함께 돌아보시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시고는 그것을 행하지 않으셨니까? 그가 한 맹세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여호와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는 그의 모든 뜻을 수행하셨고, 그의 모든 목적을 이루시지 않았나요? 블레셋을 보시지요. 블레셋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물어보세요. "스바냐 2:4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에돔은 어디에 있나요? 페트라와 폐허가 된 성벽을 확인해 보세요. "요엘 3:19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진리가 되풀이된 것이 아닌가요? 바벨, 니느웨, 모압, 암몬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께서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셨던 나라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뽑아내시고 지구 상에서 지워버리신 것 아닌가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버리셨나요? 그가 그의 약속을 소홀히 한 적이 있으셨나요? 그의 맹세나 언약을 깨거나 그의 계획에서 떠난 적이 있으셨나요? 아, 아닙니다. 역사상에서 하나님이 변하신 사례를 하나 들어 보시겠어요!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은 그의 목적에 있어 변치 않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변하신 사례를 하나 기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었는데 저도 그 점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히스기야의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했죠. "열왕기하 20:1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성읍 가운데를 지나기도 전에 말씀이 임해서 다시 돌아가 "열왕기하 20:6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하나님의 변하심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저는 이것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모르셨다고 어떻게 아십니까? 아! 그러나,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는 히스기야가 살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결국 그는 변치 않으셨습니다. 그가 알고 계신다면 변하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때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가 태어나지 않은 작은 사실을 아십니까? 만약 히스기야가 그냥 죽었다면 므낫세도 없고, 요시야도 없고, 그리고 그리스도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족보에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히스기야가 죽었을 때 므낫세의 나이가 12세라고 했는데, 이 말은 히스기야의 사건이 있은지 3년 후에 므낫세가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주께서 므낫세의 탄생을 선포하셨고 미리 아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분명히 그는 이사야로 하여금 히스기야에게 네 병은 나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게 하셨고, 곧바로 "그러나, 내가 너를 치료할 것이고 살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로 네 질병은 치료가 불가능하고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문장 끝에 "그러나"가 온 것입니다. 

이사야는 말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너를 치료할 더 이상의 의학적 방법이 없다". 그 후 이사야가 나가자 히스기야는 기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야가 다시 들어야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치료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고 그를 변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어디 모순이 있습니까?  

II. 이제 이 불변의 하나님이 유익이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자, 누가 "야곱의 자손들"입니까? 누가 불변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우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로마서 9: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주의 선택을 받은 자인가,
주의 주권적인 은혜로 믿었는가;
영원한 본향까지 
은혜와 영광을 누리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그가 미리 아시고 영원한 구원으로 예정하신 "야곱의 자손들"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둘째로 특별한 권리와 자격을 누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야곱은 태어날 당시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지만 형인 에서가 가지고 있던 장자권을 팥죽과 바꾸었습니다. 제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는 축복을 받았고 특별한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특별한 권리와 자격을 누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권리와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주목합니다. 그들은 천국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영원한 영예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영원한 영광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오! “야곱의 자손들”은 특별한 권리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자손들”은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는 큰 영예를 누렸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누워 잠에 들었습니다. 울타리를 장막 삼아, 하늘을 지붕 삼아, , 돌을 베개 삼아, 땅을 침대 삼아 유숙한 것이었습니다. 아! 그때 그는 특별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곳에는 사다리가 있었고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의 자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씨름을 했을 때도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것들은 특별한 계시였습니다. 이제는 야곱처럼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을 알아볼까 합니다.

자, 여러분 중에 몇 분이나 개인적인 계시를 받으셨나요? 여러분은 "오, 그건 대단한데요! 아니 광신적인데요!"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받은 특별한 계시 또한 축복받은 영광입니다. 그들은 마치 사람들이 자신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 여호와의 귀에 속 사귀듯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저녁을 먹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하셨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들이 특별한 계시를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으로 그들의 영혼을 비추셨습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이러한 계시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특별한 시험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아,  불쌍한 야곱! 제가 야곱의 축복을 몰랐다면 저는 분명 야곱의 삶을 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어려운 삶이 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늙은 라반은 야곱이 그곳에 머무는 내내 그를 속였습니다. 아내, 급료, 가축 등 모든 것을 속였습니다. 결국 라반에게서 도망쳐야만 했지만, 라반은 추적하여 그들을 따라잡고 말았지요. 다음에는 에서가 그를 치러 4백 명을 끌고 왔고, 기도의 시간이 있은 다음에는 하나님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환도뼈가 위골 된 채로 그의 모든 아내들과 가야만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그의 가장 사랑하는 라헬이 죽습니다. 그 후에는 그의 딸 디나가 겁탈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 후에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애굽에 팔리고, 기근이 옵니다. 루으벤이 그의 침상에 올라 더럽히고,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하고 맙니다. 베냐민을 빼앗길 때 야곱은 무너진 가슴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창세기 42:36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형제를 속인 한 가지 죄 때문에 야곱보다 더 시험받은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의 삶 내내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늙은 야곱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야곱과 아주 비슷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자,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불쌍한 영혼들이여! 변치 않으시는 여러분의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여러분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나는 이미 고난을 맛본 자야"라며 자만심에 쌓여있지 마십시오. 왜 "슬픔의 사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보다 많은 고난을 당하셨나요!  예수는 참으로 슬퍼하는 자이셨습니다. 여러분은 고난의 깃털 정도만 볼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시험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고난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고난의 잔을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마셔도 한 방울, 두 방울이지만 예수께서는 찌꺼기까지 마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특별한 시험을 거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야곱의 자손"은 누구인가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이 더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 스스로가 "야곱의 자손"인지를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야곱의 성품 몇 가지는 우리가 칭찬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한두 가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야곱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지상에서는 약속을 얻지 못했으나 천국에서는 그 약속을 받을 여러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사랑받는, 믿음의 사람들입니까? 믿음으로 걷는 것, 믿음으로 사는 것, 믿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 영적인 만나로 사는 것,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이 당신의 삶의 규칙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야곱의 자손”입니다.

