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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삶의 전환기를 가져온 시기에 서초동의 한 대형 교회를 통해서 그동안 가져 왔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을 상당 부분 걷어내고 그야말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었다. 많은 이들로 부터 존경받는 한 목회자가 있었기에 그 목회자의 존재에 대해서 의존적이지는 않았지만 성경 중심으로 삶을 변화시키려는 분투에 있어 그로부터 나름 도움을 받았던 것은 분명했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아기와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갈때 우연히 그를 만날때면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나누던 그분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가 정년이 되기도 전에 데리고 온 후임자는 달랐다. 키는 훤칠하게 크고 이벤트 능력은 탁월해 보였지만 메시지의 깊이와 무게가 너무도 빈약했다. 무엇보다 그는 인사를 받지도, 하지도 않았다. 성도들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무슨 대기업 총수나 군대의 장성처럼 행동했다. 벼는 익을 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하는데 그에게서 인격의 성숙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저 "바쁘니까 그러겠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일일이 인사할 수 있을까?"하는 가학적인 이해로 나를 몰았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지인으로부터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후임자에 대한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사실인지 나름의 정보를 수집했다. 결과는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탄식과 함께 왜 그의 메시지의 깊이와 무게가 빈약하고 성숙한 인격의 모습을 만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물론 반면교사로 역시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며, 신앙 생활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목회자를 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쫓아가야 함을 절실하게 학습한 계기가 되었다.
많은 내적 갈등 끝에 교회를 옮기게 된것이 천안과 아산의 경계 지점에 있는 여명교회(http://www.yeomyung.net/) 였는데 나름 대형 교회이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는데, 지난 수개월동안 마음의 회복이 있었다. 주변에 교회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강추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튼, 몇주전에 교회에서 컨퍼런스가 열린다는 광고가 있었는데 그 이후로 예배 시간 15분전까지 담임 목사께서 안내하시는 분들과 함께 성도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면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서초동의 모교회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불가능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서 개인적으로는 얼마하고 그만둘 이벤트로 여겼는데 매주 그와 악수하며 교회를 들어가니 이제는 그의 의도를 나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예배에 일찍 오라는 지속적인 광고와 채근보다 직접 담임 목사가 악수하러 나섬으로 자연스레 예배에 일찍오도록 가이드하고, 대형 교회의 문제중에 하나인 목회자와 일반 성도 간의 거리감을 최소화하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거리감이 준 만큼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출처 : 여명교회(이단화 목사)
"일반 성도와 일일이 악수하는 대형 교회 목사" 참 칭찬할만 합니다. 꾸준히 하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가끔은 부목사에게 메시지를 위임하고 지각하는 성도와 악수를 나누며 "일찍 옵시다!"하는 따끔한 충고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후를 준비하시는 목사님에게 "옥한흠 목사를 살피라!"는 조언과 함께 두가지 바램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는 한주간 정성껏 준비한 메시지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원고에 덜 의존적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옥목사님의 메시지가 그러했죠. 하나의 메시지가 일반 성도에게 나올때 까지 수많은 탈고 과정을 거치셨던 그분은 주일 예배때는 원고가 있기는 했지만 성도들과 눈을 마주하며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부드럽게 메시지를 이끌어 가셨죠. 반면 그의 후임은 "Reader"로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광경이었습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듯 소통이 없는 설교시간은 그야말로 비극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와는 다르지만 정성껏 준비하신 메시지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원고에 덜 의존적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두번째는 옥목사님께서는 너무나도 가슴아파하신 후임자 선택을 제대로 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단 한명의 확실한 제자라도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너무나 어려운 과정이지만 제대로된 메신저를 키우고 세우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적인 목회이지 않나 싶습니다. 주일 강단을 부교역자에게 과감하게 열어서 탁월한 메신저를 키워야 합니다. 표절과 우려먹기가 없는 메신저다운 메신저를 발굴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이 더욱 건강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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