야곱은 씨름하고 신음하며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전에 나오기 전에 전혀 기도하지 않은 한 남자가 저기 서 있습니다. 오, 불쌍한 무신론자 여! 당신은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는 "예, 저는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난 몇 년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이 죽기 전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없이 살다 죽으면 지옥에 갈 때 충분히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아침 기도하지 않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데려다주느라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었다고요? 옷 입을 시간은 있었고요? 하늘 아래 모든 목적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할 목적이 있었다면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야곱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 성령께서 일하시는 사람들로 숨 없이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기도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님들 꼭 기억하세요. 만약 여러분이 기도없이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없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간다면 여러분은 활활 타는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에서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야곱의 자손”입니다. 평안을 누리세요.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III. "야곱의 자손들"이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유익에 대하여 한 단어 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소멸"이라고요? 어떻게요? 사람이 어떻게 소멸될 수 있죠?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에서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변개하시는 하나님이셨다면 오늘 아침 여기에 계시는 "야곱의 자손들"은 지옥에서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불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소멸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죽기 전에 심판받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나 이미 완전히 죽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술주정뱅이와 함께 흥청거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욕하고 있나요? 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가 여러분을 떠나셨나요? 그가 변개하는 하나님이 되셨나요? 여러분은 추한 사람 중에 가장 추하고, 악인 중에 가장 악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서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을 기억할 수 없으시겠습니까? 저는 죄의 끝자락으로 갔었습니다. 어떤 강한 유혹이 제 두 팔을 붙잡고 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시무시한 사탄의 힘에 의해 이끌려 아찔한 절벽의 끝에 세워졌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아래에는 저 자신의 몸이 있었습니다. 저는 파멸을 앞에 두고 떨었습니다. 내가 지은 죄와 곧 빠질 아찔한 구렁텅이를 생각하니 머리끝이 주뼛 서고 무서워졌습니다. 강한 팔이 저를 구했습니다. 저는 돌아서서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오 주여 제가 죄에서 떠나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느부갓네살의 강한 사람들처럼 용광로의 열기에 쓰러져 빠지지 않고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을까요? 아! 제가 저질렀던 죄나, 저의 악한 상상으로 했던 모든 범죄를 생각한다면, 오늘 아침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요? 예 저는 심판받지 않고 여기에 있습니다. 주께서 변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변하신다면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가 변하신다면 여러분과 저는 스스로에 의해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크리스천에게 자신 스스로는 최악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죽였을 것입니다. 주께서 불변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셨고 우리가 마시기 직전에 우리의 손에서 잔을 치우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 독배를 마셨을 것입니다. 주께서 불변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 그분에 의해서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 하나님이 자신의 가족에게 겪으시는 어려움의 절반만이라도 겪는다면 그들과 같이 한다는 것은 너무나 참을 수 없는 것이기에 아주 오래전에 자신의 모든 자식들을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가족을 가지고 계십니다. 믿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며, 잊어버리고, 반항적이고, 방황하고, 불평하고, 뻣뻣한 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주께서 오래 참으시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중 몇몇은 아주 오래전에 그에게 몽둥이뿐만 아니라 칼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처음부터 사랑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지금 더 적어질 수는 없습니다. 존 뉴턴은 선택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한 착한 여인의 기발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곤 했습니다. "아, 선생님, 하나님은 분명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를 사랑하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나중에 제 안에서 사랑할만한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거거든요".  저는 이것이 저의 경우에도 사실이고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이 태어난 이후로 그들에게는 사랑할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전에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이후에 그들을 선택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행위 없이 그들을 사랑하셨으므로 여전히 그들을 어떠한 행위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들의 선한 행위가 그의 애정을 얻지 못했으므로, 악한 행위가 그의 애정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정의가 그의 사랑과 그들을 연결하지 않았듯이 그들의 악함이 그의 사랑과 그들 간의 황금 고리를 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순수한 주권적 은혜로 그들을 사랑했으며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변하셨다면 우리는 마귀와 우리의 적들에 의해, 세상에 의해, 우리의 죄에 의해, 우리의 시험과 수많은 방법들에 의해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자 이제 시간이 우릴 막는군요.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개략적으로만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립니다. 주께서 "야곱의 자손들"인 여러분이 이 양식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을 도우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을 잘 소화해서 드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말씀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것들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사야 25:6 ......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엇이 제거되든 하나님은 동일하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친구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여러분의 사역자는 떠날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형제들은 변하여 여러분의 이름을 사악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정차역이 바뀌고 재산이 없어졌습니까? 여러분의 삶 전체가 흔들리고 약해지고 병들었습니까? 모든 것이 달아나 버렸습니까? 변화가 손댈 수 없는 한 장소가 있습니다. 변덕이나 변개함이 써질 수 없는 한 이름이 있습니다. 결코 바꿀 수 없는 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이름은 사랑입니다.


“그를 신뢰하라, 그는 결코 너를 속이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그를 엄하다 여길 지라도;
그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네가 그를 완전히 떠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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